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제3국행 배 타고르호 위에서 바다로 몸을 던졌지만 현실의 ‘이명준’은 인도의 붉은 흙을 밟고 살아남아 역사가 됐다. 1954년 인도 첸나이 항구에 내린 6·25 한국인 반공 포로 76명 중 한 사람이던 고(故) 현동화(1932~2021) 전 인도 한인회장이 소설 속 이명준의 모델이었다. 76명에게 인도는 최종 목적지가 아닌 멕시코·브라질 등으로 가기 위한 대기소였지만 현동화 등 3명은 인도 잔류를 결정했다. 양계장을 짓고 가발용 인모(人毛)를 모으며 현지에 뿌리 내렸다. 한국의 인도 진출사 첫 페이지가 됐다.
▶뉴델리의 외교 단지 차나캬푸리에 위치한 한국 대사관 부지는 당시 우리 국력으로 넘볼 수 없던 노른자위 땅이었다. 1970년대 초대 인도 주재 대사였던 고(故) 이범석 장관이 인디라 간디 총리의 아들과 쌓은 두터운 친분 덕이었다. 하지만 건립 예산이 부족했다. 현동화가 현장 반장을 자임했다. 1세대 한인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보태고 직접 노동자로 일했다. 그렇게 인도에서도 우리 외교가 성장했다.
▶1990년대 인도 중부 푸네의 대우전자 공장 건설 현장에선 팩스 한 장을 보내려면 차로 2시간을 가야 했다. 팩스는 한 장 들어가는데도 끊기기 일쑤여서 서류 한 뭉치 보내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던 시절이다. 공장 하나 지으려면 도장 1000개가 필요하다는 나라에서 우리 기업들은 몸으로 부딪치며 길을 냈다.
▶인도 주재원들 삶은 ‘웃픈’ 사연의 연속이다. “2분 뒤 가겠다”는 말이 “한 시간 뒤 혹은 못 갈 수도 있다”는 뜻인 ‘인도식 시간표’를 몰랐다. 정전이 일상이라 한밤중 에어컨이 꺼지면 아이를 깨워 차량으로 달려가 에어컨을 켜고 버텼다. 놀거리가 없어 ‘인도 주재원 자녀들이 공부를 제일 잘한다’고 했다. 한 주재원은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한국서 목욕 한번 깨끗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해외 상사맨들의 ‘고생담 배틀’에서도 인도 주재원이 늘 1등이었다.
▶선발대 30명으로 시작한 현대차는 인도 시장 점유율 2위를 굳혔다. LG전자는 가전에서, 삼성전자는 휴대폰 시장에서 1위를 다툰다. 1만2000여 명에 불과한 인도 한인들의 성과는 숫자가 훨씬 많은 다른 나라 한인들 못지않다. 인도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오늘날 성취는 맨손으로 길을 낸 한인 1세대들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했다. 전쟁 포로로 시작한 이들의 땀과 눈물을 기억하며 경의를 표한다. 나마스테.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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