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단둥 방문, 북중 협력 복원의 신호인가
북미대화 가능성 대비하고 중국과 전략적 소통 강화해야
한미 공조·접경지역 위기관리 병행…정세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단둥 방문은 겉으로는 항미원조기념일을 맞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지원한 중국군의 희생을 기리는 행보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방문을 단순한 기념행사로만 해석하기에는 외교적 함의가 적지 않다. 왕후닝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의 회동, 신압록강대교를 통한 이동, 접경지역 경제시설 시찰은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비하고 실질적인 협력 확대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역사적 유대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경제협력과 전략적 소통을 복원하려는 다목적 행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북러 밀착이 심화하는 가운데 북한이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의 관계에도 다시 무게를 싣는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구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주목해야 할 것은 김 위원장의 방문 자체보다 그 배경에 있는 북한의 외교적 선택지 확대와 향후 미·중·북 관계의 변화 가능성이다.
단둥은 단순한 접경도시가 아니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을 잇는 교역의 관문이자 양국 관계의 온도를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다. 오랫동안 개통이 지연됐던 신압록강대교가 최근 개통된 데 이어 김 위원장이 직접 다리를 건너 중국 측 인사들과 일정을 소화했다는 점은 경제협력 재개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왕후닝 주석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인사를 전하고 양국의 우호 증진과 협력 확대를 강조한 것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물론 이번 방문만으로 북중관계가 과거의 동맹 수준으로 완전히 복원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과 직접 회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다만 고위급 인사 간 접촉과 경제협력의 상징적 조치가 맞물렸다는 사실은 양국이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협력의 폭을 넓히려 한다는 해석에 힘을 보탠다.
한국 정부는 이를 한미동맹에 대한 부담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중국이 한반도 안정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중관계의 변화는 북한의 대외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북미대화의 조건과 한국의 외교적 공간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미대화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다. 중국 선전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접촉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정상 간 만남이 확정됐다고 볼 만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회동 가능성에 기대를 걸기보다 만남이 성사되는 경우와 무산되는 경우를 모두 준비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북한의 대중관계 복원 움직임은 향후 대미 협상에서도 전략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중국과의 경제·외교 협력을 강화하면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 반대로 북미대화가 진전될 경우 중국 역시 한반도 문제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번 단둥 방문이 북미대화를 위한 사전 조율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되 사실과 추정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외교부와 국가안보실은 북미 정상 간 접촉, 실무협상 재개, 회동 무산 등 최소 세 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각 시나리오에는 한국 정부의 공개 메시지, 미국과의 사전 협의 절차, 북한의 후속 행동을 평가할 기준을 포함해야 한다.
정상 간 만남이 추진된다면 한미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비핵화의 최종 목표와 단계별 조치, 대북제재 문제, 군사적 긴장 완화 방안을 조율해야 한다. 회담 개최 자체를 외교적 성과로 포장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실질적인 후속 협상과 구체적인 이행 조치로 이어지도록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째, 한미동맹을 토대로 하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 북중관계 개선을 차단하는 데 외교적 역량을 집중하기보다는 양국 관계의 변화가 한반도 안정과 긴장 완화에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과의 공조를 유지하면서 중국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억제와 접경지역의 우발적 충돌 방지가 양국 모두의 이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외교장관급 협의와 실무 당국 간 소통을 정례화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과 접경지역의 군사적 긴장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북한을 압박하라고 요구하는 데 그치지 말고 우발적 충돌 방지와 대화 여건 조성 등 중국이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계기로 확대될 수 있는 북중 간 인적·물적 교류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도 지속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다만 한중관계 개선이 북한 비핵화 원칙의 후퇴로 비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비핵화와 확고한 방위태세라는 원칙을 유지하면서 긴장 완화와 대화 재개를 위한 협력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 외교적 유연성과 안보적 원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두 요소를 함께 관리하는 것이 실효적인 외교·안보 정책의 출발점이다.
셋째, 비무장지대(DMZ)와 접경지역의 군사적 위험을 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지뢰 폭발과 우리 군 장병의 부상 등 접경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사소한 오판이 큰 충돌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책임을 규명하고 필요한 대응태세를 유지하는 일과 추가 충돌을 방지하는 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사건의 사실관계와 증거를 면밀히 확인하고, 검증된 정보에 근거해 국제사회에 설명해야 한다. 군사적 대응 역시 위협의 수준과 확인된 사실에 비례하도록 관리해 오판과 확전 가능성을 낮춰야 한다. 국방부는 DMZ와 접경지역의 감시·정찰 체계, 위험지역 통제, 장병 안전조치를 점검하고 우발 상황 발생 시 현장 지휘관과 상급 지휘부의 보고·판단 절차를 재확인해야 한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도발 유형별 대응 기준과 위기 단계별 의사결정 절차를 점검하는 한편,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외교·안보 당국과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군사당국 간 대화 역시 실질적인 위험 감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접경지역의 감시 활동과 군사적 조치로 인한 오해를 줄이고, 지뢰 등 위험 요소와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관리하기 위한 실무 협의부터 추진할 수 있다. 대화 제안은 안보태세의 약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위기를 통제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현실적인 수단이다.
넷째,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범정부 위기관리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외교부와 국방부, 통일부가 개별적인 판단에 따라 메시지를 내는 방식으로는 복합적인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국가안보실 주도로 정례적인 상황평가와 부처 간 정책조정 체계를 운영하고, 북한의 외교적 움직임과 군사적 행동을 하나의 상황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대북 메시지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대화의 문은 열어 두되 도발에는 원칙에 따라 대응한다는 기조 아래 외교적 제안과 군사적 대비태세가 서로 모순되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북중관계의 복원 움직임, 북미 접촉 가능성, 접경지역의 군사적 위험을 개별 사안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들 변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고려해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책의 실행 순위도 명확히 해야 한다. 우선 접경지역의 장병 안전과 위기 대응 절차를 즉시 점검하고 한미 간 정보 공유를 강화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선전 APEC 정상회의 전후의 북미 접촉 가능성에 대비해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과 한미 협의안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외교 채널을 활용해 북한의 군사적 긴장 고조를 억제하고 대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남북 군사당국 간 소통 복원과 우발적 충돌 방지 장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각 과제에는 주관 부처와 협조 기관, 점검 시한, 이행 여부를 판단할 기준을 지정해야 한다. 그래야 외교적 선언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고, 정세 변화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도 적시에 조정할 수 있다.
한반도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 자체가 아니다. 정세 변화가 발생했을 때 한국이 주도적으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느냐가 관건이다. 북미대화가 재개된다면 실질적인 협상으로 이어지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대화가 무산된다면 긴장 고조를 억제할 대안을 가동해야 한다. 북중관계의 변화에는 경계와 소통을 병행하고, DMZ의 군사적 위험에는 원칙 있는 대응과 체계적인 위기관리 능력으로 맞서야 한다.
정부의 외교·안보 역량은 강경한 발언의 수가 아니라 위험을 줄이고 정책적 선택지를 넓히는 실행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단둥에서 감지된 북중관계 복원의 신호가 선전에서의 외교적 움직임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준비는 결과가 확인된 뒤 시작해서는 늦다.
김 위원장의 단둥 방문은 과거의 혈맹 관계를 기리는 상징적 행보인 동시에 중국과의 협력 기반을 다시 다지려는 시도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한국은 이를 단순한 북중 밀착으로 규정하거나 북미대화의 전조로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변화에 대비하면서도 확인되지 않은 전망에 정책을 맡기지 않는 것이다.
단둥에서 감지된 북중관계의 변화가 선전에서 외교적 기회로 이어질지, 아니면 북한의 전략적 선택지만 넓히는 결과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국이 한반도 정세의 수동적 관찰자가 아니라 안정과 대화의 조건을 만드는 당사자가 되려면 외교적 기회와 군사적 위험을 동시에 관리하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 나서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