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0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조기 대량 공급, 투기 수요 억제, 고금리에 의한 대출 연체와 경매 폭증 등으로 주택 가격이 폭락할 경우에 대비해, 공공 주택 보유용으로 일정 기준 이하의 주택을 대량 매입하는 시스템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라고 올렸다. 대통령은 또 일부 기사를 공유하며 “부동산 투기에 관심 가진 분들은 6개월 후인 ‘내년 1분기 한은 금리 3.5% 예상’ 이 부분을 특히 유의하셔야 한다”고 썼다. “부동산투기를 부추기는 것으로 드러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조세제도 역시 조세정의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시정할 것”이라고도 했다.
8월 3일 발표한 ‘세금으로 집값 잡는’ ‘2026년 세제 개편안’이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집값 폭락’을 들먹이며 ‘유의하셔야 한다’라는 상당히 듣기 거북한 말까지 서슴없이 쏟아냈다. 게다가, 마치 부동산 세제가 잘못되어 집값이 천정부지로 뛴다고 생각하는 듯 ‘조세 정의’까지 꺼내 들며 기어코 문제투성이 세제개편안을 밀어붙일 기세다.
그동안 이재명 정부 들어 국민을 윽박지르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짐을 보면서 걱정을 아니 할 수 없다. 이번에 대통령이 X에 올린 글을 보고 국민 대다수는 다분히 국민을 겁박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국민이 선출한 이 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국민을 윽박지르고 집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이 현실은 개탄스러운 것임이 틀림없다.
대통령이 X에 올린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리는 대통령의 개인적 생각에 감정이 고스란히 실린 글이 아무런 여과 장치도 없이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이 상황이 과연 제대로 된 국정 시스템인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 줄 글, 또는 표정 하나하나는 정책의 방향을 암시하며 국민경제와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대통령의 말과 글 그리고 표정까지도 철저히 검토하고 검증받고 정제되어 국민에게 전달되어야만 한다. 어떤 정책이 됐든 갈고 닦고 다시 살펴보는 과정을 거치라고 장관이 있고 비서진이 있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능한 지도자는 널리 인재를 모아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민을 위해 좋은 정책을 만들게 했다. 그러기 위해 참모진에 막중한 권한과 임무가 부여됐고 정책의 실패를 나무라지 않고 정책이 없음을 추상같이 질책했다. 중앙행정부처와 대통령실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대통령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제시하면 날밤을 새워 검토하고 아니다 싶으면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보고해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소명일 것이다.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듯 나랏일도 마찬가지다. 어디 한 군데 톱니가 어긋나거나 기름칠이 부족하다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기계가 멈추듯 무리한 국정 운영, 국정의 불협화음은 국민 모두를 불안하게 한다.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 욕망은 정교하게 돌아가는 국정의 톱니바퀴에 균열을 가져오는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대통령은 모름지기 5천만 국민의 가슴과 머리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파악하고 그 가슴 가슴을 감동하게 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진대 대통령 한 사람의 가슴과 머리에 대한 맹신으로 정책이 만들어지고 그런 정책을 5천만 국민에게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늦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라도 만기친람에 대한 집착을 거둬들이고 장관과 비서진을 믿고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대통령 눈치 보지 않고 추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공직사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국민 생활이 편안해진다. 타운홀 미팅이다, 현장 점검이다 하는 자리에서 장관이나 관료들 질책하고 핀잔 주는 모습은 국민이 보기에도 민망하다.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검토받고 검증받아 정제되는 과정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X’에 올라오는 대통령의 글은 정말 X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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