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 중원대 교수
우리나라 경찰 역사는 정권의 부침과 더불어 흥망성쇠가 이어졌다. 조선이 망하자 1910년 일본에서 파견된 테라우치 통감과 박제순 총리대신이 경찰권을 일본이 위탁한다는 각서에 서명했고 이로써 대한제국 경찰권은 종말을 고하고 일제에 넘어갔다. 그 후 일본은 헌병경찰제도를 시행하면서 고등계 형사들을 통해 무자비하게 독립투사를 잡아 고문하고 무고한 주민들을 위협했다. 어린아이가 울 때 “일본 순사가 온다”고 하는 말은 이때부터 나왔는데 이 당시 시퍼런 일본도를 차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해방 후 한국을 점령한 미군 측은 경무부를 만들어 조병옥을 수장으로 임명했고 전국 경찰을 그 휘하에 뒀다.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경찰 시스템을 영미식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는 일제 앞잡이였던 순사들을 그대로 경찰관으로 유임함으로써 청산의 기회를 놓쳤다. 아직도 경찰문화가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니게 된 역사적 원인이 일제 경찰 잔재로 기인한다고 본다. 이 당시 미군정은 경찰업무의 축소를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경찰업무만 보고 위생이나 행정경찰 업무는 일선 행정기관에서 이관한 비경찰화 작업이나 고문으로 악명높은 고등계를 폐지하고 정보과를 신설했다. 일본패검을 없애고, 경찰봉으로 대체하고, 여자 경찰관을 채용해 여성과 소념 범죄를 취급하게 했다. 또 중앙경찰위원회를 신설하거나 각종 치안 악법을 폐지하는 등 민주 경찰 작업을 시행했다.
문제는 1948년 이승만 정부는 고문 경찰의 잔재가 남아있는 이들을 일소하지 못하고 국립경찰 지휘권을 인수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내무부 장관소속의 2급 치안국장을 둬 그 밑에 경찰을 두게 했고 대통령은 경찰을 수족처럼 부렸다고 본다. 1974년 치안본부, 1991년 경찰청, 2003년 자치경찰위원회 창설로 경찰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최근 한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 사건이 발생했는데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경찰의 비호와 은폐를 하는 등 조직적 수사비리가 검사의 보완수사로 드러났다.
현재 장윤기 사건에서 담당 수사팀장이 구속됐고 윗선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이 사건을 보더라도 경찰은 마음만 먹어도 성범죄나 사기, 민생사건의 핵심증거들을 고의로 방치하고 은폐하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지역 경찰의 비리이며 우리나라 경찰의 조직적 범죄인 이른바 향찰비리다.
서로 끼리끼리 아우, 형, 선배로 통하면서 뒤를 봐주는 것이다. 지역경찰인 향찰은 혈연, 학연, 지연 등 연고주의적 경찰부패로 발생하곤 한다. 마음만 먹으면 경찰서 경위나 경감 정도의 계급이 각종 사건을 눈감고 봐주고 방치할 수 있다.
그 피해는 누구한테 가겠는가. 이제는 검찰의 수사권도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누가 이를 견제하고 바로잡겠는가’ 하는 국민의 원성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경찰수사권은 검사에 의해 통제되고 지휘받았는데 이것마저 없어진다니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경찰관들을 순환 근무시키겠다고 한다. 수만명을 순환 근무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 효율적인지 모르겠다. 경찰 수사 비리를 막는 방법은 경찰권을 한 번 더 감독하고 통제해야 하는데 이런 제도적 장치가 사라져버렸으니 누가 이를 책임질 것인가.
그것보다 경찰이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것은 다음이다.
첫째, 경찰의 중립성이라고 본다. 정치 권력에 눈치를 보는 경찰이 중립적이지 못하면 경찰 비리는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정권에 충성하기보다는 국민에 봉사하는 경찰상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경찰 비리를 근절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처벌과 징계를 강화하고, 경찰 청렴 교육 강화, 향찰 근무 순환제 등이 요구된다.
셋째, 법 집행의 공정성, 엄정한 수사권 행사, 편파적인 권한 행사 등을 배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감사원의 감찰, 중대범죄수사청의 재수사, 검사의 보완 수사 등이 필요하다. 경찰의 신뢰 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다.
진정으로 국민의 경찰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다시 권력에 굴종할 것인가. 이것은 전국 경찰관 개개인의 윤리의식과 자질 문제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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