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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구논단] 그 많던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 이야기는 어디로 갔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상의 모든 발표장과 보고서는 한 가지 단어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2016년 다보스포럼을 기점으로 폭발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국가 정책, 기업 비전, 대학의 학과 개편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접두사가 되었다.

[대구논단] 그 많던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 이야기는 어디로 갔나?

박재찬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상의 모든 발표장과 보고서는 한 가지 단어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2016년 다보스포럼을 기점으로 폭발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국가 정책, 기업 비전, 대학의 학과 개편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접두사가 되었다. 뒤이어 2020년대 초반 팬데믹과 함께 찾아온 '메타버스' 열풍은 가히 광풍에 가까웠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비영리기관까지 앞다투어 메타버스 전담 부서를 신설했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축제를 가상공간에서 열었으며, 기업들은 앞다투어 화려한 가상 본사를 차렸다. 당장 메타버스에 올라타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공포 섞인 경고가 연일 쏟아졌다.

그러나 5년도 채 지나지 않은 오늘, 그 많던 예산과 조직, 화려했던 가상공간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공공기관의 메타버스 플랫폼은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긴 유령 도시가 되었고, 전담 부서들은 슬그머니 이름을 바꾸며 통폐합되었다. 언제 그런 난리를 피웠냐는 듯, 어제까지의 유행어는 어느새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흘러간 노래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왜 매번 새로운 기술 담론 앞에서 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허무하게 식어버리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일까.

기술경영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제임스 어터백(James Utterback) 교수의 기술발전모형은 이 기묘한 현상을 설명하는 명쾌한 렌즈를 제공한다. 어터백 교수에 따르면 모든 기술의 진화는 유동기(Fluid Phase), 과도기(Transitional Phase), 경화기(Specific Phase)의 세 단계를 거친다. 기술이 태동하는 유동기에는 무수한 아이디어와 급진적 제품 혁신이 난립하며 시장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다. 이후 시장의 표준이자 산업을 지배하는 규격인 '지배적 디자인(Dominant Design)'이 출현하면서 비로소 과도기를 거쳐 대량생산과 공정 혁신 중심의 경화기, 즉 본격적인 대중적 수용 단계로 접어든다.

우리가 겪었던 메타버스와 4차 산업혁명의 비극은 시장에서 통용될 실질적인 '지배적 디자인'이 채 확립되기도 전인 유동기 단계에서, 정책과 담론이 먼저 과열되어 사회 전체가 이미 경화기에 들어선 양 착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하드웨어의 무게와 어지럼증, 막대한 디바이스 가격, 통신 인프라와 킬러 콘텐츠의 부재라는 기술적 한계가 상존했음에도, 단어 자체의 유행에 매몰되어 기술의 완성도를 앞질러 갔다. 기술의 물리적 진화 속도를 무시한 채 선언과 구호만으로 시장을 만들려 했던 조급함이 낳은 결과였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간 담론들을 무가치한 거품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 본래 독일에서 제조업 공정의 지능화와 스마트 팩토리를 위해 출발했던 '인터스트리 4.0(Industry 4.0)'은 비록 국내에서 다소 과장된 미래 담론으로 소비되긴 했으나, 공장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공정 관리, 디지털 전환(DX)이라는 굵직한 유산을 현장에 남겼다. 메타버스 역시 마찬가지다. 화려한 가상 쇼룸은 사라졌을지언정, 그 과정에서 고도화된 실시간 3D 그래픽 엔진(언리얼, 유니티 등)과 디지털 트윈, 공간 컴퓨팅 기술은 제조업의 가상 시뮬레이션과 물류 체계 최적화, 나아가 인공지능을 훈련하기 위한 가상 환경 데이터셋이라는 든든한 밑거름으로 흡수되었다. 기술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요란한 마케팅 딱지를 떼어내고 산업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 스며든 것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 눈앞에 닥친 인공지능(AI) 혁신이다. 혹자는 묻는다. AI 역시 메타버스나 4차 산업혁명처럼 일순간 불타올랐다 사그라들 일시적 유행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AI는 과거의 담론들과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

우선 기술 침투의 속도와 체감 효과의 격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격하다. 메타버스가 무거운 기기를 쓰고 '갈 곳 없는 가상공간'을 배회하게 만들었다면, 생성형 AI는 당장 내 책상 위 화면에서 수백 장의 문서를 수초 만에 요약하고, 소프트웨어 코드를 작성하며, 데이터 분석과 전략 기획의 초안을 잡아준다. 지배적 디자인의 출현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실질적인 생산성 도구로 산업 전반에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와 데이터센터에 쏟아붓고 있는 자본적 지출(CAPEX) 규모는 과거 그 어떤 기술 혁신기와도 궤를 달리한다. 인공지능은 관념적 수사가 아니라 거대한 실물 자본과 실질적 도구가 결합한 전면적 산업 재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실패로부터 더욱 냉정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 담론이 등장할 때마다 본질적인 이해 없이 유행어 소비(Buzzword Consumption)에만 매달리는 관행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자체와 기관이 'AI 도시', 'AI 센터'라는 간판을 내걸고 전시성 예산을 낭비하거나, 기업들이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 없이 무작정 솔루션 도입에만 매달린다면, AI 시대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값비싼 시행착오로 끝날 수 있다.

새로운 개념과 도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그 유행에 한쪽으로 치우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미래 구호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지능형 노동력이 우리 조직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과 공정, 그리고 고객 가치에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분석하고 유용하게 활용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혜다. 기술의 이름에 현혹되지 않고 기술이 바꿀 본질적 생산성에 집중하는 자만이, 반복되는 유행의 거품 속에서도 진짜 경쟁력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박재찬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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