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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구의 뿌리를 찾아서] 효자·효부들의 지극한 효행에 하늘도...

생성형 AI 생성 이미지. 인간이란 생명체는 대자연이라는 환경 속에 가장 빨리 적용하고, 부적응 시에 가장 먼저 벗어난다. 대자연이란 교도소에 갇힌 죄수에 비유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탈옥한다. 대자연의...

[대구의 뿌리를 찾아서] 효자·효부들의 지극한 효행에 하늘도...

(18) 유가(瑜伽)를 통한 인간 본심의 발현

유가읍 선인들 윤리적 향취 남겨

부모 향한 정성 대대로 전해저

나라가 위태로울 땐 먼저 나서

적병 사살 하는 등 큰 전과 올려

비슬산 신선의 비파소리는 우주생성의 빅뱅이었고, 평화풍연의 서곡으로 들렸다. 생성형 AI 생성 이미지.

인간이란 생명체는 대자연이라는 환경 속에 가장 빨리 적용하고, 부적응 시에 가장 먼저 벗어난다. 대자연이란 교도소에 갇힌 죄수에 비유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탈옥한다. 대자연의 변모 양상에 따라서 인간의 성격도 형성된다. 자연이 변화가 격하면, 사람의 성격도 성급해 진다. 성격이 급해지면 말이 빠르고, 짧아진다. 농담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급한 지역은 충청도 지역이다. 말은 느릿느릿하게 하지만 가장 짧게 소통한다. “개고기 잡수십니까?”라는 말을 “개혀?”로 소통한다. 대구 사람들도 “그 사람의 성씨(姓氏)가 가(賈)씨가 아닌가?”를 “가가 가(賈)가가?”라고 한다. 이왕에 한마디 더 소개하면 “단단히 단도리(だんどり)를 해라.”를 “단디 해라.”고 한다.

이런 말이 현존하는 곳이 바로 유가읍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쌍계2리에 거주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때 2000년도 미니홈피(Mini Homepage)에서 나온 유머(humor)가 기억난다. 처음으로 KTX 고속열차를 탄 대구 사람들이 “니 이까이끼라? 이카이 니 카이가? 마카 니 카이가(Are you going to do it like this? Is this train carriage your space? Is it all your space)?” 라는 대구 사람들의 말싸움 소리를 듣던 서울사람들이 “저 사람들 일본 사람 맞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웃음이 나올 정도로 구수한 지역 토속말이 살아있는 유가읍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심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도 이곳에서 “이게 마까 니 끼가?(이것이 모두 네 것이냐?)”라는 말을 들었다.

◇유가에 살았던 선인들이 남기고 간 체취를 더듬어

조선 시대를 살았던 이곳 사람들에게 유교 기반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인간 본심을 꽃피운 것으로 효자(孝子), 열부(烈婦) 및 충렬(忠烈)을 정려(旌閭)했다. 유가읍 선인들이 오늘까지 남기고 간 윤리적 향취(倫理的 香臭)를 더듬어 보면, i) 가태리(佳泰里) 창녕성씨(昌寧成氏) 성기호(成基鎬)가 살았다. 성품은 하늘이 내린 것으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했다. 고을 어른들을 부모처럼 극진히 대접하고 섬기니 고을이나 이웃에서도 모두 칭송했으며, 영남명덕회(嶺南明德會)에서 그를 표창했다. ii) 효부(孝婦)로는 본말리(本末里) 고령김씨(高靈金氏) 김진홍(金晉洪)의 딸로 안동김씨(安東金氏) 김연묵(金鍊默)의 아내였던 고령김씨 부인(高靈金氏 婦人)이 있다. 시어머니께서 눈병으로 실명(失明)하시니 지극한 정성으로 10여 년을 받들었다. 김씨가 병이 들어 죽음에 이르러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받들지 못하는 죄 무엇이 이보다 크겠습니까. 제가 죽은 뒤에 염라대왕에게 아뢰어 시어머니의 눈을 밝게 하여 바라건대 이 죄를 속죄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과연 다음 해 김씨의 제삿날에 시어머니의 눈이 홀연히 밝았다. 사람들이 김씨 부인의 효행에 감응(感應)한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내 고장 전통 가꾸기, 편집위원회 1981年 達城郡 혹은 김대호, 「유가에 숨 쉬는 유래와 전설」, 일류출판사 : “孝婦 高靈 金氏가 安東 金氏(典書公派)後孫 金鍊默에게 시집 왔는데, 가난하게 살가는 형편에다 홀로 계시는 시어머니 또한 중풍으로 거동도 불편하여 매끼 식사도 손수 하시지 못하여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매일 받아 내면서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양했다고 한다. 노인이 중병을 앓으면 방안에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도 매일 목욕과 방안을 거울같이 맑게 다듬어 찾아오는 손님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로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또한 병중의 시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말만하면 무엇이든지 구해와 대접했다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시어머니가 “애야 잉어 곰을 먹고 싶구나”하고 먹을 것을 청했는데 얼음이 꽁꽁 얼어 물도 보이지 않는 추운 겨울철에 웬 잉어인가, 그러나 할머니는 싫다는 내색 하나 없이 괭이 한 자루와 고기를 담을 나무 물통 그리고 바가지를 들고 마을 앞 냇가에 작은 소(沼)로 갔어, 손발이 저리도록 살을 애는 추위도 아랑곳없이 오로지 시어머니에게 드릴 잉어만을 생각하고 얼음을 깨고 바가지로 물을 피기 시작했다.

하루의 반나절이 지날 무렵 소의 물이 어느 정도 줄어들자 어디서 나왔는지 커다란 잉어 세 마리가 설렁설렁 물 위로 기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늘도 이 할머니의 효성에 감동했는지. 그 추운 겨울에 잉어가 나타남에 이 할머니는 그 잉어를 잡아 집으로 돌아와 가마솥에 넣고 곰을 정성껏다려 시어머니에게 그 곰을 드시게 하였고, 또 시어머니가 눈병이 들어 앞을 못보게 되었지만 외출을 할 때는 꼭 업고 다니고, 식사할 때는 무슨 음식인지를 설명하면서 시중을 드는 등 더욱 극진히 봉양하였다.

그 후 병이 들어 시어머니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시어머니를 봉양하지 못하고 먼저 죽는 죄를 뉘우치고 죽어서라도 신령님께 빌어 시어머니의 눈을 뜨게 하리라 다짐하고 그러다가 돌아가신 지 3년 상이 되는 날 며느리의 효심으로 시어머니가 눈을 뜨게 되었으니. 고을 사람들은 효부 김씨의 효성을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라고 하면서 위 비를 세웠다.”)

충렬의 향취를 풍기는 선인(先人)으로는 밀양손씨(密陽孫氏)의 손인갑(孫仁甲, 생년미상~1592)이 있다. 후손들은 현재 본말리에 거주하고 있다.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에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 합천 의병장 정인홍(鄭仁弘)과 합류해 무계전투(茂溪戰鬪)에서 선봉장이 되어 왜병 100여 명을 수급했다. 임시 합천군수로 초계(草溪) 마진전투(馬津戰鬪)에서 순직했다.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증직되었고, 밀양 중봉서원(中峯書院)에서 향배하고 있다. (손인갑(孫仁甲),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선조실록(宣祖實錄)』 , 『난중잡록(亂中雜錄)』, 『임진전란사』 (이경석, 임진전란사간행위원회, 1974: “본관은 밀양(密陽).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 장령(掌令) 정인홍(鄭仁弘)의 의병부대에 합류, 중위장(中衛將)이 되어 실질적인 군지휘 책임자로서 뛰어난 통솔력을 발휘하였다. 합천군수 전현룡(田見龍)이 적을 두고 달아나자 그를 대신하여 한때 합천가장(陜川假將)을 맡기도 하였다. 1592년 6월 초순에 벌어진 무계전투(茂溪戰鬪) 때 정인홍군의 선봉장이 되어 적병 100여 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때 손인갑은 3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적진을 포위한 다음 50여 명의 정예병을 직접 이끌고 왜군의 병사(兵舍)에 뛰어들어 기습전으로 적을 대파하였다. 그 해 6월 말에 있었던 초계(草溪)의 마진전투(馬津戰鬪)에서도 특출한 전술을 구사, 낙동강을 항해 중이던 왜선단(倭船團)을 급습하여 격파하였다. 그 뒤 잔류 적선을 섬멸하기 위하여 말을 채찍질하며 물 가운데로 추격하던 중 하상의 묽은 모래와 진흙 속에 그대로 빠져 애마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 뒤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선조실록에 7회나 등장하며, 1592년 6월 1일자 기록엔 “의병장 손인갑(孫仁甲)이 초계(草溪)에서 적을 패배시켰는데, 인갑이 죽었다니(義兵將孫仁甲敗賊于草溪, 仁甲溺水死) 상류에 왜적이 노략질한다는 첩보(諜報)를 듣고, 적을 요격하여 십여 척을 빼앗는데,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다가 모래 구덩이에 빠져 병마(兵馬)와 의병장(義兵將)이 함께 빠져 돌아갔다. 군사들 모두가 통곡했고, 원근에 애석하기만 했다(軍兵皆哭而散, 遠近痛惜).”라고 적었다.

◇천상의 천계관(天鷄冠)이 비슬산 진달래(참꽃)가 되어

비슬산(琵瑟山)에 붉은 진달래가 핀 사연은? 동양 고천문학(古天文學)에서 천제(天帝)가 사는 북두칠성 자미원(北斗七星 紫微垣)에서 33개의 하늘이 차례차례 열리도록 정확한 새벽 시각(晨時)을 알리던 자미원의 ‘하늘 닭(天雄鷄)’이, 새벽 때를 어기고 한밤 중에 울었다가 천제(天帝)가 격노해 관직의 상징이었던 벼슬(볏)을 빼앗아 지상에다가 내동댕이쳤다. 이때 비슬산에 떨어진 하늘 닭 볏(鷄冠)이 꽃으로 피어난 게 불게 타는 아침노을(晨霞)을 닮아있었다.

이제는 “하늘까지 붉게 물들이는 비슬산 진달래꽃”을 보고 ‘비슬산 진달래에 묻혀(琵瑟山春思)’라는 50년 전에 지었던 졸시(拙詩)를 여기에 옮겨보고자 한다. “하늘 닭 볏 물든 빛깔, 비슬산 품에 내려와 진달래 되어 피었네. 봄날 선녀들 고운 뺨마저 부끄러워 물드는 날, 꽃잎마다 선연히 스민 이야기 흐르누나. 일연 스님 말씀 속, 도성(道成) 선사도 흔들린 마음 달래지 못해, 먼 산을 바라보았다 하니. 오늘 이 산마루에 서서 그길을 쫓아보리라. 회두청산(回頭靑山)이라, 바람결에 흔들리는 꽃잎과 함께 손 놓고 넋 잃은 채, 흰 구름 한조각 바라보리라. 비슬산 그대는 참으로 봄의 시(詩)를 품은 고운산이라.”

사실, 비슬산 진달래꽃(참꽃군락)의 만개 절경(滿開絶景)에 대해 “석가모니 이전, 이곳에선 정성천왕(靜聖天王)이라는 산신(山神)이 살고 있었다. 하늘의 신이 이곳에 하강한 사연은? 아침저녁에 하늘을 붉게 물들이거나 불타게 하는 원인을 찾던 중. 비슬산 진달래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오늘날 비슬산 정상을 “앉아 있는 부처(坐佛)의 모습”으로 연상했던 신라의 선사(禪師)들은 음역으로 ‘포산(Foshan, 苞山, 包山 혹은 佛山)이라 했다.

글=김도상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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