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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돋을새김] 국력은 돈이 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도 그렇지만 애플과 경쟁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IT) 기술, 누구나 취업을 원하는 다수의 글로벌 대기업, 안전한 사회, 새벽 배송, 온열 시트가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살기 좋은 나라’의...

[돋을새김] 국력은 돈이 된다

강준구 정치부장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놓는 경향은 대체로 젊은이들이 강하다. 최근 만난 민주당의 한 중진은 3년 전 20대들과의 번개 저녁 얘기를 전했다. 그들은 “우리는 이미 충분히 선진국인데 미국, 중국 등 외국에 너무 숙이고 들어간다. 당당하게 할 말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도 그렇지만 애플과 경쟁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IT) 기술, 누구나 취업을 원하는 다수의 글로벌 대기업, 안전한 사회, 새벽 배송, 온열 시트가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살기 좋은 나라’의 증거를 이것저것 꺼냈다. 60대인 그는 일부 대목에선 갸웃갸웃했지만 대체로 신선한 시각에 수긍했다고 한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케데헌’의 글로벌 히트, 한식 열풍, BTS, 손흥민과 이강인, 한류 관광 등으로 각 분야에서 약진했으니 우리가 더 선진국이 됐다는 시각을 부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소프트파워 외에 최근 세계 톱클래스에 들어간 분야가 더 있다. 방위산업과 반도체산업은 기존 선진국 독식 구조를 깨고 글로벌 생태계를 재편하는 중이다. 이재명정부는 투자를 확대해 글로벌 4대 방산·항공우주 강국을 구현하겠다고 선포했다. 반도체산업은 삼성전자 노사 협상을 세계 유수 언론이 속보로 타전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기업 두 곳이 동시에 정상권으로 진입했다. 국민배당금 논란이나 성과급 협상 과정을 두고 ‘기업 실적에 너도나도 숟가락을 들고 덤빈다’는 지적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 다만 현재 통상 환경은 기업 역량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시장에 국력을 투영하면서, 그리고 인공지능(AI) 기반 기술혁명 폭발로 국가별 산업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통상 환경은 힘 좀 쓴다는 국가·국가연합의 사활을 건 전장이 됐다. 각 부처는 물론 청와대 비서실·국가안보실과 국가정보원까지 ‘경제안보’ 기능에 총동원되는 이유다.

노르웨이는 2023년 주력 전차 교체 사업에서 품질 평가 1등을 기록했던 K2 흑표 대신 독일의 레오파르트2를 도입했다. 당시 협상팀은 노르웨이가 외교적 이유로 무리한 결정을 했다고 분석했다. 유럽 시장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의 이점을 독일이 챙긴 것이다. 노르웨이는 지난 1월 차세대 장거리 정밀화력 체계(LRPFS)로 우리 천무를 선택했다. 그 배경에는 기업 역량과 함께 이번에는 나토 못지않게 양국 관계를 ‘반드시’ 고려하라는 정부 차원의 압력도 영향을 끼쳤다는 게 정론이다. 캐나다의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 미국·이란 전쟁에 휘말린 중동의 방산 계약 역시 이와 유사한 ‘국력의 개입’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 기업의 한 임원은 “해외에서 벌어지는 국가적 사업은 기업 노력만으로 따내기 어려워진 시대다. 실상 우리 손을 떠난 얘기”라며 “정부 차원에서 국가적 역량이 총동원돼도 수주할까 말까 하는 판”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문제를 꺼냈을 때 정부는 기업 총수와 연합팀을 구성해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반도체는 최대 경쟁국인 대만에 불리하지 않도록 최혜국 대우를 받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과 함께 미국의 파워에 주눅 들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국가 경쟁력이 한 축을 차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판한 방식에는 동의가 어렵지만, 이란 전쟁의 배후인 그를 견제하고 미국에 부정적 시그널을 주겠다는 문제의식에는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 ‘깡패’ 국가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을 국력을 갖추고, 적절히 활용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아침에 미국 견제로 위기에 놓인 중국 기술패권 꼴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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