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고 세계 곳곳에서 지정학적 갈등이 불거지는 등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경제계·정치권을 막론하고 전략 재편이 한창이다. 서울와이어는 오는 15일 ‘불확실성 시대, 한국 경제 혁신전략’을 주제로 ‘제7회 서울와이어 혁신포럼(SWIF 2026)’을 열고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기업의 미래 전략을 살펴본다. 또한 서울와이어도 이같은 거대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이달 중순 제호 변경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에 맞춰 사명과 브랜드명 등의 변경이 실질적인 혁신 성과로 이어진 주요 사례를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SK에코플랜트 자회사 환경시설관리(옛 EMC홀딩스)가 운영 중인 경산공공하수처리시설 전경. 사진=SK에코플랜트
[서울와이어=안채영 기자]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사명 변경을 기점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공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 에너지, 환경, 스마트 디벨로퍼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기업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흐름이다. 이 같은 변화는 트렌드를 뛰어넘어 ‘종합 사업자’로 거듭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풀이된다.
◆‘환경·에너지’로 간판 바꾼 건설사들, 성적표는?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곳은 사명 변경 이후 사업 구조 전환을 본격화한 SK에코플랜트다. SK건설에서 사명을 바꾼 이후, 주택 사업 비중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폐기물 처리와 수처리 등 환경 사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최근에는 폐배터리 리사이클링(Recycling) 분야에서 유럽과 북미 등 글로벌 거점을 확대하며 수소·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와 환경을 잇는 ‘순환 경제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DL이앤씨 역시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 ‘이앤씨(E&C)’가 가진 엔지니어링(Engineering) 역량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다.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을 바탕으로 탄소 포집 및 저장(CCUS)과 소형모듈원전(SMR) 등 친환경 플랜트 분야 진출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올해 초 대규모 해외 EPC 수주에 잇따라 성공하며, 변동성이 큰 국내 주택 시장 의존도를 40% 이하로 낮추는 체질 개선을 진행 중이다.
사명에 '친환경' 의지를 직접적으로 투영한 포스코이앤씨(POSCO E&C)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 포스코건설에서 사명을 바꾼 포스코이앤씨는 '에코(Eco)'와 '챌린지(Challenge)'를 전면에 내세워 그린라이프 주거 모델과 저탄소 철강 구조물 시공 등 친환경 건설 시장을 선도했다. 특히 그룹사의 수소 환원 제철소 건립 등 대규모 친환경 플랜트 사업을 도맡으며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 구축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HL D&I 한라 관계자들이 데이터센터 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전문업체 온큐 글로벌(OnQ Global)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HL 디앤아이 한라
◆중견사도 ‘탈건설’ 가속… 투자·운영까지 확장
이러한 움직임은 중견 건설사로도 확산되고 있다. 중견 건설사들 역시 사명에서 '건설'이나 '주택'을 떼어내고 '에코(Eco)', '파트너스(Partners)', '아이앤씨(I&C)' 등을 붙이며 투자개발과 운영 관리 비중을 높이고 있다.
과거 한라건설에서 이름을 바꾼 HL 디앤아이 한라(HL D&I 한라)는 사명에 ‘디벨로퍼(Developer)’와 ‘혁신(Innovation)’의 의지를 담았다. 이들은 데이터센터 구축, 물류단지 개발 등 고부가가치 투자 사업에 집중했다. 시공뿐만 아니라 기획과 투자까지 아우르는 사업 구조로 전환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SGC이테크건설 역시 최근 SGC E&C로 사명을 변경하며 ‘엔지니어링’ 역량을 전면에 앞세워 글로벌 EPC 시장 공략과 친환경 에너지 플랜트 분야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자회사 중심의 리브랜딩 전략도 주목된다. 자산관리와 임대 운영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사명에 ‘파트너스’나 ‘아이앤씨(I&C)’ 등을 반영해 종합 부동산 서비스 기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대표적으로 우미건설은 부동산 자산관리 및 투자 전문 자회사인 우미글로벌을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한편, 부동산 프롭테크와 자산운용에 특화된 ‘린파트너스(Lynn Partners)’를 운영하며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섰다.
계룡건설 역시 자산관리 전문 법인을 통해 사명에 '파트너스'를 녹여내 시공 이후의 임대 관리 및 운영까지 책임지는 종합 서비스 체계를 구축했다. 또 엠디엠(MDM) 그룹은 건설 자회사 사명에 ‘아이앤씨(I&C, Investment & Construction)’를 활용해 '투자형 디벨로퍼'의 정체성을 알렸다. 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투자하며 운영 수익까지 챙기는 ‘종합 솔루션 사업자’로 진화하겠다는 의지다.
포스코이앤씨와 DNV 관계자들이 지난달 해상풍력 사업협력 협약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포스코이앤씨
◆“사명 변경은 정체성 선언”… 핵심은 수익 구조 변화
업계에서는 건설사들의 이 같은 ‘탈건설’ 리브랜딩 흐름을 수익 구조 변화의 신호로 봤다. 수년간 이어진 주택 경기 둔화와 고금리, 원자재 가격 변동성으로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수익원 확보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에너지·환경 사업과 투자개발 사업을 강화하며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고 실적 변동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시장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과거 건설주는 전형적인 경기 민감주로 분류돼 저평가받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신사업 비중을 확대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재평가 움직임이 나타나는 추세다.
결국 올해 건설업계의 승부처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얼마나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건설사들은 자본을 투자하고, 기획하며, 기술을 운영하는 종합 사업자로 진화하고 있다”며 “사명 변경은 이러한 정체성 변화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가장 강력한 의지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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