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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문기석칼럼] '질투는 너의 힘'

현란한 숫자가 난무한다. 개인의 성과급이 수 백만원이 아닌 억 단위고 투자금도 아예 조 단위다. 눈이 부시게 찬란하다. 대한민국 경제가 세계 수출 순위 4위를 가시권에 두고 코스피 지수가 만 선을 넘보는 소식은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저력을 증명하는 훈장과도 같다.

[문기석칼럼] '질투는 너의 힘'

현란한 숫자가 난무한다. 개인의 성과급이 수 백만원이 아닌 억 단위고 투자금도 아예 조 단위다. 눈이 부시게 찬란하다. 대한민국 경제가 세계 수출 순위 4위를 가시권에 두고 코스피 지수가 만 선을 넘보는 소식은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저력을 증명하는 훈장과도 같다. 분명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도약이다. 구시대적 표현으로 치면 한강의 기적에 이은 또 하나의 가슴 벅찬 이정표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 정면에서 살짝만 시선을 돌리면 그 뒤편에 거대하게 드리워진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다. 그 만큼 지금의 한국 사회는 가장 풍요로운 동시에 가장 결핍된 지독한 모순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과거의 불평등이 주로 먹고사는 문제, 즉 소득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의 불평등은 차원이 다르다. 집값의 미친 듯한 폭등은 노동을 통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찼다. 여기에 역사적인 주가 상승 랠리가 더해지면서 자산 격차의 골은 깊은 협곡으로 변했다. 불타오르는 자산 시장에 영리하게 올라탄 이들과 그러지 못한 이들 사이의 자산 격차는 이제 평생을 일해도 좁힐 수 없는 아득한 거리로 남았다. 어디 그뿐인가. 글로벌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며 천문학적인 성과급을 잔치하듯 나누는 일류 기업의 노동자와, 고물가와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으며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골목길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단절은 그야말로 절벽이다.

이런 거대한 단절을 마주한 대다수 국민의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감정을 두고 누군가는 속 좁은 시기심이라 폄하할지 모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오랜 속담을 들이밀며 타인의 성공을 축하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질투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는 이 집단적 감정은 단순한 심술이나 질투의 프레임으로 가두기는 어렵다. 평생을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해 온 순수한 노력이 송두리째 배신당했다는 허탈함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저 멀리 앞서가는 이들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잔인한 불안과 절망의 차이 정도다. 결국 대개의 성실함이 무능함의 방증이 되고 요령 없음이 죄가 되는 사회로 그만큼 대중이 느끼는 박탈감은 정당한 질투에서 분노로 치 닫고 있다.

시인 기형도는 시에서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맸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고백하며 그 처절한 결핍의 끝에서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라고 읊조렸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을 “나의 생은 언제나 털어놓아 보아도,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매듭지었다. 결핍과 박탈감에서 비롯된 질투가 역설적이게도 삶을 밀고 나가는 치열한 동력이 됐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거대한 격차 앞에서 좌절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대중 역시 이 ‘질투’라는 감정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 자신보다 앞서간 이들의 자산 표를 살피고 가지지 못한 기회를 보며 느끼는 가난하고 치미는 감정이다. 결국 질투가 나의 힘이 아닌 모두의 힘이 될 판국이다.

문제는 이런 괜한 에너지가 향하는 방향이다. 개인의 마음속에 쌓인 불안과 절망, 질투의 에너지가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내면으로 스며들면 사회는 극단적인 냉소주의와 혐오에 휩싸일수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는 자조가 유행어가 되는 이유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며 미래를 지워버리는 청년들의 선택은 이미 시작된 경고음이다. 나아가 이 질투가 서로를 향한 칼날이 돼 계층 간 세대 간 성별 간의 맹목적인 갈등으로 폭발한다면 우리 사회의 존립을 흔들 심각한 사회적 균열의 뇌관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위험한 폭발물을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제거해 나가야 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앞만 보고 나가는 질문에서 주변을 살펴야 하는 얘기들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대중의 질투를 철없는 투정으로 치부하며 누를 것이 아니다. 그 질투가 품고 있는 공정함에 대한 열망과 신분 상승의 에너지를 어떻게 사회적 동력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형도의 시 구절처럼 질투를 파괴가 아닌 창조의 힘으로, 분열이 아닌 역동성의 힘으로 바꿔 내는 정치 사회적인 제도의 변환점이 절실한 시점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땀 흘린 노력의 가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자산 소득이 노동 소득을 압도적으로 비웃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공정과 정의를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경제가 언제는 좋은 지표였냐 만은 빈상가와 당장 풀칠이나 하는 정도의 상가들은 난리를 넘고 있다. 백화점 뷔페식당이 메워져 자리가 없어도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얘기는 그야말로 구호에 그치고 있다. 단순히 경제 지표를 관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사다리를 다시 세워 “나도 노력하면 저들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를 재건하는 일이다. 잘나가는 기업과 소외된 기업 간의 이중구조를 완화하고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줄 때 실망한 젊은이들의 믿음은 건전한 경쟁심으로 변할 수 있다.

세계 4위의 수출국, 코스피 1만에 근접하는 숫자는 분명 위대한 성취다. 하지만 그 위대함은 성장의 과실이 사회의 모세혈관까지 골고루 스며들 때 비로소 완성된다. 소수의 화려한 잔치로 끝나는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내부에 축적된 분노에 의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운 박탈감과 질투의 에너지를 외면하면 모두가 외롭게 된다. 같이 가야 행복한 간단한 명제와도 같다. 구조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 느끼기에 따라 질투는 우리에게 변하라고 다그치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다독여야 할 에너지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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