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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몽마르트르의 붉은 처녀’가 기록한 파리코뮨의 현장 ‘루이즈 미셸 ...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뜨거움’, 누군가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거나 불가능한 이상에 투신하는 열정이야말로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시대에 필요한 미덕이다. 칼 마르크스가 대영박물관에 앉아서...

‘몽마르트르의 붉은 처녀’가 기록한 파리코뮨의 현장 ‘루이즈 미셸 ...

불란서책방

‘몽마르트르의 붉은 처녀’라는 별명으로 불린 혁명가 루이즈 미셸의 회고록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단 한 명의 프랑스 여성’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 된 ‘루이즈 미셸 회고록’ (지은이 루이즈 미셸 Louise Michel 옮긴이 0000 펴낸곳 불란서책방)은 19세기 프랑스의 교사, 시인, 작가, 아나키스트, 혁명가. 1871년 파리 코뮌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루이즈 미셸이 자신의 삶을 직접 돌아본 자서전이다.

1871년 파리 코뮌. 굶주림과 포격이 빗발치는 혁명의 중심에 총을 든 교사, 루이즈 미셸이 있었다. 불평등에 맞서며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던 19세기 가장 급진적인 여성 혁명가, 루이즈 미셸이 용기와 희생, 불굴의 의지로 새겨진 삶을 스스로 들려준다.

사람들은 그녀를 ‘몽마르트르의 붉은 처녀’라 불렀고, 권력은 그녀를 ‘광녀’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을 정의할 권리를 타인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이 책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혁명적 순간인 ‘파리 코뮌’ 상징적 인물, 루이즈 미셸의 회고록이다.

1871년 3월, 보불전쟁의 패배로 좌절한 민중들이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자치 정부, 파리 코뮌을 세웠다. 그 중심에 한 여성이 있었다. 루이즈 미셸, ‘몽마르트르의 붉은 처녀’라 불린 그녀의 이야기다. ‘모두를 위한 권리, 모두를 위한 과학기술, 모두를 위한 부’ 150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외침은 오히려 더 절박하게 들린다. 억압과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정신, 자유를 향한 열망,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한 혁명가의 진솔한 고백이 이 페이지들을 채우고 있다.

이 책은 한 여성이 어떻게 혁명가로 성장했는지,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어떻게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선포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보고서다. 그녀는 1830년 하녀의 사생아로 태어나 교사가 되었고, 파리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회의 불평등을 목격했다. 그렇게 교실을 넘어 거리로 나갔고, 1871년 파리 코뮌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서 총을 들었고 전투에 참여했다. 재판정에서 그녀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신념을 옹호했다. “당신들이 나를 살려둔다면, 나는 멈추지 않고 복수를 외칠 것이며, 사면위원회의 살인자들에게 우리 형제들의 복수를 고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초기 생애가 “꿈과 학업으로 이루어진” 시기였으며, 이는 삶의 두 번째 부분인 “투쟁의 시기”를 위한 준비였다고 말한다. 시골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조부모의 사랑과 교육을 통해 어린 시절의 감수성을 형성해간 시기와 교사 준비기를 거쳐 교육자가 되는 과정은 19세기 유럽의 실생활에 관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1871년 봄, 파리 시내가 민중의 자치 정부로 탈바꿈하던 순간, 프랑스 제3 제정의 정치적 풍경과 보불전쟁 당시의 파리 포위, 그리고 코뮌 수립 과정과 ‘피의 일주일’로 불리는 참혹한 코뮌 진압 과정과 이후의 탄압, 동지들의 체포와 사형, 이어진 재판 과정을 미셸의 관점에서 세밀하게 그려진다.

코뮌 실패 후 프랑스 식민지 뉴칼레도니아에서 7년 동안 유형수이자 추방자로 지내며 원주민과 교류하고, 학교를 세우고 원주민의 봉기를 옹호하며 그들 문화와 자연을 연구한다. 미셸은 척박하고 가혹한 유배 생활에서도 좌절하지 않았고 당당한 인간으로 미래를 준비하며 자기의 삶을 유지해나간다. 심지어 식물의 전염병에 백신을 놓는 방법도 그곳에서 연구했다.

루이즈 미셸은 국가라는 권력과 가부장제라는 일상의 권력이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간파한 혁명가였다. 남성 중심의 혁명 대열 속에서도 여성의 교육권과 참정권을 당당히 주장했던 그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녀에게 해방이란 단순히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여성 해방은 전체 사회의 해방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배지 뉴칼레도니아에서 원주민의 저항을 지지한 것은, 제국주의 권력이 여성을 억압하는 권력과 같은 논리로 작동한다는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루이즈 미셸의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를 고립시키지 않고 모든 소외된 존재와의 연대로 확장된다.

1880년 사면으로 프랑스로 돌아온 후, 루이즈 미셸은 급진적인 무정부주의의 길로 들어선다. 프랑스 전역을 돌며 강연하고, 노동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며 투옥과 출소를 반복한다. 1883년 파리에서 일어난 ‘실업자 빵 폭동’으로 6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후 집필된 이 회고록은 그 시기를 전후해 그녀가 진심으로 아꼈던 두 사람, 친구와 어머니의 죽음과 그 상실을 처연하게 기록한다. 회고록 마지막엔 루이즈 미셸의 겪은 세 번의 재판기록이 수록되어 당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산업혁명 시대, 미셸이 목격한 것은 기계와 공장이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광경이었다. 권력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모두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지배자와 자본가들만 배를 불리는 현실에 분노했다. 2026년 인공지능, 자동화, 생명공학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미셸이 살던 시대와 무엇이 달라졌는가? 빈부 격차의 심화, 민주주의의 위협, 기술과 데이터 독점, 노동 소외 속에 미셸이 꿈꾼 세상은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유효하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뜨거움’, 누군가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거나 불가능한 이상에 투신하는 열정이야말로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시대에 필요한 미덕이다.

칼 마르크스가 대영박물관에 앉아서 팸플릿을 쓰고 있던 시간, 한 여교사는 파리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무기를 들고 프랑스 정부군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이 책은 그녀가 직접 기록한 혁명의 일기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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