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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매일시론] 제조 역량 한번 잃으면 되찾기 어려워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반도체를 구할 수 없어서다. 당시 팬데믹 여파로 이동 수요가 급감하자, 완성차 업체들은 감산(減産)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차량용 반도체 재고와 주문도 크게 줄었다. 이후 자동차 수요가 회복돼...

[매일시론] 제조 역량 한번 잃으면 되찾기 어려워

이동구 울산대학교 초빙교수·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디지털혁신 U포럼 위원장·공학박사

최근 중동 전쟁이 발발(勃發)하자, 대부분의 사람은 더 큰 군사 충돌을 걱정하거나 정치적 긴장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 경제를 가장 크게 흔든 것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공급망(Supply Chain)의 붕괴다. 전 세계 원유와 나프타, LNG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에, 이 봉쇄만으로도 유가 급등과 공급망 교란이 발생하는 핵심 이슈가 되었다.

현대 경제는 전 세계가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다. 원자재는 한 나라에서 생산되고 부품은 다른 나라에서 제조되며, 최종 제품은 전 세계로 소비된다. 이 네트워크에서 단 하나의 고리가 끊어지더라도, 세계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는 건 너무나 자명하다. 공급망 붕괴는 원자재, 부품, 제품이 생산지에서 수요지로 이동하는 흐름이 멈추거나 심각히 지연돼, 생산 차질과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현상을 뜻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극심한 생산 차질을 겪었다.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반도체를 구할 수 없어서다. 당시 팬데믹 여파로 이동 수요가 급감하자, 완성차 업체들은 감산(減産)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차량용 반도체 재고와 주문도 크게 줄었다. 이후 자동차 수요가 회복돼 주문량을 늘렸지만, 차량용 반도체를 확보할 수 없었다.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생산은 줄이고, 마진이 높은 IT 기기용 칩 생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신차(新車) 주문 후 차를 받기까지 1년 넘게 기다렸다.

이렇듯 불과 5년 전 겪었던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은, 분업화된 글로벌 제조 시스템의 취약성을 깨닫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제조 업체들은 소재·부품 내재화와 기술개발 등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힘을 쏟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반복된 공급망 붕괴는 제조 업체들이 과도한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다. 이들은 재고와 공급 업체를 최대한 줄이면서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효율성만 앞세우다 보니,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과거 선진국 중심으로 나타난 탈산업화의 영향도 크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자국(自國)에 있던 공장을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등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후 서구 국가들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벗어나 금융, IT, 경영 컨설팅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자국 국민이 사용하는 공산품을 경쟁력 있게 생산하는 능력, 즉 제조 역량은 한 나라의 생활수준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데도 소홀히 했다.

과연 제조업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새로운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인터넷과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가동이 필수다. 지금까진 세계화된 시장에서 서로 최고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협력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 시장이 개방되면서 갇혀 있던 저임금 노동 시장이 세계 시장으로 급격하게 확대된 영향이다. 이땐 글로벌 기업들이 효율성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했다. 문제는 글로벌 정치 및 경제가 안정적일 때 잘 굴러가던 이 시스템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처럼 불시에 닥치는 위험들이 반복되면서, 기업들에겐 '효율성'보다 '위험의 분산'이 훨씬 중요한 경영 요소로 부각됐다. 당연히 각 국가는 중국에 대한 의존성을 점점 더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생산 네트워크의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비용이 조금 더 들고 시스템이 조금 덜 효율적이어도, 덜 위험한 방식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다극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글로벌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시장을 이끄는 제조업 강국이다. 그러나 각종 규제에 가로막힌 기업들이 국내를 떠나 해외에 공장을 짓는 상황에 마주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번 잃은 제조 역량을 되찾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가 직면한 존재론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후세에게 제조업의 중요성과 그 위상을 일깨우며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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