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취향’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운 문화 현장의 소식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마음은 가볍게, 생각은 깊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말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조명하는 두 편의 연극이 막을 올립니다.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사사로운 사서>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선보이는 <사소한 것들>입니다. 두 작품 모두 보통 사람들의 작지만 가볍지 않은 선택과 연대를 그린 작품들인데요, 치열한 일상에 마모되어 조용한 쉼표가 필요한 이들에게 권합니다.
물에 젖은 책을 구하는 사람들…‘사사로운 사서’
연극 <사사로운 사서>. 국립극단 제공
도서관은 조용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이 쌓여 있습니다. 연극 <사사로운 사서>는 바로 그 공간을 무대로 삼습니다.
작품의 배경은 과거 고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한 공공도서관입니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어느 여름날,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책들이 보관된 보존서고가 침수됩니다. 젖은 책들을 폐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일 수도 있지만 사서들은 다른 길을 택합니다. 버리는 대신 복원하기로 한 것이죠.
국립극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이 공동기획으로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리는 이 작품은 도서관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서들의 조용한 연대기입니다. 지난해 초연 당시 객석점유율 94%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고, 올해 한층 더 깊어진 호흡으로 관객을 만납니다.
<사사로운 사서> 포스터. 국립극단 제공
극은 사서들이 물에 젖은 책들을 한 장씩 넘기며 말리고 복구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쫓아갑니다. 축축하게 젖어버린 책장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나직한 대화 속에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내면에 입은 저마다의 생채기와 과거의 트라우마가 묻어 있습니다. 책을 복원하는 이들의 행위는 결국 타인의 지식을 관리하느라 정작 돌보지 못했던 스스로의 삶과 상처를 다정하게 다독이고 치유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대도 흥미롭습니다. 실제 도서관을 옮겨놓은 듯한 공간을 구현해 관객들은 마치 도서관 한구석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책장을 정리하고, 젖은 책을 말리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의 모습이 보고있노라면 깨닫게 됩니다. 책을 살리는 일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한 시선으로 조명해온 강현주 연출가는 “책에 담긴 수만 가지 다른 생각이 한 톨도 버려지지 않고 복원되듯, 서로 다른 가치관이 공존하는 세계를 응원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빠른 속도와 강한 자극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지친 일상속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눈여겨볼 만합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처럼 잔잔하게 스며들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연극입니다.
▶공연기간: 2026년 6월 20일(토) ~ 6월 28일(일)
▶공연시간: 평일 19시 30분 / 주말 15시 (화요일 쉼)
▶공연장소: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러닝타임: 100분
내 곁에 지극히 현실적인 부조리…‘사소한 것들’
연극 <사소한 것들> 포스터. 오늘도 봄 제공
우리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는 쉽게 긴장하고 방어막을 치지만, 정작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균열은 아주 작고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제47회 서울연극제 자유경연작으로 무대에 오르는 창작집단 ‘오늘도 봄’의 신작 <사소한 것들>은 일상이라는 평온한 표면 아래 숨겨진 인간관계의 이면과 날카로운 이중성을 포착합니다.
이 작품은 실제 국내 대학에서 발생한 특별감사와 갑질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요, 이야기는 한 직원의 신고로 대리 서명과 50만원의 공금 횡령 사실이 드러난 대학 행정지원실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비리가 발각된 후에도 직원들은 잘못을 바로잡기보다 “누가 신고했는가”를 찾는 데 몰두합니다.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거대한 비리가 아닌, 누구나 직장이나 조직에서 한번쯤 마주했을 ‘사소한’ 부조리들입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는 잘못, 침묵을 강요하는 조직문화,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불편해하는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무대 위에 펼쳐집니다.
무겁고 어둡기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블랙코미디와 서스펜스를 결합해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관객은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웃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죠.
직장생활을 해본 관객이라면 왠지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괜히 문제 만들지 말자”,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정의보다 우선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고립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든요.
채수욱 연출은 이 작품을 “지금도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는 사소한 불의와 정의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합니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작은 문제들이 사실은 더 큰 부조리의 출발점일 수 있다는 것이죠.
공연이 열리는 대학로극장 쿼드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가변형 극장입니다. 202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대본 공모 선정작이자, 제47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입니다. 배우 문예주, 심영민, 박정현 등이 출연해 오피스 내 치밀한 심리전을 생생한 앙상블로 선보입니다.
익숙해서 서글프고, 평범해서 더 무거운, 내 곁에 지극히 현실적인 부조리를 목격해 보시죠.
▶공연기간: 2026년 6월 19일(토) ~ 6월 28일(일)
▶공연시간: 평일 19시 30분 / 주말 16시 (월요일 쉼)
▶공연장소: 대학로극장 쿼드
▶러닝타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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