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애 명상이 추석 증후군에 미치는 효과
명절 다음 달 이혼 신청 증가세
부부·가족 간 눌러둔 갈등 터져
감정에 휩쓸려 잘못 따지기보다
내 마음 상태·욕구 알아차려야
상대 향한 원망·미움 내려놓기
용서해야만 진정한 행복 가능
망가진 심신 낫고 평안 되찾아
/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명절을 보내고 나면 이혼율이 한층 높아진다는 설이 있다. 설이 아니라 정확한 통계이다.
지난 10여 년간 설 명절이 지난 다음 달은 11번 중 11번 협의이혼 신청이 증가했다. 추석은 10번 중 7번, 설과 추석을 합치면 21번 중 18번 증가한 셈이다. 흔히 말하는 ‘명절 이혼 증후군’. 흥미롭게도 가족 모임이나 귀성 자체가 크게 감소한 코로나 시기에도 명절 다음 달 이혼 신청 증가는 여전했다. 무슨 연유일까?
명절을 보내면서 가족이나 배우자와 갈등을 겪은 적이 없다면 새빨간 거짓말. ‘남편이나 아내를 보면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뛴다’는 심각한 심장병 환자의 거짓말과 같다. 우리 자신만 돌아봐도 충분히 이해되는 현상이다. 처가나 시댁에서 돌아오는 차 안은 그야말로 치열한 싸움터가 된다. 서로 서운함을 토로하거나, 양쪽 집안을 비난하다 결국 고속도로에서 차를 세우거나 서로 찢어져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는 명절을 전후로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평소에 안고 있던 부부 간의 여러 가지 갈등이 명절을 계기로 극명하게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평소 억눌렀던 부정적인 감정이 시댁·처가 문제나 가사 분담 등의 사건으로 첨예화되면서 이렇게 살 바에는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감정이 극으로 내달리며 이혼 분쟁으로 이어진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린 알렉산더처럼 과감한 결단력을 지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고통스러운 이유는 심하게 꼬인 매듭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혼도 갈등 해결의 한 방법이지만 이것도 마음에 걸리고 저것도 걸리니 꼼짝없이 괴로운 것이다. 마음이란 참으로 미묘하다. 때론 바늘 하나 꽂을 곳 없이 옹졸해지고, 때론 세상만사 다 품어 안는 태평양처럼 넓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상대와의 갈등 해결에서도 먼저 내 마음의 상태와 욕구를 잘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대개 갈등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외부로 불거진 갈등은 관계 회복을 위한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추석 다툼을 생각해보자. 사실은 내가 다 잘했고 상대가 다 잘못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으니 불쌍히 여기면서 조금 더 노력해 보는 것이다. 돈도 들지 않고 이동할 필요도 없다. 지금 여기에서 바로 행동하면 된다. 공간적 제약도 없고 편안히 누워서도 할 수 있으며, 단 5분으로도 충분하다. 이름하여 자애 명상.
억울하고 속상해 죽겠는데 자애 명상?
자애 명상이란 갈등으로 인해 속이 시끄럽고 마음이 거칠어질 때 먼저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마음을 쉬며 상대는 잠시 잊은 채 자신에게 따듯한 마음과 선의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흥! 하고 반감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술 취한 코끼리처럼 분노와 원망이 날뛸 때 감정과 생각을 멈추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분노의 순간 자신과 타인에게 자애를 보내는 것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명상’이란 이름이 붙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마음이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 찰 때 억지로라도 자애 명상을 반복해 보라. 냉랭하게 식었던 내 마음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고 굳었던 몸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내 코가 석 자인 상태에서 벗어나면 미움과 서운함의 상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미운 코털이 박힌 그에게 따뜻한 마음과 선의를 흘려보낸다. 미움은 조금씩 줄어들고,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그 역시 안쓰럽고 마음 아픈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티베트의 승려 달라이 라마는 용서는 가장 큰 마음 수행이며 상처를 치료하는 좋은 약이라 했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바보라 칭했던 김수환 추기경 역시 살면서 얼마나 많이 용서했는가에 따라 신도 우리를 그만큼 용서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수많은 상처를 껴안고 고통받는 것일까? 인간은 세상에 저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과 연결된 존재이기에 고통도 상처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한때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드라마 <다모>의 대사가 심금을 울린 것은 주인공 남자의 마초적인 매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결된 존재이기에 그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아프다. 마음이 병들면 몸이 병든다. 그러니 용서는 바로 나를 위한 위로의 행위이다. 용서가 자신의 원망과 미움을 내려놓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과정이라면 화해는 용서 후 상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이미 바늘 하나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굳어진 상태이다. 그러니 너무 빨리 용서하려 서둘러서는 안 된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내 마음의 진노에 응어리가 더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내 마음도 이유가 있어 분노했을 것이라 여기며 안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충분히 안아주었을 때 삐진 내 마음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실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것이고, 어떻게 가족이 내 마음을 몰라 주나 싶어 섭섭한 것이고,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편이자 내 방어막이 되어 주지 못해 괘씸하고 슬펐던 것이다. 슬픔과 괘씸함과 서운함 뒤에 자리 잡은 자신의 욕구가 남편에게 위로받고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지혜로써 갈등을 조정, 해결할 수 있다.
만트라는 티베트어로 참된 말, 불교에서는 진언(眞言)이라 하여 신비한 힘이 있다고 본다. 생전 내 엄마의 잦았던 푸념 가운데 하나는 “남편 없으면 불쌍하다는 소리나 듣지”였다.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우리 세대 어머니들의 푸념이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이 무척 듣기 싫었다. 무심코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원망의 말이 자신에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가. 그럼 어쩌라고? 이때 부정적인 언어 대신 자애의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는 존재의 집’. 자신에게 사랑과 포용의 만트라를 들려주는 것이다. 반복적인 자애의 언어는 내 집에 돌아온 듯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고, 자존감도 점점 회복시켜 건강한 자아로 살아가게 한다.
50대 후반의 은주 씨는 오랫동안 화병을 앓고 있다. 추석 명절을 보내고 온 오늘은 여느 때보다 말이 속사포처럼 빠르다. 온 얼굴에 짜증이 역력하다. 남편은 마누라 화병 하나 못 고치는 한심한 돌팔이 한의사라며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낸다. 화병은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에서 한국 문화와 관련된 증후군으로 ‘hwabyung’라 표기된 바 있다. 화병은 억눌린 감정이 쌓여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면서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다. 은주 씨는 새록새록 감정이 격해지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숨을 몰아쉬면서 가슴을 문지른다. 추석이나 명절이면 큰며느리는 돈과 코만 삐죽 내밀 뿐 금방 사라지고, 제사 음식이며 병수발은 자신이 다 하니 억울하고 화가 나 미칠 지경. 게다가 ‘너는 친정이 가까우니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시어머니의 억지 논리에 명절 마지막까지 시댁을 지킨단다. 대놓고 큰며느리와 비교하며 잊을 만 하면 혼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모자라 ‘니 학벌에 한의사 남편 만났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는 말까지 한다며 주먹을 움켜쥐는 그녀의 어깨가 부르르 떨린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님이 아니라 남보다 못한 남편. 청상과부로 살아온 엄마 앞에서 개조개보다 더 단단히 입을 다문다니 그 얼마나 괘씸할까.
이제 그 분노를 치유할 시간. 비싼 상담료 내고 왔으니 실컷 욕하고 하소연하라는 상담사의 맞장구에 은주 씨의 마음은 한결 누그러진다. 서서히 자애 명상으로 안내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온몸의 힘을 빼고 마음이 고요해지기를 기다린다. 상상 속에 먼저 자신을 초대한다. 모든 치유의 출발점은 나 자신이므로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평안하기를, 내 마음의 모든 괴로움과 상처에서 벗어나기를’ 진심을 다해 자애 문구를 반복한다. 용서하지 못해 망가진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 자신을 옭아맨 원망과 미움을 녹이며 자신을 용서하고 치유해 가는 은주 씨의 볼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이제 자신에게 상처를 준 밉디미운 동서와 시어머니와 남편을 초대한다. ‘당신도 분노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를, 당신도 부디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처음에는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며 뻗대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편안해진다. 굳었던 얼굴 근육이 풀리고 조금씩 입을 달싹거리며 동서에게 자애를 빌어준다. 일그러지고 앙살스럽던 얼굴에 슬핏 미소가 떠오르고 은주 씨 뇌의 거울 뉴런은 그녀에게 미소를 되돌려준다. 행복감이 그녀 주변으로 피어오른다. 한가위 보름달처럼 환해진 그녀가 상담자의 손을 끌어 잡는다. 은주 씨의 미소를 보며 상담자 뇌의 거울 뉴런도 작동한다. 세상이 온통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하다. 상담으로 돈 벌어 좋고 함께 행복해지니 더 좋다. 직업치고 참 좋은 직업, 감사 항목이 점점 늘어난다. 그럼 상담료는 누가 내어야? 독자들이 판단하시라.
/이은혜 이은심리상담센터 소장
☞필자 소개
상담을 업으로 밥을 먹습니다. 인문학 공간 이은문화살롱을 운영하며 밥을 까먹지만, 마담 역할이 좋아 종종 즐거운 사람이지요.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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