반야심경은 경전일까 주문일까?
절에 다니는 불교 신자들 가운데에는 반야심경 전문이 적힌 작은 다라니(陀羅尼)를 지갑에 넣어 다니는 이들이 있다. 절에 자주 가지 않는 사람들 또한 불교용품점에서 반야심경이나 광명진언,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적힌 물건을 구입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작은 종이 한 장, 혹은 얇은 금속판이지만 그 안에 붓다의 핵심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다라니와 진언은 ‘만트라(mantra)’, 즉 기도나 명상에서 외우는 주문이다. 중요한 가르침을 짧은 소리로 압축해 담았다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을 뜻풀이하지 않고, 소리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마음을 ‘옴마니반메훔’이라고 하며, 이 진언을 반복하면 사랑의 마음이 커진다고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다라니는 ‘총지(總持)’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모든 가르침을 거둬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이를 반복해 암송하면 진리의 근원을 기억하고 악을 물리치고 복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대승 경전에서는 경문의 끝에 핵심 의미를 담고 있거나 수호 부적과 같은 다라니를 덧붙였고, 이로 인해 다라니와 진언, 주문은 오늘날까지도 자연스럽게 혼용된다.
필자 역시 오랫동안 다라니를 몸 가까이에 지니고 살아왔다. 종이에 인쇄된 『법화경』 만다라 다라니와, 『금강경』 전문이 새겨진 도금 사경본을 수십 년째 지갑 속에 넣어 두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법화경』을 신앙하는 사찰에 다니던 어머니 덕분에, 닳고 해진 다라니를 새것으로 바꿔 지니는 일이 습관이 됐다. 그렇게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문득 질문이 생겼다. 우리는 왜 다라니를 지니고 암송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특히 반야심경을 비롯한 반야바라밀다 계통의 경전은, 신앙적 기복보다는 공(空)사상의 진리를 밝히는 데 핵심이 있다. 그럼에도 반야심경은 역사적으로 가장 널리 사경되고 암송된 경전이며, 오늘날에도 조석예불과 각종 불교 의례에서 빠짐없이 독송되고 있다.
반야심경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주문처럼 받아들여지게 됐을까. 경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외우고 지니는 행위는 어떻게 연결돼 왔을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반야신앙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며, 우리가 익숙하게 외워 온 경전이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대반야바라밀다경』 제157편 변상도, 작가 미상, 일본 1383년,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경전의 첫 장에 부처님과 보살들, 두루마리 형태의 경전들을 등에 짊어진 현장 스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반야신앙의 전파 과정, 방편과 진실
불교 신앙 가운데 경전에 기반해 일찍부터 널리 유행한 것으로는 법화신앙과 정토신앙을 들 수 있다. 이에 비해 반야신앙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반야신앙이란 반야경을 중심으로 한 경전 자체에 대한 신앙, 반야경전과 깊이 연관된 관세음보살신앙, 그리고 신자들이 반야경을 수지·독송·사경하며 공덕을 쌓는 실천을 아우르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반야심경과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이하 『금강경』)은 반야경전 그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성격이 강하다. 분량이 짧아 지니고 다니거나 암송하고 사경하기에 수월하다는 점에서, 이 두 경전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널리 유행해 왔다.
불교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대승 경전은 붓다의 열반 이후 약 400~500년이 지나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경전들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막론하고, 아비달마(阿毘達磨, 부파불교에서 각 부파가 붓다의 교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록한 논서)의 난해한 교학보다는 보다 쉽고 근본적인 불교 정신을 되살리려는 전법적 의도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초기 대승 경전에 속하는 반야경은 초기불교가 지녔던 근원적이고 대중적인 가르침을 계승하고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무려 60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집적됐다.
<행각승도(求法僧圖)>, 중앙아시아 10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인도로 경전을 구하기 위해 순례에 나섰던 현장 법사, 또는 티베트 18나한 가운데 한 명인 달마다라(達磨多羅)로 추정한다.
이처럼 방대한 반야경전에서 핵심 사상을 간결하게 담아낼 필요성이 제기됐을 것이다. 오늘날 반야심경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내용은 『대반야바라밀다경』(이하 『대반야경』) 305~308권에 수록된 「불모품(佛母品)」이다. 여기에서는 제법실상이 공상(空相)임을 분명히 아는 지혜를 모든 깨달음의 어머니, 즉 ‘불모(佛母)’라 이름하고 있다. 반야가 모든 부처를 낳는 모(母), 근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불모품」은 반야심경의 원형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반야심경 이역본(異譯本) 가운데 하나는 『불설불모보덕장반야바라밀경(佛說佛母寶德藏般若波羅蜜經)』이라는 제목으로 한역됐다. 대장경 약 네 쪽 분량의 이 내용이 260자 남짓으로 압축된 것이 바로 약본 반야심경이다. 『금강경』 역시 『대반야경』 577권 가운데 다섯 쪽 분량의 「능단금강분(能斷金剛分)」에 해당한다. 이처럼 전체 600권 가운데 핵심 일부만을 발췌해 유통하는 방식이 유행했다.
600권에 이르는 반야경전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공사상의 진리를 설하는 내용은 물론, 반야바라밀과 반야경전을 수지·서사·독송·전법하는 공덕을 강조하는 내용 또한 중층적으로 쌓여 갔다. 이러한 요소들은 반야경전과 그 주문에 대한 신앙을 형성하고, 공덕을 쌓게 하는 다양한 방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 결과 약본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 경전의 핵심 사상을 간략한 4구 형식으로 요약한 게송)는 주문과 같은 방편적 역할을 하며, 신앙의 실천 속에서 공덕을 낳는 힘으로 받아들여지게 됐을 것이다.
중국 시안(西安)의 대자은사(大慈恩寺) 대안탑에는 현장 스님이 인도에서 가져온 수많은 경전이 봉안돼 있다. 사진 불광미디어
<현장삼장상(玄奘三蔵像)>, 일본 가마쿠라사대 14세기, 도쿄국립박물관.
현장 스님은 당나라 때 인도에서 방대한 경전류를 중국에 가져왔다. 현장 스님은 ‘삼장(三藏) 법사’로 불렸는데 이는 경장·율장·논장에 두루 통달한 스님이자, 경전을 번역하는 역경승(譯經僧)을 뜻한다.
그림에서 현장 스님은 등에 대나무 책 상자를 짊어진 행각승(行脚僧)의 모습으로 양손에는 불자(拂子)와 두루마리 경전을 들고 있다. 목에는 무상(無相)함을 상징하는 해골 목걸이를, 허리에는 칼을 차고 있다.
반야심경의 주문은?
그렇다면 반야심경의 주문은 무엇일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제목을 포함한 경전 전체. 둘째 ‘반야바라밀(다)’ 라는 용어. 셋째 경전 말미에 등장하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세 가지의 범위를 각각 주문으로 본 이유와 배경을 살펴보자.
① 제목을 포함한 경전 전체
우리가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중국 당나라의 삼장법사 현장의 번역으로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임말이다. 번역어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현장 역은 구마라집 역과 동일한 판본으로 추측된다. 현장 역과 구마라집 역은 약본(略本)/소본(小本)이라고 하며, 현장 이후에 번역된 나머지 5개의 한역본은 서분(序分, 서론)·정종분(正宗分, 본론)·유통분(流通分, 결론)의 경전 형식을 갖추고 있는 광본(廣本)/대본(大本) 형태다. 현장이 산스크리트어를 소리 나는 대로 옮겨 놓은 형식의 『범본(梵本) 반야심경』 번역을 합해 총 8개의 한역본이 남아 있다.
현장의 전기인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에는 현장이 구법하러 가기 전, 촉(蜀)에서 한 병자를 돌봐 준 설화가 나온다. 병자는 현장에게 구법 기간에 관세음보살과 반야심경을 암송하면 온갖 악귀와 짐승들의 위험과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면서 이 경을 전수해 줬다. 관세음보살이 도와주지 못해도 이 경을 큰소리로 외우면 악귀가 흩어진다고 말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상을 종합하면 현장의 전기 설화는 반야신앙의 중요한 역사적 장면을 완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점은 현장이 천축(天竺, 인도)에 가기 전에 이미 중국 내에서 반야심경을 주문처럼 암송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천축 구법(求法) 이후 귀국한 현장이 번역한 반야심경은 구마라집 역과 거의 동일한 판본이다. 그런데 현장이 한역한 『범본 반야심경』을 보면 첫 구절에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란 단어가 없다. 자신이 가져온 범본에 없는 문장이었지만 현장은 구마라집 역과 동일하게 ‘도일체고액’을 넣어서 번역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을 추가해서 번역했다는 것은 분명 내포하는 의미가 있다. 천축에서의 17년 동안 온갖 어려움에 부딪혔던 현장에게 ‘모든 괴로움과 액난을 건넌다(도일체고액)’는 내용은 뼈에 사무치는 구절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구마라집 역은 제명을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摩訶般若波羅蜜大明呪經)』이라고 하여 제목 가운데 ‘대명주(大明呪, 크고 밝은 주문)’를 넣었다. 현장의 제명인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에서 ‘심(心, hṛdaya)’은 심장, 핵심이라는 의미다. 구마라집은 처음부터 이 경전을 ‘하나의 크고 밝은 주문’이라고 보았고, 현장은 그것을 반야경의 핵심이라는 의미에서 ‘심’이라고 번역했다. 현장의 전기와 구마라집 역의 제목을 고려하면 오늘날 암송,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경전 전체가 주문이다.
② ‘반야바라밀(다)’.
초기 대승 경전 안에서 단지 ‘반야바라밀’이라고 쓰여진 경우도 반야경전을 뜻할 수도 있다. 작고한 가라시마 세이지(辛嶋靜志) 교수는 오늘날 우리가 경전이라고 하는 ‘sūtra’가 실제 경전의 제명으로 붙는 것은 대승 경전들이 성립한 이후의 상황이며, 처음부터 ‘경’이 붙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를 수용하면 ‘반야바라밀’이 반야경 전체를 내포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반야심경 안에도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라고 여러 차례 나오며, 다른 반야경전에서도 이러한 내용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심지어 『육도집경(六度集經)』에는 임산부 여인이 아기를 낳기 전에 꿇어앉아 반야바라밀을 독송하며 아기를 낳은 내용이 있다. 고통스러운 시간에 반야심경 전문을 외우기보다는 ‘반야바라밀’을 대명주로 암송하며 출산했다고 보는 것이 정황상 납득이 된다. 영화 <천녀유혼>에서 나무귀신에게 붙잡힌 스님이 반야바라밀을 주문처럼 반복하는 장면으로 현재까지 이런 신앙이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반야경의 주문은 대신주(大神呪, 가장 신비한 주문)로서의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할 수 있다.
③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반야심경의 마무리에 이르면, 경전은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곧 말하니”라고 운을 띄우며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를 외우는 것으로 경전을 마친다. 반야심경의 주문을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으로 한정한다면 주문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이다.
여러분은 어떤 주문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가. 각자 마음에 와닿은 주문을 수지·독송하면 될 것 같다.
석가모니와 반야바라밀다, 티베트 13세기, 월터스미술관.
반야의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불모(般若佛母),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산스크리트어로 ‘반야바라밀’을 의미하는 ‘prajñā pāramitā(프라즈냐 파라미타)’는 여성 명사로 불모, 즉 부처를 낳는 깨달음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반야심경 주문의 가장 큰 공덕
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스님 로봇 붓다로이드가 출현하는 시대가 됐다. 삶은 점점 편리해지지만, 그에 비례해 현대인의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공허감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반야심경의 주문은 과연 어떤 공덕을 줄 수 있을까.
『대반야경』에는 반야바라밀다를 대신주(大神呪), 대명주(大明呪, 가장 밝은 주문), 무상주(無上呪, 위없는 주문), 무등등주(無等等呪, 견줄 데 없이 평등한 주문)라 칭하며, ‘일체 모든 주문의 왕(일체주왕一切呪王)’이라고 밝힌다. 이어서 이 주문을 염송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을 상세히 해설하고 있다. 과거 아촉불은 반야바라밀다를 염송해 성불을 이뤘고, 아수라와 도리천의 신들 또한 이를 염송한 덕분에 전쟁을 멈출 수 있었다고 전한다.
더불어 현생에서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특별한 공덕을 알려 준다. 이 반야바라밀다주를 염송하면 원수나 사나운 짐승으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지 않으며, 나쁜 기도나 사주, 저주로 인해 횡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독극물에 중독돼 죽지 않고, 물에 빠지거나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지 않으며, 탐관오리에게 수탈당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는 반야바라밀다 주문이 수행자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이를 오늘날의 삶에 적용해 보면, 반야바라밀다주를 외우는 이는 비명횡사를 피하고 정치·경제적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대승 경전에서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사경하는 공덕을 강조하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몇 달 전, 필자 역시 서울 근교 사찰의 불사 조성을 발원하며 두 달 남짓 반야심경을 암송하고 사경한 경험이 있다. 원하는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경하며 독송을 거듭할수록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반야심경 주문의 가장 큰 공덕이 그 핵심 가르침, 곧 첫 구절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오온이 공함을 비춰 보고, 일체(라고 생각하는 존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이어서 경전은 이렇게 말한다.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기에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기에 두려움이 없으며,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른다.”
이러한 가르침을 믿고 수지·독송하며 우리는 그 의미를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 가게 된다.
결국 반야경 주문의 가장 큰 공덕이란, 공의 지혜를 깨닫게 하고 열반으로 이끌어 주는 데에 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전도몽상(顚倒夢想,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거꾸로 뒤집힌 채 꿈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며, 혼란과 괴로움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공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최은영
고려대학교에서 천태불교로 불교철학을 전공했다.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사업단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중국에 불교가 전래될 때의 상황에 대한 초기 중국불교 연구에 관심을 이어 왔다. 2003년부터 백화도량 강명희 법사님께 위빠사나 명상을 배워 오고 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불교와 명상 수업을 하고 있다.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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