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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동준 시선의 ESG] 병원 경영진이 결정하는 환자의 시간

칼럼니스트 프로필 나동준 칼럼니스트는 디지털전환교육원 수석연구원·숙명여자대학교 전공교수로 활동하며 생성형 AI와 사회복지 디지털 전환의 접점을 개척하는 혁신가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나동준 시선의 ESG] 병원 경영진이 결정하는 환자의 시간

[한국강사신문 나동준 칼럼니스트] 병원에서 가장 무겁게 흐르는 것은 병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나는 다발성골수종 환자다. 내게 병원에서의 한 시간은 단순한 60분이 아니다. 그 시간은 통증을 견디는 길이이고, 감염의 불안을 버티는 무게이며, 치료 뒤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갉아먹는 소모다. 그래서 환자에게 대기시간은 사소한 불편이 아니다. 몸으로 치르는 비용이고, 삶에서 깎여나가는 시간이다.

많은 사람은 병원의 긴 대기를 어쩔 수 없는 혼잡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환자의 자리에서 보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다. 예약을 어떻게 받는지, 검사와 진료, 수납과 투약의 순서를 어떻게 짜는지, 설명과 안내에 충분한 인력을 두는지, 현장의 사정보다 운영 효율을 먼저 놓고 있지는 않은지에 따라 기다림의 길이는 달라진다. 이런 결정은 진료실 밖에서 내려지지만, 환자의 하루는 그 결정 안에서 지쳐간다.

바로 여기서 병원의 ESG를 묻게 된다. 사회(S)는 병원이 환자를 얼마나 잘 치료하느냐만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답게 대하느냐의 문제다. 아픈 몸을 오래 붙잡아 두는 시스템, 취약한 환자의 시간과 체력을 당연한 자원처럼 소모하는 운영은 사회적 책임의 빈틈을 드러낸다. 거버넌스(G)는 그 빈틈이 왜 반복되는지를 설명한다. 대기시간은 현장의 불운이 아니라, 경영진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누구의 목소리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느냐가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병원 대기시간 문제를 단순한 서비스 불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다발성골수종 환자인 내게 긴 대기는 피로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 순응도와 회복력, 나아가 존엄의 문제다. 채혈을 기다리고, 진료를 기다리고, 수납과 약 처방을 기다리고, 다시 항암과 수액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환자는 치료를 받기도 전에 먼저 소진된다.

병원이 이 시간을 아무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면, 환자 중심이라는 말은 구호에 그친다. 병원의 사회적 가치는 최신 장비나 화려한 건물에서만 증명되지 않는다. 가장 약한 상태로 찾아온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느냐에서 드러난다.

이 문제는 동시에 거버넌스의 문제다. 외래 회전율, 병상 가동률, 수익성 지표는 촘촘히 관리하면서도 환자 대기시간과 이동 동선, 고위험 환자의 피로도는 주변 지표로 밀어두는 순간, 환자의 고통은 경영 판단에서 사라진다. 병원이 환자의 대기시간을 줄이려면 현장 직원의 친절이나 개인의 헌신에 기대서는 안 된다.

환자 경험을 핵심 성과지표로 삼고, 채혈·검사·진료·수납·투약이 한 번의 방문 안에서 가장 적은 이동과 가장 짧은 대기로 이어지도록 프로세스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항암치료 환자나 면역저하 환자에게는 별도의 우선 동선과 시간 배려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 구조다. 대기시간 문제를 누가 책임지고 개선할 것인지 분명히 하고, 그 결과를 경영진 평가와 연결해야 한다. 환자의 불편이 민원 접수에서 끝나지 않고 인력과 예산, 운영 방식의 조정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거버넌스는 작동한다.

결국 병원이 관리해야 할 것은 진료 일정만이 아니다. 그 안에서 버티고 있는 환자의 시간이다. 환자에게 시간은 병원 복도의 여백이 아니다. 통증을 견디는 체력이고, 불안을 삼키는 마음이며, 치료 이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남겨두어야 할 마지막 자원이다.

그런데 병원이 그 시간을 언제든 소모해도 되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단순한 비효율이 아니라 가치 판단의 실패다. 이제 병원은 더 많은 환자를 얼마나 빨리 처리했는가가 아니라, 아픈 사람의 하루를 얼마나 덜 무너지게 지켜냈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좋은 병원은 환자의 생명만이 아니라 환자의 시간까지 함부로 다루지 않는 병원이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나동준 칼럼니스트는  디지털전환교육원 수석연구원·숙명여자대학교 전공교수로 활동하며 생성형 AI와 사회복지 디지털 전환의 접점을 개척하는 혁신가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KAC 공인코치, 경영지도사(인사조직관리) 자격을 갖추고 있다.

ChatGPT 활용 전략부터 ESG 경영, 스마트워크, 조직 활성화, 감정경영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강의를 진행중이다. 숙명여자대학교 전공교수로 있으면서, 50플러스센터, 국내외 대학·복지기관, 각종 협회 및 기업 현장을 무대로, 맞춤형 솔루션과 실전형 워크숍으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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