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피비갤러리에 피노키오 조각 ‘라이어’와 함께 그림 및 시 작품이 전시돼 있다. 최수문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가운데 대형 피노키오 조각이 관람객을 맞는다. 키가 180㎝나 되니 우리가 알고 있는 ‘꼬맹이’ 피노키오는 아니다. 조각에는 ‘라이어(Liar)’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안내한 직원은 피노키오 조각과 그림을 번갈아 감상하며 서로 다른 매체 위에서 동일한 대상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고 읽히는지 경험해보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벽면에는 피노키오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 역시 범상치 않다. 붉은 옷에 노란 모자를 쓴 채 어떤 배경도 없이 혼자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화덕에 다리가 타버린 원작처럼 다리가 잘려 있거나 수정의 흔적으로 얼굴이 뭉개져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피노키오에 천착해온 미국 팝아트 거장이자 살아 있는 미술 교과서라 불리는 짐 다인(91)의 개인전 ‘나의 말과 피노키오’(My words & Pinocchio)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피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피노키오를 주제로 한 신작 회화 드로잉 8점과 조각, 자작시 드로잉, 현장에서 작업한 벽면 드로잉 등 총 12점을 선보였다. 최근 전시를 위해 서울을 찾은 작가는 “월트디즈니 만화 속의 피노키오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피노키오는 온갖 시련과 역경을 겪고 성장하는 누군가의 삶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짐 다인의 ‘어린 피노키오 5’. 사진 제공=피비갤러리
짐 다인의 ‘어린 피노키오 2’. 사진 제공=피비갤러리
작가가 직접 목탄으로 쓴 시 드로잉도 눈길이 간다. 시인이기도 한 작가는 ‘피노키오’라는 제목의 시 드로잉에서 “그의 불쌍하게 타버린 발, 그의 잘못된 판단, 그의 허영심, 커다란 코, 당나귀 귀, 이 모든 것이 그를 이룬다. 결국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그의 위대한 마음이다. 나는 여섯 살 때부터 그를 내 등에 업고 다녔다”고 적었다.
나이 90세에도 이러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놀랍다. 오리건주 출신의 작가는 20대 초반이던 1958년 뉴욕으로 이주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공구와 같은 일상 사물을 소재로 작업하며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과 함께 팝아트 작가로 자리 잡았다. 이후 전통적인 드로잉 작업에 전념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피노키오에 마음을 빼았겼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대해 작가는 “피노키오가 결국 인간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인간이 더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고통의 서사”라며 “삶의 역경과 두려움, 인간 존재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기독교적 서사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나는 평생 피노키오와 함께 걸어왔다(I have walked with him my whole life)”는 작품 문장이 이번 전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짐 다인의 ‘피노키오 시 드로잉’. 사진 제공=피비갤러리
.작가는 한국과의 인연도 많다. 우선 개인전은 2010년과 2013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특히 2013년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 앞 광장에 높이 9m, 무게 55톤 규모의 대형 피노키오 조각 ‘희망으로 나아가는 소년’을 설치한 바 있다. 빌딩 숲 사이를 걷는 피노키오는 오랫동안 부산의 상징적 공공미술로 자리해왔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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