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헌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
올해는 스포츠 팬들에게 그야말로 '빅 스포츠 이벤트의 해'다. 지난 2월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은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뒀고,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17년 만에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어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우리 대표팀이 체코를 상대로 2대 1 역전승을 거두며 16년 만에 월드컵 첫 경기 승리를 따냈다. 오는 9월에는 일본 나고야와 아이치에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다. 올해는 사계절 내내 스포츠의 감동이 이어지는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대회가 아니다. 국가의 자존심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무대이자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최대 스포츠 축제다. 그만큼 월드컵은 선수뿐 아니라 개최 도시와 국민들에게도 특별한 기억을 남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필자는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안내요원으로 활동했다. 덕분에 조별리그 세 경기를 직접 관전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단연 포르투갈전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후반 25분, 이영표의 패스를 받은 박지성이 환상적인 결승골을 터뜨렸다. 경기장은 순식간에 함성으로 뒤덮였고, 대한민국은 마침내 16강 진출의 꿈을 이뤘다. 지금도 그 순간의 전율은 생생하다. 인천 문학경기장이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도 바로 그 경기 때문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도 경기장을 찾아 끝까지 경기를 관전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경기가 끝난 뒤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에 잠시 앉아보았던 기억도 지금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코미디언 이주일 씨의 모습이다. 폐암 투병 중이던 그는 휠체어를 타고 경기장을 찾아 붉은악마와 함께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16강 진출의 기쁨을 함께 나눴지만, 불과 두 달 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수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그러나 필자에게 문학경기장은 박지성의 결승골, 김대중 대통령의 관전, 그리고 이주일 씨와 함께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인천은 월드컵 이후 무엇을 남겼을까. 월드컵의 열기를 바탕으로 시민축구단이 창단됐고, 이후 숭의축구전용경기장이 건립돼 지역 축구의 중심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의 16강 신화가 시작된 문학경기장의 역사적 가치는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해외의 월드컵 개최 도시들은 경기장 자체를 스포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거나 기념관과 전시 공간을 조성해 역사적 가치를 계승하고 있다. 반면 문학경기장은 2002년 월드컵의 상징적 의미에 비해 그 역사성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나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문학경기장은 단순한 스포츠 시설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 스포츠사의 중요한 유산이다.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은 여전히 국민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이제는 그 기억을 추억으로만 남길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으로 보존해야 한다. 월드컵 성지의 가치를 지키고 계승하려는 노력은 과연 충분했는가. 북중미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지금, 24년 전 인천 문학경기장이 남긴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때다.
/이종헌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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