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 작가
화폭 위에 겹겹이 스며든 맑고 그윽한 바탕의 결들은 단순한 색채의 나열이 아니라, 끊임없이 호흡하며 흐르는 자연의 깊숙한 숨결이다.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연두와 푸른빛의 은은한 질감은 수없이 많은 손길과 시간을 통해 완성된다. 물감을 올리고 스치고 마주하는 반복적인 붓질의 행위는 곧 내 안의 덧없는 집착과 조급함을 하나씩 털어내는 성찰의 과정이다. 무엇인가를 인위적으로 세우고 장식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비워냄으로써 고요해지는 비움의 시간, 그 무위(無爲)의 공간 속에서 비로소 작품은 자연의 품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형체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나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며 세상을 다독이는 물의 본성, 그리고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고 만물을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자유롭게 거니는 바람의 경지. 나에게 예술이란 그 물과 바람이 지닌 무한한 포용성과 순응의 미학을 화면 속에 옮겨 담는 일이다. 비워진 바탕은 비로소 거친 세상의 소음을 잠재우고, 우리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유연한 공간으로 거듭난다.
화면 하단을 따라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부유하는 노란빛의 형태들은 온전한 생명력을 품은 씨앗이자 삶의 깊은 율동이다. 그것들은 거센 바람이나 거친 물결에 소용돌이치지 않고, 흐름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을 맡긴다. 여기서 순응은 단순히 강한 것에 굴복하거나 스스로를 포기하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커다란 자연의 순환과 질서 속에서 자신을 가로막는 단단한 껍질을 내려놓고,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피워내는 지혜이자 강인함이다.
억지로 움켜쥐거나 강요하지 않을 때, 겹겹이 쌓인 비움의 바탕 위에서 노란 순응의 조각들은 비로소 자신만의 경쾌하고 따뜻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거친 세상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유유히 헤엄치는 그 생명의 궤적은, 자연과 인간이 마침내 하나로 어우러져 자아내는 우아한 생명의 찬가이다.
이 작품 앞에 서는 모든 이들이 잠시 짐을 내려놓고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두기를 바란다. 스스로를 비워냄으로써 얻는 평온과, 세상의 흐름에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순응의 자유로움이 각자의 삶 속에 조용히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물처럼 낮아지고 바람처럼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그 맑고 자유로운 율동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따스한 위로와 울림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 박경희 작가는 대구가톨릭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총 12회의 초대 및 개인전과 프랑스, 미국 등에서 300여 회 단체전 및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대구가톨릭대 미술대학 총동창회 회장, 제21회 포항국제 아트페스티벌 운영위원장을 지내고, 대구미술 대전, 경상북도 미술 대전 등에서 심사를 하고, 현재 (사) 한국미술협회 대구지회 부회장(서양화 분과)과 포항 예술 문화 연구소와 포항 구상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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