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보험 시장이 ‘경상환자 8주 룰’ 시행을 앞두고 깊은 공방에 빠져들었다.
과잉 진료를 차단하고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세우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제도는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속에 시행 시점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정책적 불확실성만 키우는 모양새다.
그사이 통제되지 않는 보험금 누수는 고스란히 2,500만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 압박으로 이어지며 보험 시스템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 ‘치료권’ 뒤에 숨은 집단 이기주의와 정책의 부재
‘8주 룰’의 핵심은 간단하다. 타박상이나 염좌 등 경상 환자(12~14급)가 8주를 초과해 치료를 받을 경우,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해 치료의 객관적 필요성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의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제도 시행이 지연되는 근본 원인은 의료계, 특히 한방업계의 거센 반발에 있다.
한방업계는 이를 ‘환자의 치료권 침해’라고 강변하지만, 그 속내는 수입 감소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실제로 장기 치료 환자의 90% 가까이가 한방 병원에 쏠려 있는 현실에서, 진단서 의무화는 곧 ‘나이롱환자’의 퇴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금융당국의 미온적인 조율과 입법 절차의 지연이 더해지며 제도의 동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 손해율 급등의 경고음,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시행 지연의 대가는 가혹하다.
최근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90%에 육박하며 적자 마지노선을 넘나들고 있다.
사고 규모와 상관없이 ‘일단 눕고 보자’는 식의 보상 심리가 만연해지면서, 경상 환자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이 중증 환자나 사망 사고 보상금을 압도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보험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든다.
누군가의 부당한 장기 입원이 다른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는 공정의 가치에도 어긋날뿐더러, 보험 산업 전체의 부실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이제는 결단할 때
정부는 더 이상 이해관계자의 눈치를 보며 제도 시행을 늦춰선 안 된다.
우선 의료계가 주장하는 ‘심사의 편향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보험사가 아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 공신력 있는 제3의 기관이 8주 초과 진료의 적정성을 엄격히 따지는 객관적 심사 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단순히 기간으로만 제한할 것이 아니라, 부상 부위별 평균 치료 기간을 면밀히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표준화된 진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의학적 근거가 뒷받침되는 유연하고도 단호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자동차보험은 공적 성격이 강한 의무보험인 만큼, 특정 집단의 수익 보호보다 전체 가입자의 권익 보호가 우선이라는 정부의 강력한 시행 의지가 중요하다.
‘8주 룰’은 단순히 진단서 한 장 더 받는 절차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진료 관행을 바로잡고 보험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정부의 결단 없는 지연은 결국 선량한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일부의 부당이득을 채워주는 꼴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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