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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구논단] 사소취대(捨小取大)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애국가 2절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소나무는 추운 날씨와 모진 바람 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사계절 내내 푸름을 유지하여, 어떤 역경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기상과 높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 우리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수목이다.

[대구논단] 사소취대(捨小取大)

이석형 객원논설위원 행정학 박사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애국가 2절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소나무는 추운 날씨와 모진 바람 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사계절 내내 푸름을 유지하여, 어떤 역경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기상과 높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 우리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수목이다. 그런데 이런 소나무가 최근 전국적으로 속절없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한번 감염되면 나무가 100% 고사하여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 때문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1988년 10월 부산 금정산 일대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로 확산되며, 불과 30여 년 만에 푸르던 소나무 숲을 붉은 폐허로 바꾸어 놓고 있다. 매년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산림청과 지자체에서 산간 오지를 샅샅이 뒤지며 감염목을 베어내고 있지만,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의 이동 속도를 사람의 손길이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한반도를 수천 년간 지켜온 민족의 나무, 소나무가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현실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영혼의 유산이 소멸되는 듯한 깊은 안타까움과 슬픔을 안겨준다.

그 결과 이제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미 재선충병의 확산세는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을 훨씬 넘어섰다. 개별 지자체가 부여잡고 있는 방제선은 사방에서 뚫리고 있으며, 격전지마다 쏟아붓는 자원은 바다에 돌 던지기식의 소모전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국 산림의 모든 소나무를 완벽하게 보존하겠다는 초기 방침은 의지는 가상했으나 결과적으로 자원의 분산을 초래했고, 이도 저도 지켜내지 못하는 비극적 국면을 초래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가슴 아픈 감정에만 매여 모든 전선을 동시에 지키려 하는 불가능한 싸움을 계속할 수 없다.

‘사소취대(捨小取大)’라는 말이 있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한다는 뜻이다.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들릴지 모르나, 전멸의 위기 앞에서는 전략적인 결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수풀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 소방관들이 일부 구역의 소실을 감수하더라도 맞불을 놓아 핵심 시설을 지켜내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의 소나무 방제 정책에 필요한 단 하나의 패러다임 전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택과 집중’, 즉 ‘사소취대’의 철학이다. 모든 소나무를 다 살릴 수 없다면, 반드시 지켜내야 할 ‘국가적 생태·문화적 거점’을 명확히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그 예로 경북 울진의 금강송 군락지와같이 대체 불가능한 보존 가치를 지닌 소나무림을 들 수 있다. 울진 금강송 군락지는 수백 년간 보존되어 온 민족의 산림 유산이자, 숭례문 복원 등 국가 문화재의 중수와 중건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국보급 자원이다. 이곳이 재선충에 뚫린다는 것은 단순한 나무 몇 그루의 상실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이 지역도 2020년 재선충병이 발생했지만, 방제 끝에 2023년 청정 지역으로 전환되었다가, 불과 10개월 만인 2024년 다시 발생하는 등 재선충병 발생 안전지대가 아니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도 이미 소나무재선충병을 국가적 산림 재난으로 격상하고 범정부 비상 대응체계를 가동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는 만큼, 정부와 산림 당국은 하루빨리 전국적인 방제 지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모든 소나무를 살리겠다는 취지로 지방정부에 방제 부담을 분산시키는 미봉책을 거두고, 금강송 군락지 같은 핵심 거점 지역은 ‘국가 방제 벨트 특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국가 차원의 예산과 전문 인력, 최첨단 방제 기술을 총동원하는 ‘집중 사수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반면, 이미 확산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생태적·경제적 회복 불가능 판정을 받은 소나무림에 대해서는 과감히 ‘전략적 포기’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감염된 나무를 무한정 베어내는 소모적 방제를 줄이는 대신, 재선충에 강한 수종이나 참나무, 편백나무 등 경제성과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다른 나무들로 숲의 체질을 바꾸는 수종 전환(造林) 작업으로 빠르게 선회해야 한다. 버릴 곳은 과감히 버려 자연스러운 숲의 세대교체를 유도하고, 지켜야 할 곳에는 전력을 다해 철옹성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한정된 자원 속에서 산림 유산을 남기는 최선의 길이다.

소나무가 사라져가는 강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비통함에 젖어 결단을 미루는 사이, 정작 지켜내야 할 곳을 지키지 못할 수가 있다. ‘모두를 지키려다 모두를 잃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제 사소취대의 아픈 칼날을 쥐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족의 자존심이자 마지막 보루인 금강송 군락지만이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해 내는 ‘선택과 집중의 방제 대전환’을 촉구한다. 그것이 후손들에게 푸른 숲의 유산을 조금이라도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이석형 객원논설위원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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