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등 대중가요계에서 숏폼은 음악 제작의 ‘기준’
“밈 챌린지 떠야 음원도 인기” 기획부터 숏폼 염두
1분 남짓한 숏폼(쇼트폼)이 일상이 된 시대. 숏폼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홍보하는 수단을 넘어서 제작 문법을 변화시키고 있다.
긴 영상을 더 이상 집중해서 보지 않는 세태에 맞춰 영상이나 음악의 길이는 짧아지고, 대중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을 내용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획 단계부터 숏폼 바이럴(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지는 현상)을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콘텐츠는 더 웃기고, 더 짧아지고, 더 빨라졌다. 드라마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 가요계가 숏폼 시대에 대처하는 방법을 살펴봤다.
그룹 라이즈의 ‘두 유어 댄스’ 세로 뮤직비디오 영상(왼쪽)과 코르티스의 ‘영크리에이터크루’ 숏폼 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K팝에서 숏폼(쇼트폼)은 홍보를 넘어 음악을 만드는 기준이 되고 있다. 연예기획사들이 숏폼 콘텐츠를 앨범 제작의 ‘상수’로 보기 시작하면서다. 1020세대의 숏폼 콘텐츠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15초 분량의 숏폼이 음원차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숏폼 플랫폼은 1020세대 대부분이 머무르는 곳으로 영향력이 크다”며 “음반의 기획부터 홍보까지 숏폼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K팝 그룹들은 하이라이트 안무나 음악에 맞는 동작을 선보이는 ‘안무 챌린지 영상’을 올리는 걸 넘어서, 숏폼에 맞춘 전용 콘텐츠를 제작하고 전용 음원을 배포하는 등 숏폼을 통해 대중을 사로잡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잘파세대’ 멤버들이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각종 ‘밈 숏폼’ 영상 업로드에 가세하면서 팀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29일 국내 대표 음원사이트인 멜론 음원차트 톰10에 이름을 올린 곡 상당수가 숏폼 바이럴을 계기로 확산된 곡들이다. 각 2위, 3위, 7위를 기록한 코르티스 ‘레드레드’, 아일릿의 ‘잇츠 미’, 예나의 ‘캐치 캐치’는 안무 챌린지 영상이 흥행하며 음원차트 인기를 이끌었다. 5위를 기록한 리센느의 ‘러브 어택’은 유튜브 자체콘텐츠 인기로, 10위를 기록한 한로로의 ‘사랑하게 될 거야’는 공연 라이브 영상이 숏폼으로 유통되며 차트를 역주행했다.
하츠투하츠가 미니 2집 <레몬 탱> 컴백에 앞서 준비한 숏폼 예고영상. 하츠투하츠 공식 인스타그램 갈무리
에스파 정규 2집 <레모네이드>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레모니’ 캐릭터. 인스타그램 갈무리
소속사들은 숏폼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정규 2집 <레모네이드>로 컴백한 그룹 에스파는 컴백과 동시에 홍보용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레모니’ 캐릭터를 공개했다. 레모니는 타이틀 곡 ‘레모네이드’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레모니 캐릭터를 앞세운 릴스 전용 콘텐츠를 연속 공개하며 알고리즘 노출을 노렸다.
이달 15일 컴백한 그룹 라이즈는 타이틀 곡 ‘두 유어 댄스’의 뮤직비디오를 스마트폰 환경에 최적화된 세로 버전으로 제작했다. 하츠투하츠는 숏폼 규격에 맞춘 컴백 예고 영상을 여럿 업로드했다. 기존 기획 영상이 긴 길이로 만들어졌던 것과 달리, 숏폼에서만 볼 수 있는 전용 콘텐츠를 제작한 것이다.
숏폼 바이럴을 위해 앨범 발매 이전 음원의 일부를 공개하기도 한다. 정식 발매 전 앨범 수록곡의 일부분을 공개하는 ‘하이라이트 멜로디’는 음반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바이럴을 위한 온라인 전초전에 가까워졌다. 10여 초간의 음원을 먼저 공개한 뒤, 음원을 활용한 챌린지 영상을 올리며 사람들이 곡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룹 코르티스이 ‘레드 레드 (치어링 버전)’에 맞춰 챌린지를 선보이고 있다. 코르티스 공식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룹 코르티스는 지난 2월 한 행사에서 ‘영크리에이터크루’(영크크) 무대를 선보인 직후 하이라이트 음원을 숏폼 플랫폼을 통해 공개했다. 공식 음원은 숏폼 챌린지를 이어간 뒤 4월에서야 발매됐다. 코르티스가 북중미 월드컵을 위해 제작한 ‘레드레드’ 개사 버전은 음원 발매 없이 숏폼에서만 사용되게 했다.
엔터업계 관계자 A씨는 기자와 통화하며 “대개 소속사마다 숏폼 기획 부서가 있다. 젊고 아이디어가 있는 분들이 소속돼 앨범 공개 방식을 정하고, 아티스트에게 숏폼 촬영을 권유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앨범의 큰 틀을 짤 때부터 숏폼 콘텐츠와 연계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최근 데뷔한 아이돌은 잘파세대인 만큼 쉬는 시간에도 숏폼 영상을 찍고 놀 정도로 적극적”이라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만큼 어떤 게 잘 어울리고, 인기를 끌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룹 하츠투하츠와 라이즈가 함께 안무 챌린지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그룹 리센느의 멤버 미나미가 자신의 유행어 ‘거제 야호’를 활용한 숏폼 영상. 인스타그램 갈무리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안무와 노래를 만들 때도 챌린지를 무시할 수 없다”며 “짧은 시간 봤을 때 뇌리에 박히는 동작을 신경 써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음악부터 퍼포먼스 전반을 숏폼에 염두에 두고 ‘포인트 안무’ 혹은 ‘중독성 있는 후렴’ 등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며 기획한다는 것이다.
기획사의 의도적 전략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팬들이 직접 발굴하는 챌린지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월 발매된 하츠투하츠의 ‘루드!’다. 활동 초기 공식 SNS 채널을 통해 공개한 챌린지 구간보다 멤버 스텔라의 랩 파트가 팬들 사이에 인기를 얻고 챌린지로 퍼지며 음원차트 장기흥행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A씨는 “후렴에는 이제 숏폼 전략이 기본으로 붙는다”면서도 “다만 어떤 구간이 실제 유행할지는 결국 팬들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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