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산업계서 동반성장 지원사업 패러다임 변화 ‘뚜렷’
업 연계형 상생 및 상생 결제 확대…지원 범위도 넓어져
민간서도 IT·AI 등 진보된 기술력으로 함께가는 지원 눈길
ESG·인력난 해소 등 지원 형태 다양…기업 체질 개선 초점
동반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예산을 들여 금전을 지원하고, 기술개발을 돕고, 교육하는 일 하나하나가 중요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향해야 할 종착점은 결국 하나다. 협력사가 스스로 서는 힘, 즉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다.
최근 에너지 기업들을 중심으로 시장의 자생력을 통한 경쟁력 향상이라는 뚜렷한 전환이 포착된다. 각 기관이 보유한 본업(業)의 핵심역량을 상생의 매개로 내놓으면서, 협력사 스스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체질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해외 발전소를 열어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트랙레코드를 쌓게 해주고, 공공기관 신용을 지렛대로 하위 협력사까지 현금 흐름을 안정시키며, 에너지ICT 기술로 지역사회의 디지털 자립 기반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는 얘기다.
에너지 업계는 그동안 동반성장 분야에서 우리 산업계의 좋은 사례를 제공해왔다. 정부가 매년 시행하는 공기업 동반성장 평가에서 전력그룹사들이 매년 최상위권의 성적을 받아들이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전력산업계의 모습을 꾸준히 보여왔다는 것.
전력산업계는 이제 동반성장의 새로운 문법을 선도하며, 보다 도움이 되는 동반성장 정책의 최전선에 서고 있다.
▶본업의 재발견, ‘업 연계형 상생’의 부상
동반성장의 새 패러다임은 ‘업 연계형’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을 수 있다. 기업이 가장 잘하는 일을 상생의 도구로 전환하면, 외부 지원에만 기대지 않고 지속가능한 지원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전략이다. 단순히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가진 역량을 개화하는 일인 덕분에 지원이 끊겨도 구축된 인프라와 습득된 역량은 고스란히 남는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한국중부발전의 해외 수출 플랫폼이 전형적인 사례다. 국내 발전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에너지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기자재 중소기업에게 해외시장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그러나 글로벌 바이어가 가장 먼저 요구하는 트랙레코드를 자본력과 정보망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확보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중부발전은 이 구조적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찌레본, 탄중자티 등 자사가 직접 운영·정비(O&M)하는 해외 발전소를 중소기업의 ‘실증 실험실’로 개방했다.
국산화 기자재를 해외 현장 설비에 직접 장착하고, 중부발전 전문 엔지니어가 장기간 운영 데이터를 모니터링한 뒤 공식 성능 인증서를 발행하는 구조다. 이 인증서가 곧 해외 진출의 보증수표가 되며, 실증을 마친 품목이 현지 법인의 정규 구매 목록에 편입되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이 시장의 문을 열고 중소기업이 그 안을 채우는, 전략적 공존의 모델이다.
한전KDN은 같은 원리를 사회공헌 영역에 적용하고 있다.
에너지ICT 전문 공기업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2017년부터 ‘KDN IT 움(IT의 싹을 틔우다)’ 프로그램으로 전국 61개 아동보호기관에 컴퓨터·네트워크 장비를 지원하고 코딩·인공지능 교육을 직접 운영해왔다.
기존 시설에 대한 장비 고도화와 교육 프로그램 업데이트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동보호기관의 이동권 강화를 위한 전기차 지원과 자체 충전 인프라 1년 무료 충전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2023년부터는 시설 보호아동의 자립을 돕는 ‘KDN IT We로(위로)’, 시각장애인 정보접근성 향상을 위한 ‘KDN IT ON’ 등으로 프로그램 범위를 지속 확대하고 있다. 현금을 기부하는 대신 본업의 기술력을 들고 현장에 찾아가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CSR 활동과는 결이 다르다.
▶돈의 흐름을 바꾸다, 상생의 결제 문화 혁신
업 연계형 상생이 기술과 인프라 차원의 접근이라면, 대금 결제 구조를 바꾸는 것은 동반성장의 또 다른 핵심 축이다.
중소기업 경영 위기의 상당 부분은 기술력 부족이 아니라 현금 유동성 경색에서 비롯된다. 원청이 1차 협력사에 대금을 지급해도 그 돈이 2차, 3차 하위 협력사까지 제때 흘러가지 않는 구조적 병목이 업계의 오랜 숙제였다.
한국서부발전이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 대표 주자다.
2015년 11월 공공기관 최초로 도입한 상생결제 시스템은 서부발전의 거래대금을 2차 이하 하위 협력사에까지 직접 지급하는 구조다. 하위 협력사는 납품 후 60일 이내 현금 지급을 보장받을 뿐 아니라, 필요시 서부발전의 신용도를 활용한 조기 현금화로 자금 유동성을 즉시 확보할 수 있다.
올해 2월 말 기준 누적 상생결제 규모는 4조1128억원, 활용 협력사는 약 3500개사에 달한다.
서부발전은 단순한 제도 도입에 그치지 않고 실효성을 끊임없이 높여왔다.
건설 하도급 상생결제를 의무화하고, 용역근로자 노무비 직접지급에도 상생결제를 활용했으며, 2차 이하 협력사 대금 평균 지급일을 2일 수준까지 단축했다. 상생결제 담당관제를 운영하고 자체 가이드북을 제작·배포하는 등 체계적 확산 활동을 통해 제도의 낙수효과를 하위 공급망 전체로 확대했다.
구미건설본부 공사에서 기성금을 신속 지급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하위 협력사 연쇄 부도를 예방한 사례는 제도의 현장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부발전이 지난해 12월 ‘2025 상생결제 확산의 날’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축적의 결과다.
공공기관의 신용을 지렛대 삼아 협력 생태계 전체의 현금 흐름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상생결제 역시 넓은 의미의 본업 연계형 상생으로 읽힌다.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는 원청으로서 보유한 조달 시스템과 신용등급이 상생의 도구가 되는 셈이다.
▶울타리를 넘어서, 협력기업에서 지역사회·글로벌로
동반성장의 반경도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직접 계약 관계에 있는 협력기업이 지원 대상의 전부였다면, 최근에는 지역사회와 글로벌 시장까지 상생의 외연이 확장되는 추세다. 공기업이 자리 잡은 곳의 지역경제, 그리고 협력사가 뻗어나가는 해외시장까지 동반성장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한전KDN의 활동이 눈에 띈다. 본사 소재지인 나주 목사고을시장 상인들과 함께 운영하는 ‘든든 방학도시락’ 사업은 결식 우려 아동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되 전통시장 상인이 직접 제작하게 해, 취약계층 돌봄과 지역 상권 활성화를 하나의 사업으로 엮어낸 상생형 모델이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2025년부터는 일반 시민과 공공기관 주문까지 확대되어 상인들의 안정적인 매출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 소상공인의 브랜드 개발·포장 디자인 개선·상표권 등록 지원이나, 태양광 조명과 예술 요소를 결합한 마을 안전환경 조성 사업 등 지역 밀착형 상생 활동도 이어가며, 지역사회공헌 인정제를 6년 연속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중부발전이 인도네시아에 구축한 ‘KOMIPO 팩토리’가 주목된다.
공동 물류 창고와 사무공간, 현지 전문 인력을 중소기업에 제공하는 해외 전진기지로, 협력사들은 현지에 상주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수출 비즈니스를 이어갈 수 있다. 공동 창고 시스템을 통한 수출 물량 통합 관리로 물류비를 절감하고, 긴급 정비 시에도 국산 부품을 즉각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 현지 바이어에게 ‘지속 가능한 공급망’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여기에 ‘해외동반진출 연구회’를 통해 글로벌 기술 표준(ASME, CE 등)과 국가별 규격을 함께 분석하고, 노후 설비 개선 프로젝트와 연계한 선제적 기술 제안, ESG 경영 공시 대응까지 컨설팅함으로써 중소기업이 단순 납품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협력사와 함께 더 진보된 기술 역량 키운다
디지털 전환이 산업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가 됐고 AI와 IT 기술의 발전에 맞춰 이제는 이 같은 진보한 기술을 시장에 어떻게 접목하느냐가 회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파트너들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 신기술 역량을 키우는 것 역시 민간에서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협력사의 혁신 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것 역시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이라는 얘기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부터 ‘대중소 상생형 스마트공장 구축사업’을 새롭게 추진하며 협력사의 제조 경쟁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정부가 디지털 솔루션과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에 구축 비용을 일정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HD현대일렉트릭은 정부 지원 외에 협력회사당 최대 1억2000만원을 추가 지원해 사업을 통해 구축될 데이터 기반 제조실행관리시스템(MES)을 기반으로 협력회사와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유, 협업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HD현대일렉트릭의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받은 한 협력회사는 공정 효율이 최대 84%까지 향상됐다.
스마트빌딩 제어 솔루션 전문기업 융코리아일렉트릭 역시 이 모델의 선두에 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JUNG의 한국 지사인 융코리아는 프리미엄 배선기구와 스마트 제어 솔루션을 기반으로, 설계·시공·유통 전 과정에 걸친 협업 중심의 동반성장 체계를 구축했다. 파트너사가 설계 초기 단계부터 공동 참여하는 구조를 통해 기술 자문과 현장 적용을 동시에 수행하고, 정기 교육 및 기술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 파트너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협업 구조를 기반으로 일본 시장에서는 현지 에이전시와 함께 단독주택·호텔 프로젝트에 솔루션을 적용하며 글로벌 시장 확장까지 이어가고 있다.
▶협력사 체질 개선 통한 자생력 강화 ‘눈길’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동반성장 사업의 성격이 변화하는 가운데 민간 역시 이 같은 방향이 뚜렷하게 감지되는 분위기다. 기존에는 협력사를 대상으로 한 금전적 지원 등이 주요 사업 방향이었다면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협력사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원의 초점이 '체질 개선'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HD현대일렉트릭이 운영 중인 ‘협력회사 온라인 채용관’은 동반성장 시장의 이 같은 흐름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협력회사 온라인 채용관은 중소기업의 고질적 어려움 중 하나인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회사가 잡코리아에 등록한 채용 공고를 별도 비용 없이 채용관에 자동 노출시켜주는 플랫폼이다.
2024년 도입 이후 약 30명의 인재가 협력회사에 신규 채용됐고, 지난해부터는 HD현대 그룹 전반으로 사업 규모를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해주는 상생이라는 점에서 지원의 질적 전환을 보여주는 사례다.
HD현대일렉트릭은 또 ‘안전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가치 아래 협력회사의 안전 관리 수준 제고를 위한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특히 위험성 평가 컨설팅 등 밀착 지원을 통해 각 기업이 자율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사업에 참여한 협력회사의 총 재해 건수는 시행 3년 전과 비교해 60% 감소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HD현대일렉트릭이 고용노동부·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주관 ‘2025년 대·중소기업 안전보건 상생협력회사업’에서 국내 전력기기 기업 중 유일하게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배경이다.
2026년을 브랜드 강화의 원년으로 삼은 융코리아는 에너지 관리 솔루션을 통한 탄소 저감과 IoT 기반 스마트 제어 확산을 추진하는 한편 쇼룸 교육 프로그램과 공동 마케팅, 디지털 지원 툴 제공 등 파트너사의 기술력과 시장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동반성장 전략을 펼쳐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올해 신규 동반성장 프로그램으로 ▲쇼룸 기반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 운영 ▲파트너사 대상 공동 마케팅 및 브랜드 협업 확대 ▲디지털 콘텐츠 및 견적 지원 툴 제공 ▲스마트빌딩 프로젝트 공동 참여 기회 확대 등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파트너사의 기술력, 영업력, 브랜드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향으로 동반성장 모델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공동주택 조명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한주조명(대표 공지욱)도 협업을 축으로 한 ‘동반성장’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주조명은 설립 초기 제품 품질과 납품 안정성 확보에 집중하며 기반을 다졌고, 이후 공동주택 프로젝트와 공공기관 납품을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왔다. 현장에서 문제가 없는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약속한 납기와 품질을 지키는 것을 경영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온 결과, 현재 매출의 상당 부분은 LH 등 공공기관 중심의 조달 시장에서 창출되고 있다.
향후 조달 시장을 넘어 민간·건설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되, 단독 성장이 아닌 협력 기반의 성장 구조를 구축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배선, 홈네트워크 등 연관 산업과의 협업을 강화하고 과제 수행 기업들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기술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특히 스마트 조명 분야에서는 KS 인증을 바탕으로 제품 개발을 확대하고 AI 기술을 접목해 에너지 절감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고연색 조명 확산에도 박차를 가한다. 연색성은 탄소중립과 밀접하게 연결된 요소로, 연색성이 높을수록 낮은 조도에서도 충분한 시인성을 확보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빛공해 저감과 에너지 절감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아직 시장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만큼 업계 전반의 공감대 형성과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제시했다.
한주조명은 이처럼 기술개발과 협업 구조를 동시에 강화하며 시장 확대와 산업 경쟁력 제고를 함께 도모하는 ‘동반성장’ 모델을 구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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