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찬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경영의 본질은 명확하다. 막대한 매출을 올리더라도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남는 마진, 즉 ‘수익’이 없다면 그 비즈니스는 지속될 수 없다. 최근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공지능(AI) 산업 역시 이 냉혹한 경영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현재 AI 시장은 폭발적인 인프라 투자와 급등하는 주가라는 환호성에 휩싸여 있지만, 이면에는 ‘거품 논란’이라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되고 토큰(AI 모델 사용 단위) 비용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비용 대비 효과나 뚜렷한 수익 모델을 증명한 기업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연 AI는 새로운 산업 혁명의 엔진일까, 아니면 언젠가 터져버릴 거품일까? 시장에서 팽팽하게 대립하는 낙관론과 비관론의 시선을 바탕으로, ‘AI가 거품으로 판명될 수밖에 없는 4가지 핵심 조건’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토큰 경제’의 붕괴, 즉 비용 대비 생산성(ROI) 증명 실패다.
AI 기술의 최종적인 수요와 가치는 결국 유저들이 소비하는 ‘토큰’의 효용성에서 나온다. 앤스로픽(Anthropic) 같은 선도적인 AI 기업의 매출액이 단기간에 연율 기준 90억 달러에서 450억 달러로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할 만큼 시장의 토큰 사용량은 엄청나게 늘고 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는 인풋(비용) 대비 아웃풋(생산성 향상)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AI를 도입한 우버(Uber)의 경영진조차도 “토큰 예산을 다 썼는데 실제 서비스가 눈에 띄게 개선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빅테크 기업들도 값비싼 토큰 청구서를 마주하며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100의 비용을 들여 105를 벌던 기업이 AI를 통해 110을 벌어들이지 못한다면, 기업들의 이사회는 “도대체 AI로 번 돈이 어디 있느냐”며 예산 삭감의 칼을 빼들 것이다. 이는 AI 생태계 전반의 수요를 꺾는 가장 강력한 거품 붕괴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
둘째, ‘포모(FOMO)’ 현상이 만들어낸 가수요와 착시 현상이다.
최근 델(Dell)이나 마이크론 등 하드웨어 및 메모리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하루에 30~40%씩 폭등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낙관론자들의 주장처럼 이를 기업들의 ‘확고한 AI 수요’로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구체적인 실적의 뒷받침 없이 순전히 미래 기대에 기반한 투기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실물 인프라 시장에 낀 가수요다. “지금 메모리와 서버를 확보하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극심한 포모(FOMO) 현상이 지배하면서, 당장 활용할 뚜렷한 분야가 없음에도 무조건 주문부터 넣고 보는 선수요가 팽배하다. 구글과 메타의 재무제표 상에 ‘서비스되지 않는 자산(건설 진행 중인 자산)’이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급증한 것은, 데이터센터를 짓고 칩을 사들이면서도 정작 전원조차 켜지 못한 채 잉여 인프라가 쌓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진정한 최종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은 맹목적인 재고 축적은, 수요가 단 1~2%만 감소해도 가격이 반토막 날 수 있는 메모리 시장의 특성상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것이다.
셋째, 오버스펙(Over-spec) 투자와 대체재의 부상을 들 수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인사, 재무 등 일상적이고 단순한 업무의 자동화에조차 최고급 사양의 AI 칩과 인프라를 무분별하게 투입하고 있다. 구형 반도체나 비교적 저렴한 칩으로도 야간에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작업에, 굳이 고가의 전력과 HBM 메모리를 소모하는 최첨단 데이터센터를 고집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인프라 구성은 필연적으로 토큰 활용 비용의 급상승을 초래한다.
만약 신약 개발 등 고도의 추론 능력이 필수적인 영역이 아닌 대다수의 범용 업무에서 미국의 주요 AI 서비스 대비 75%나 저렴한 중국산 모델이나 맞춤형 저비용 칩으로 수요가 빠르게 분산된다면, 현재의 초고가 반도체와 거대 데이터센터에 집중된 막대한 투자는 단기간에 수익성을 상실한 채 좌초 자산으로 전락할 수 있다.
넷째, 단기적이고 불안정한 인프라 계약 구조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 인프라 수요가 수년간 굳건할 것이라는 환상도 경계 대상이다. 일론 머스크가 언급한 대규모 데이터센터(클로서스) 임대 계약의 경우, 연간 23조 원이라는 엄청난 규모로 알려져 시장의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180일 임대 후 언제든 양 당사자가 90일 전에만 통지하면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유연한 조건임이 드러났다. 기업들이 초기 거액을 투자하면서도 성과가 미진하면 언제든 발을 뺄 ‘출구 전략’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AI 거품 반대 측의 방어 논리도 탄탄하다. 과거의 잣대로 생산성을 재단할 수 없으며, AI 에이전트의 자율적 활동과 알파폴드 같은 신약 개발 등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활용처가 지속적으로 열리면서 단가(P)가 조정되더라도 전체 토큰 사용량(Q)은 훨씬 더 거대하게 팽창할 것이라는 반론은 매우 타당하다. 또한 고성능 반도체의 제조 캐파가 단기간에 늘기 어렵고 무역 통제 등 국가 단위의 공급망 제약이 겹쳐, 공급 부족발 호황 사이클이 시장의 우려보다 훨씬 장기화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혁신적인 신기술은 늘 거품논란이 반복되어 왔다. 진짜 거품인지 아닌지는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결과’가 제 때 나왔는지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났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사람들, 특히 투자자들의 인내심은 생각만큼 크지 않고, 기대와 성과간의 미스매치가 확인되는 순간 확고했던 ‘믿음’은 ‘거품붕괴’라는 파멸로 귀결되곤 했다. 과거 닷컴 버블 시기에도 기술 발전의 속도와 투기적 자본의 유입 속도 차이로 인해 거품이 형성되고 붕괴되었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모든 기술 혁명의 최종 심판자는 결국 ‘경영의 본질’인 마진과 수익성이다.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AI로 얼마를 벌고, 비용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줄였는가?” 이 본질적인 질문에 명확한 숫자로 응답하지 못하고, 값비싼 토큰 청구서만 쌓여간다면 묻지마식 투자의 중단은 피할 수 없다. 폭주하는 인프라 투자 비용을 스스로 압도해 낼 수 있는 파괴적인 ‘생산성 증명’, 바로 이것만이 AI가 역사상 최대의 거품이 될 것이라는 비관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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