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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몰타의 '모두를 위한 AI' 실험, 한국형 'AI 의무교육'의 이정표로

글로벌 IT 역사상 유례가 없는 첫 시도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혜택 뒤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조건이 붙어... 씨티은행과 증권사 IT애널리스트를 거쳐 LG디스플레이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금융·증권·IT·제조를...

몰타의 '모두를 위한 AI' 실험, 한국형 'AI 의무교육'의 이정표로

[김희연의 AI시대 인사이트 70]

포용적 제도가 결정하는 AI시대의 국가 운명

지중해 한가운데, 서울의 절반 남짓한 면적의 작은 섬나라가 세계 테크 생태계의 중심축을 흔들고 있다. 인구 57만 명의 몰타가 정부 차원에서 오픈AI와 손잡고 전 국민에게 유료 서비스인 챗GPT 플러스를 1년간 무상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중해 국가 몰타의 전 국민 상대 AI교육을 가상해 챗GPT가 생성한 실사형 이미지. (자료=뉴스버스)

기업이나 특정 기관이 아닌, 한 국가의 거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프리미엄 AI 서비스를 전면 개방한 것은 글로벌 IT 역사상 유례가 없는 첫 시도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혜택 뒤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조건이 붙어 있다. 그냥 주지 않는다. 무상 이용권을 받으려면 몰타대학교가 개발하고 몰타디지털혁신청이 운영하는 필수 AI 활용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한다. '쓸 줄 아는 사람을 먼저 만들고, 그다음 도구를 쥐여준다'는 정교한 설계가 이 실험의 핵심이다.

몰타의 이러한 선택은 우연이 아니다. EU가 가상자산 규제를 마련하기 전인 2018년, 이미 관련 법제를 세계 최초로 선제 정비하여 글로벌 거래소와 자본을 끌어모은 것이 대표적이다. 남들이 탁상공론을 벌이는 동안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해 치고 나가는 국가부흥 전략의 일환이다.

공평, 형평, 공정- 세 개념이 충돌하는 지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만 AI를 준다는 것, 과연 공평한가?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 시간이 없는 사람,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처음부터 배제되는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이 바로 공평, 형평, 공정 세 개념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공평(公平)은 모두에게 1/n로 똑같이 나눠주는 것이다. 키가 다른 세 사람에게 같은 높이의 발판을 하나씩 주는 논리다. 키 작은 사람은 발판을 딛고도 여전히 담장 너머 경기를 보지 못한다. 형평(衡平)은 형편에 맞는 공평함이다. 키 작은 사람에게 발판을 더 얹어 결과적으로 모두가 경기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공정(公正)은 그 기준과 과정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타당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모든 국민에게 아무 조건 없이 무료 AI 계정을 나눠주면 공평하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최고급 연장을 쥐어줘봐야 의미가 없다. 오히려 AI를 다룰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더 빠르게 벌어진다. 교육과 활용 숙련도가 전제되지 않은 기술 지원은 평등이 아니라 자원의 방임일 뿐이다.

온 국민이 동시에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명확한 순서와 공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교육의 기회는 모두에게 열어두되, 먼저 배우고 활용하려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다. 교육을 이수한 이들이 먼저 1년간 AI를 쓰며 그 강력한 효용을 직장 동료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자연스럽게 전파하게 한다. 먼저 배운 사람이 다음 사람을 배움의 장으로 끌어오는 선순환 구조. 기회의 문은 공평하게 활짝 열어두되, 문을 통과하는 노력은 스스로 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공평과 형평이 현명하게 결합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제도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남미는 가난의 굴레에 갇혔고, 영국의 식민지들은 상대적으로 번영하고 있는가. 저자들이 찾은 답은 기후도, 자원도, 민족성도 아닌 바로 '제도'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약탈과 정복의 착취적 제도를 이식했고, 번영한 나라들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포용적 제도를 구축했다. 가장 극적인 증거로 한반도의 예를 든다. 같은 땅, 같은 언어, 같은 역사를 공유한 민족이 제도 하나로 완전히 다른 운명의 궤적을 걷고 있다. 남한은 사유재산이 보장되고 누구나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포용적 제도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고, 북한은 정반대이다.

이 통찰을 AI 시대의 대한민국에 대입해 보자. 우리 정부 역시 '모두의 AI'를 화두로 국가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러나 그 포용적 접근을 완성할 실행의 구체성으로 몰타의 접근을 벤치마크 하면 어떨까? 단, 몰타가 단일 플랫폼을 지정한 것과 달리, 한국형 설계는 국가 보안 기준을 충족하는 서비스들이 바우처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열어두는 방식이 더 적합하다. 핵심 설계는 단순하다. 교육 이수자에게 순차적으로 지원하되, 기존 예산 구조를 영리하게 연결한다.

학생은 각 시도 교육청의 AI 디지털교과서 예산을 활용해 생성형 AI 실습 라이선스를 의무교육 항목으로 편성한다. 성인은 정부가 이미 추진 중인 5년간 100만 명 AI 훈련 예산을 고용노동부·평생교육 바우처 시스템과 직결한다. 훈련을 성실히 이수한 이에게만 1년간 AI 이용권을 지급하면, 교육이 실사용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완성된다.

그리고 이 모든 설계의 선행 조건이 하나 있다. 가르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온라인 강의도 디지털 소외 계층에게는 닿지 못한다. 현직 교사, 평생교육 강사, 지역 도서관 사서, 주민센터 복지사- 이미 지역 주민과 접점이 있는 이들을 먼저 AI 교육자로 양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먼저 배운 사람이 다음 사람을 가르치는 이 순환이 전국으로 퍼지는 확산의 엔진이 된다.

강사 양성, 교육 이수, AI 도구 지원, 실사용을 통한 문제 해결, 집단지성 역량 축적. 이 흐름이 맞물려 돌아갈 때 '모두의 AI'는 슬로건이 아니라 실제 국가 인프라가 된다. 국가 예산은 쓰고 나면 사라지지만, 국민의 손끝에 남은 기술 활용력은 증발하지 않는 국가적 자산이 된다.

글 내용에 맞추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자료=뉴스버스)

대한민국, 다시 교육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땅속에 묻힌 자원이 없는 빈약한 나라다. 그 결핍을 채운 유일한 동력은 국민의 교육열이었다. 그 교육이 길러낸 인재들이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반도체를, 조선을, 방산을 세계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이제 다음 경쟁은 AI 기술을 누가 개발하느냐가 아니다. 국민 전체의 지적 체력과 일상에서의 AI 응용력이 국가의 부를 결정한다. 소상공인이 자신의 페인 포인트를 AI로 해결하고, 중소 자영업자와 농어촌 주민, 전국의 직장인과 학생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혁신적 실험을 분출할 때 진정한 국가 경쟁력이 완성된다. 시장의 자율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국가가 포용적 제도로 판을 깔아야 할 골든타임이다.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는 지금 우리에게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AI를 국민 모두의 위대한 능력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가?"

김희연

은 기업전략 컨설턴트다. 씨티은행과 증권사 IT애널리스트를 거쳐 LG디스플레이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금융·증권·IT·제조를 아우르는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 MI·신사업 발굴·IR을 총괄했다. 퇴임 후엔 AI를 이용해 현자·석학들과 대화하며 차별화 전략 및 리더십 해법을 탐색하는 <AI스토밍(AI-Storming) 방식> 을 창안했고, 관련 저작권을 갖고 있다. 이 독창적  AI활용 방법론을 기반으로 기업과 기관에 <전략 컨설팅> 및 <AI 강의> 등을 하고,  뉴스버스에도 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공감지능시대>와 <리더는 AI에게 질문하지 않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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