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뉴스 조수지 기자)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진행된 진에어 2025-2026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이 다섯 번째 경기까지 치러지며 막을 내렸다. 정규리그 1위 대한항공이 마지막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확정했지만, 시리즈 전체를 관통한 비디오 판독 논쟁이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우승 팀과 준우승 팀 모두에게 뒷맛이 남는 마무리였다.
이번 남자부 챔피언결정전은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이 5전 3승제로 맞붙은 가운데 치열한 접전 끝에 승부가 갈렸다. 대한항공은 5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세트 스코어 3-1로 제압하며 시리즈 전적 3승 2패를 만들었다. 통합 우승 트로피를 되찾은 대한항공은 정규리그 1위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시리즈 중반 발생한 판정 이슈 탓에 축제 분위기가 온전히 유지되지는 못했다.
계양 2차전 라인 판정 갈등, 대한항공 우승 시리즈에 그림자 드리워. (사진=연합뉴스)
무엇보다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차전 순간이 이번 챔피언결정전의 분위기를 뒤흔들었다. 4일 열린 2차전에서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은 풀세트 접전을 벌였고, 승부 향방을 좌우한 5세트 말미 라인 판정이 이후 시리즈 전체 논쟁의 출발점이 됐다. 승패와 직결된 장면이었던 만큼 두 구단과 팬들의 시선이 모두 한 점에 모였다.
논란의 장면은 현대캐피탈이 5세트에서 14-13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나왔다. 현대캐피탈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가 강한 서브를 상대 코트로 날렸고, 공은 대한항공 진영 사이드라인 끝지점 근처에 떨어졌다. 맨눈으로 확인했을 때는 인으로 보였다는 반응이 많았고, 현대캐피탈 선수들도 득점을 기대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 과정이 길어지면서 긴장감이 커졌고, 최종 판정은 아웃으로 선언됐다. 평면 화면을 바탕으로 여러 각도가 검토됐지만, 판독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양 팀 벤치와 관중석의 반응은 뚜렷하게 갈렸다. 현대캐피탈 입장에서는 세트와 경기, 나아가 시리즈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장면이 무산된 순간이었다.
여기에 앞선 장면과의 대비가 논란을 더욱 키웠다. 같은 5세트에서 대한항공 호세 마쏘의 블로킹 볼이 레오의 서브와 유사한 위치에 떨어졌고, 당시에는 인 판정이 내려져 대한항공 득점으로 연결됐다. 두 판정이 연달아 나오면서 코트 안팎에서는 판정 기준과 일관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시청자들 역시 화면을 비교하며 해석 차이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만약 레오의 서브가 인으로 인정됐다면 현대캐피탈이 15-13으로 경기를 끝낼 수 있었던 상황이라 아쉬움은 더 커졌다. 실제로 현대캐피탈은 듀스로 이어진 2차전 5세트에서 끝내 흐름을 되찾지 못했고, 16-18 패배를 기록했다. 시리즈 전체 스코어 1승 1패로 균형을 맞출 기회를 놓쳤고, 이후 승부의 무게 중심이 대한항공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국제 규정과 비교했을 때의 차이도 논쟁의 한 축을 형성했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공이 코트에 닿는 찰나 경계 라인에 극히 일부라도 접촉하면 무조건 인으로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또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는 초고속 3D 트래킹 시스템인 ‘호크아이’를 도입해 공과 라인의 접촉 여부를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밀하게 판별한다. 첨단 장비를 기반으로 한 명확한 기준이 정착된 셈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V리그는 FIVB와 다른 ‘로컬룰’을 통해 비디오 판독을 진행하고 있으며, 접지면과 최대 압박 시점 기준으로 라인 안쪽 선이 보이면 아웃으로 판정하는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은 이 기준과 평면 방송 카메라의 한계를 근거로 2차전 장면이 규정상 정당한 판독이었다고 설명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문제의 핵심에는 평면 카메라 기반 판독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한다. 강한 스파이크나 서브가 코트에 충돌할 때 배구공은 순간적으로 납작하게 찌그러지는데, 이때 화면에는 실제 접지 면적보다 더 넓은 둥근 윤곽이 과장돼 나타난다. 육안으로는 공이 선을 물고 있는 것처럼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되지만, 실제로 선과 맞닿은 부분은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지점을 보완하기 위해 V리그는 접지 시점을 기준으로 공의 윤곽선 안쪽으로 라인 선이 보이면 아웃으로 본다는 방식을 채택해 왔다. 찌그러진 공의 형상을 감안해 실제로 바닥에 닿은 부분이 어디인지 역산하는 개념에 가깝다. 기술 장비가 국제대회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마련된 일종의 절충안이지만, 판정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의견이 더해졌다.
판정 이후 현대캐피탈의 대응은 강경했다. 현대캐피탈은 사후 판독과 관련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며 소청심사 절차까지 밟았다. 한국배구연맹 소청심사위원회는 논란이 된 2차전 장면을 다시 검토했고, 당시 비디오 판독이 연맹 운영 요강과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따른 정당한 판정이라고 결론 내렸다. 규정상 문제는 없었다는 판단이었지만, 현장의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연맹은 같은 시기 AI 기술을 활용한 신규 판독 장비 도입 계획도 드러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벌어진 사례가 V리그 시스템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만큼, 고도화된 분석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판독 체계 개선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연맹은 다음 시즌이 아닌 2026-2027시즌 도입을 목표 시점으로 제시하며 기술 검증과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도 개선 논의와는 별개로 현대캐피탈 블랑 감독의 메시지는 시리즈 내내 강하게 이어졌다. 블랑 감독은 3차전을 승리한 뒤 인터뷰에서 마음속으로는 현대캐피탈이 2승 1패로 앞섰다고 언급하며 2차전 판정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소감이 아니라 논란 장면을 계속 환기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후 현대캐피탈이 4차전까지 가져가 시리즈 전적 3승 1패 주장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블랑 감독은 손가락으로 ‘3승 1패’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자신들의 우위 인식을 제스처로 드러냈다. 공인된 공식 스코어와 다른 내용을 공개 석상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행위여서 파장이 확대됐다. 대한항공 우승 여부와 무관하게 현대캐피탈이 사실상 진짜 우승팀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배구연맹은 결국 제동을 걸었다. 챔피언결정전 5차전을 하루 앞둔 9일 연맹은 공식 입장을 내고 블랑 감독의 언행에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부적절한 제스처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판정과 결과에 대한 존중을 요청했다. 연맹 차원의 권위와 리그 공신력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지만, 이미 시리즈를 둘러싼 논쟁은 상당 부분 확산된 뒤였다.
5차전이 끝나고 대한항공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시리즈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통합 우승에 성공하고도 2차전 비디오 판독 논란으로 인해 마음껏 환호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맞았다. 현대캐피탈 역시 규정상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레오 서브 장면에 대한 아쉬움과 판정 불신을 떨치지 못한 채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V리그 전반의 판독 시스템이 지닌 구조적 문제가 재조명됐다. FIVB 수준의 입체 분석 장비를 갖추지 못한 현실에서 로컬룰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국제대회와 유사한 형태의 AI·3D 트래킹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가 됐다. 일관성 논란이 누적될수록 경기 결과에 대한 신뢰도와 리그 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연맹이 2026-2027시즌을 목표로 추진 중인 AI 기반 판독 시스템은 모든 논쟁을 한 번에 해소하는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최신 기술을 활용해 공과 라인의 접촉 여부를 더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면, 현재와 같은 ‘화면 착시’ 논쟁은 상당 부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다만 기술 도입 이후에도 명확한 룰 설정과 충분한 사전 안내가 병행돼야 새로운 논란을 예방할 수 있다.
무엇보다 V리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 부분은 판정의 일관성과 수용 과정이다. 같은 위치,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된 장면이 서로 다른 결말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쌓이면 선수와 팬 모두가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모든 팀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시즌 내내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일이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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