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모빌리티학부 및 미래자동차석사과정 교수
석유 고갈 공포는 오래된 이야기다. 1956년 미국석유협회(API) 연례 미팅에서 지구물리학자 M. 킹 허버트는 원유 생산이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한다는 ‘허버트 피크’를 제시했다. 미국 생산이 1970년 전후 실제로 정점을 기록하며 오일 고갈론의 근거로 자리 잡았다.
이 발표의 맥락은 종종 간과된다. 제목은 ‘핵에너지와 화석연료’였다. 핵심은 고갈 자체가 아니라, 화석연료의 쇠퇴를 전제로 원자력의 필요성을 부각하는 데 있었다. 전망은 빗나갔다. 원자력은 기술적·사회적 제약에 가로막혔고, 석유는 셰일오일과 신규 유정 발견으로 오히려 공급을 확장했다.
다음 공세는 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고갈이 아니라 탄소 배출이 명분이었다.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동시에 겨냥하며 빠르게 확산됐다.
두 진영 모두 공통된 한계는 ‘전기 생산’이라는 틀에 있다. 간과된 사실은, 석유가 단순한 연료를 넘어 현대 산업의 핵심 ‘원료’라는 점이다. 플라스틱·의약품·반도체 등 산업 전반의 기초는 여전히 석유화학에 의존한다.
팬데믹은 이를 분명히 드러냈다. 의료 물자의 상당수가 석유화학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위기 상황에서 문제는 고갈이 아니라 공급이었다. 최근의 공급망 불안 역시 같은 교훈을 반복한다.
탄소중립 담론 속에서 석유는 퇴출 대상처럼 여겨졌지만, 지정학적 긴장은 그 위상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석유는 여전히 전략 자산이다. 더구나 재생에너지 설비와 전기차조차 석유화학에 의존한다는 점은 전환의 역설을 보여준다.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는 전기를 생산할 뿐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석유화학의 원료 기능을 대체할 기술적 대안이 되지 못하며,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인 에너지 및 자원 주권을 보장해주지도 못한다. 지정학적 격변기 속에서 불사조같이 부활한 석유의 전략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단순히 모빌리티를 전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근간인 소재 밸류체인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떠올랐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전원 전환이 아니라, 에너지와 원료를 함께 고려하는 ‘에너지자원 믹스’라는 관점이다.
결국 문제는 전기를 무엇으로 생산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소재 체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다. 전기화와 탈탄소가 가속될수록, 석유는 연료를 넘어 원료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본질은 선택이 아니라 균형에 가깝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모빌리티학부 및 미래자동차석사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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