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능한 사랑’. 사진 제공=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감독이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영화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거장의 귀환’으로만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더 복잡한 속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창동 감독조차 영화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가능한 사랑’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15억원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원금만으로 영화를 완성할 수는 없었습니다. 추가 제작비를 마련해야 했지만 투자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고, 결국 제작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때 넷플릭스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넷플릭스의 투자를 통해 영화는 제작에 들어갔고, 그렇게 완성된 ‘가능한 사랑’은 9월 열리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습니다. 여기에 영화진흥위원회가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하면서 또 한 번 주목받게 됐습니다.
물론 아직 오스카 후보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한국 대표 작품으로 출품된 것이고, 실제 예비후보와 최종 후보에 진출할지는 앞으로 결정될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베니스 경쟁부문과 아카데미 출품작이라는 자리까지 오게 됐는지는 지금 한국영화가 놓인 현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배우 제인 폰다(가운데)로부터 작품상 트로피를 건네받으며 감격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여기서 잠깐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복기해 보겠습니다. 2019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0년 2월 열린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4관왕에 올랐습니다. 임권택, 박찬욱, 홍상수, 고(故) 김기덕 감독 등이 글로벌 무대 위에 한국영화를 올리면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졌고, 봉준호 감독과 한국영화가 그 정점에 오른 것입니다.
그런데 시점이 묘합니다. 2020년은 한국영화가 정점에 오른 시기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급격하게 하락세를 보인 바로 그 해입니다. 2019년까지 한국영화 시장은 연간 관객이 2억 명을 넘어설 정도로 대표적인 대중문화 시장이자 상품이었습니다. 모두가 영화를 하고 싶어했고, 영화인들의 자부심 역시 상당했습니다. 엄혹한 검열 시대에도 한국영화는 사회적 목소리를 냈고 탄압 속에서도 성장했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서 빛을 보기 시작했으니, 영화인들의 자부심이 남다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자부심과 정서는 여전히 영화인들을 묶는 유대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사실 ‘가능한 사랑’이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처음 나왔을 때 영화계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한편에서는 “그래도 다행이다”라며 안심했습니다. 이창동 감독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으니까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진한 씁쓸함이 있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극장 관객이 급감했고 영화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데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영향력 확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는데, 결국 OTT가 극장에서 만들어지지 못할 뻔한 영화의 제작비를 대는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극장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OTT가, 이제는 극장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영화의 새로운 투자처가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넷플릭스를 한국영화의 적이라고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사례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휴민트’의 스틸컷. 사진 제공=NEW
올해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가 대표적입니다. 극장에서는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했지만 넷플릭스 공개 이후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발견되면서 새로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해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며, 그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다는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극장에서는 흥행 성적이 작품의 생명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봉 규모가 작거나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짧은 시간 안에 상영관에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OTT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한 편의 영화가 국적이나 개봉 규모와 상관없이 세계 곳곳의 시청자에게 발견될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이창동이라는 이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관객에게는 이미 익숙한 감독이지만, 세계의 수많은 시청자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일 수 있습니다. 그런 감독의 신작을 넷플릭스가 전 세계에 선보인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가능성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극장을 포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능한 사랑’이 보여주는 것은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투자와 유통 방식이 필요하고, 극장과 OTT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사랑이 가능한지를,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를 이야기하지만, 영화 밖에서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영화와 넷플릭스의 공존이 가능한가.
아직은 섣불리 답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적어도 하나의 가능성만큼은 뚜렷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투자받지 못해 사라질 뻔했던 영화가 넷플릭스의 투자를 통해 완성됐고, 베니스 경쟁부문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을 대표해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한국영화에 필요한 것은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을 찾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승의 엔터 만담(萬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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