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허원순|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심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첫날 회의에서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선출하는 과정부터 난항이었다. 공익위원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의 위원장 선출 과정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정면 반대한 것이다.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권 교수는 2019년부터 정부 입장을 많이 대변하는 공익위원으로 이 위원회에서 활동해왔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그의 위원장 선출에 반발해 아예 퇴장해버려 올해도 위원회가 갈 길에 상당한 험로가 예상된다. 가뜩이나 임금 문제에 대한 노사 간 입장차가 큰 데다, 이 위원회 구성까지 근로자와 사용자 위원, 공익위원 각각 9명씩 동수로 돼 있다. 합리적 결정을 하기에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전부터 있어왔다.
권순원 최저임금위원장이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 1차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초반에 삐걱거리는 것은 사실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세 섹터의 위원들 모두 노련하고 노회한 나름 전문가들이다. 첫날의 난기류도 더 많은 것을 확보하려는 기 싸움 내지는 전략적 전초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국내외 경제 여건도 좋지 않은 판에 노사 공히 앞으로 과연 어떤 안을 내놓을지다. 특히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이 지난해보다 2.9% 올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상당히 높은 인상률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 된다. 지난해 인상률은 27~28년 만에 가장 낮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올해 노동계는 두 자리 숫자를 내세울 공산이 크다고 전망한다. 위원장 선출에서 파행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다. 무리하게 임금을 올릴 여건이 안 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 인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상위 임금 계층까지 고임금자로까지 위로 줄줄이 밀어 올려 전체 고용시장의 임금을 다 올린다. 임금의 승수 효과가 적지 않다.
가뜩이나 저성장의 장기 불황 와중에 이란전쟁이 근 두 달째 매듭이 지워지지 않으면서 나라 안팎의 경제 여건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업과 개인, 투자와 소비 모든 수치와 통계가 그렇다. 반도체와 관련 소부장 기업, 조선 2차전지 방산 정도의 일부 산업이 나름 견고하게 버티고 있으나 중소기업으로 가면 상황은 많이 다르다. 수출에서도 전체 숫자는 아직 괜찮다지만, 일부 업종의 편중을 걱정하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만큼 ‘반도체 착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업현장은 양극화되고 있다. 치솟은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에 타격을 받는 영세사업자가 크게 늘었다. 취업자가 많은 건설업의 경우 산업 전체가 고비용 여파로 최악의 국면에 빠졌다.
최저임금위원회 류기정 사용자 위원과 류기섭 근로자 위원이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 1차 전원회의에서 권순원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저임금이 일차적으로 적용되는 근로자들이 바로 이런 쪽에 몰려 있다. 한계선상의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의 사업이 폐업하지 않고 어떻게든 유지되게 하려면 이성적 합리적 상식적인 결과가 나와야 한다.
단순히 몇 %를 올리느냐의 문제보다 최저임금 제도의 유연한 적용이 더 절실한 문제다. 일차적으로 업종별 구분 적용 등 오래 미뤄온 생산적 대안의 실행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가 됐다.
이 문제는 업종별 ‘차별화’라는 잘못된 언어 선택, 개념 적용으로 인해 계속 배제돼왔다. 차별화가 아니라 업종별로 산업의 여건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현실에 맞는 임금제도를 채택하자는 게 핵심이다. 최저임금을 산업의 ‘업종별로 구별’해 달리 적용하는 것은 따로 법을 고치지 않고도 가능하다. 최저임금법(제4조 1항)에 가능한 법적 근거도 이미 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해보지는 않은 방식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지역별로, 연령별로 달리 적용하는 방안까지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데서는 지역별로도 최저임금이 다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획일적이다. 생활비가 비싼 서울 도심 한가운데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생활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싼 오지의 면(面) 단위나 도서지방 편의점 알바나 시간당 똑같은 최저임금을 받도록 법이 강제하고 있다.
내용으로 올해 예상되는 큰 쟁점은 배달기사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여부다. 배달 라이더는 근로기준법상 사업자다. 일종의 도급제 근로자여서 최저임금 적용 여부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배달기사는 무엇보다 근로시간부터 일정하지 않고, 건당 수수료를 기반으로 일의 성과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는 등 소득도 제각각 천차만별이어서 최저임금을 일괄적으로 정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최근 노동에 대한 ‘개념의 연장’ 근로자에 대한 확대적용으로 배달기사들도 노동의 범주 안에 끌어들이려는 제도적 시도가 아주 강한 게 사실이다.
안팎의 위기 와중에 노사가 공존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최저임금위는 그런 논의에서 중요한 나름의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동시에 최저임금위의 논의도 이제는 매년 반복되는 무한 갈등과 뻔한 대치로 법정시한을 넘기는 식의 타성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뭔가 신선한 변화를 기대한다.
허원순
현 고려대 특임교수(전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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