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챌린지]
김주하 MBN 특임상무
김주하 MBN 특임상무가 최근 서울 도봉구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에서 “가까운 사람에게 하는 말과 듣는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주변의 가까운 이들에게 먼저 감사를 전해보라고 조언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뉴스 앵커 시절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지상파와 종편을 모두 경험한 자신보다 뉴스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믿었다. 지난해 그 확신은 깨졌다. 10년간 몸담았던 MBN 뉴스7 메인 앵커 자리에서 내려와 토크쇼를 준비하면서부터다.
“오랫동안 뉴스를 전하며 세상을 다 아는 줄 알았죠. 하지만 토크쇼 론칭을 앞두고 공동 MC 후보 30명 명단을 받아봤는데 제가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다들 각 분야에서 유명하다는데…. 그제야 그동안 참 무지했구나 싶었습니다.”
김주하(53) MBN 특임상무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룹 스윗소로우의 김영우 지목을 받아 국민일보 ‘감사챌린지’ 인터뷰에 응한 그를 최근 서울 도봉구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에서 만났다. MBN 토크쇼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녹화를 마친 직후였다.
“뉴스를 진행할 때는 새벽 3시에 자고 아침에 출근하기 바빴어요. 그때는 스스로 유식하다고 착각했죠. 늦었지만 이제야 깨닫게 된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1997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국내 대표 여성 언론인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30년에 가까운 언론 생활을 “차갑게 살았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뉴스는 늘 누가 죽고, 속고, 싸우는 이야기였고, ‘네가 잘못했다’는 말이 일상이었다”고 회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스 현장을 떠난 뒤에야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그램에서 각 분야 전문가를 만나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를 접하고 있다. 그는 “요즘 책을 더 많이 읽는다”며 “만날 사람의 책을 미리 읽으며 그 사람을 더 이해하려 한다”고 했다.
크리스천인 김 상무가 감사챌린지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안타까움이었다. 감사는 숨 쉬듯 당연하며 기도할 때도 가장 먼저 실천하는 덕목인데 우리 사회가 얼마나 팍팍해졌으면 이제는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도전해야 할 과제가 된 현실이 마음이 아팠다고.
그는 이날 녹화에서 만난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와의 대화에서 감사가 오히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내 아들을 존경한다”는 홍 교수의 말을 전하며 “그 말을 듣는 교수님 아들의 마음은 어떨까 싶으면서, 나는 내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있나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이어 “고마워, 존경해 같은 말을 가까운 사람에게 건네는 것 자체가 진짜 감사챌린지가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토크쇼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는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폐섬유증으로 세 차례 이식 기회를 기다린 끝에 새 삶을 얻은 가수 유열의 사연을 들으며 그는 “살아 있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김 상무의 감사는 이혼이라는 개인적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길어 올려졌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사람으로 뜻밖에도 전 남편을 꼽았다. “당시에는 죽을 만큼 아프고 감사를 떠올릴 수조차 없었지만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나니 그 시기가 저 자신을 낮추고 성숙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남부러울 것 없던 삶에 만약 남편에게도 대접받으며 살았다면 제 콧대가 하늘을 찔렀을 테니까요.”
이 같은 내면의 변화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최근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을 돕기 위해 책을 출간하고 기금 마련에 나섰다. 보육시설을 떠난 이들이 성인이 되자마자 험난한 사회로 내던져지는 현실을 접한 뒤였다. 김 상무는 “처음에는 기술을 가르쳐주려 했지만 전문가들과 대화하며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지할 수 있는 어른 한 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멘토링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의 명예멘토로 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를 돕고 있고, 대한변호사협회 법률구조재단 홍보이사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도 모색 중이다.
청년들에게 조언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곧바로 미안함을 전했다. “시대를 이렇게 만든 건 우리 어른들이잖아요. 감사보다 네 탓을 먼저 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거리를 찾으라고 말하는 건 감사에서 희망이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계속 불평만 하면 그걸로 끝이지만 감사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희망으로 이어진다고 믿습니다.”
김 상무는 분열된 사회의 해법도 감사에서 찾았다. 그는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상대를 공격만 하는 시대에 이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감사라 본다”며 “‘네가 이렇게 해줘서 고마워’라는 한마디가 갈라진 한국 사회를 하나로 다시 묶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난을 겪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 조언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고통의 시간도 곧 끝납니다’ ‘돌아보면 축복입니다’ 같은 섣부른 희망의 말은 당사자에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그저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곁에서 같이 울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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