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멀티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수시로 접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뉴스에 나오는 정치가들의 비행과 국회에서 싸움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의 모습, 파렴치범들이 판치는 사회의 모습을 보노라면 평생 동안 이들을 가르치는 교직에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여 견딜 수가 없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거짓말하지 마라, 친구들에게 욕하거나 때리지 마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마라, 어른을 보면 공손히 인사를 해라’라고 가르치며 이를 어기면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를 때리면서 가르쳐서 빛나는 졸업장을 주어 졸업시켰건만 이제 어른이 된 제자들이 어른답지 못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모두가 내 탓이요 우리 교육자들이 잘못 가르친 것 같아 후회스럽다. 지금이라도 다시 불러서 회초리를 들고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싶은 심정이다.
1970년대 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생 일대의 과제인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데 정말로 고민을 많이 했다. 가난하게 살던 시절에 너도나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기 위하여 공대, 의대, 법대를 선호하던 시절에 나는 과감하게 사범대학을 진학하며 교직을 택했다. 이유는 단 하나,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직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학부모의 방문을 받거나 가정방문을 하는 등 학부모를 만날 때는 그래도 자식을 잘 가르쳐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보면 피로가 사라지고 뿌듯한 보람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는 아무리 힘들어도 학생을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각오가 새로워지곤 했다.
예전에 학교 현장에서의 선생님의 임무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퇴근 후에는 교사들에게 마을별 담당 지역을 나눠서 반상회 지도, 민방위 교육을 맡기는 것은 물론 선거 때가 되면 주민들의 선거 참여 지도는 물론 선거 관리, 선거 개표 업무까지 해야 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교사의 신분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또는 국가에서 스승을 믿고 존경하는 풍토는 바로 학생이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로 이어져서 교육의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정치가들이 아무리 권력 싸움을 해도, 아무리 깡패들과 범법자들이 판을 쳐도 국민들은 이들을 야단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시기에 마음이 든든했으며 우리 자식만은 이러한 나쁜 길로 빠지지 말고 올바른 인간,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 바라며 선생님께 믿고 맡겼던 것이다.
교육이 국가백년대계라는 말은 교육을 통해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적합한 인간을 기르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교육의 중요성과 교육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만고의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은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인 동시에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왕세자의 스승을 사부(師傅)라고 높여 불렀으며 영국의 여왕도 학교를 방문할 때 교사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국가백년대계인 교육을 위한 것이지 교사 개인을 존경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며 훌륭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아주 상식적이며 기본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교육적 풍토가 모두 사라졌다.
수업 중에 학생이 칠판에 나와서 문제를 풀게 한 것을 아동학대라고 경찰에 고소하는 학부모, 교사의 교육적인 체벌을 경찰에 고소하고 학교에 출동하는 경찰, 학생과 학부모에게 폭행을 당하는 교사, 교육 현장을 정치 싸움판에 끌어들이는 정치가들, 이쯤이면 국가와 사회는 교육을 포기한 것이고, 정치가들은 국가 백년대계를 포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학부모도 자식 교육을 교사에게 맡길 의지가 없는 것이므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기후 환경의 재앙이 다가오는 불안감처럼 국가백년대계인 교육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이러한 현실을 모두가 깊이 인식하여 시급히 대비하기를 호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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