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AI 기반 자체제작]
[한국강사신문 나동준 칼럼니스트] 나는 암과 싸우고 있다. 그런데 적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창밖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다발성골수종 진단을 받던 날, 세상이 두 개의 경계선으로 나뉘었다.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경계선이 운이나 유전자만으로 그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공기와 열기와 오염 — 우리가 기후 위기라 부르는 것들이 그 선을 긋는 데 깊이 개입하고 있었다.
국제암연구소는 대기오염을 1군 발암물질로 공식 지정했다. 초미세먼지에 장기 노출되면 혈액암 발병과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는 서울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일상인 도시에서, 마스크 쓰는 것을 귀찮아하며.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저 공기가 당신의 혈액 세포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여름을 두 번 살게 됐다. 모든 사람이 사는 더운 여름과, 나만 사는 생존을 가르는 여름. 면역이 무너진 몸에게 폭염은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라 응급 상황의 전조다. 2024년 여름 유럽에서만 폭염으로 약 6만여 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노인, 만성질환자, 면역저하 환자였다. 기후 위기는 건강한 몸에게는 불편이지만, 무너진 면역을 가진 몸에게는 두 번째 사형 선고다.
같은 암이라도 모두 같은 조건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냉방이 잘 되는 집에 사는 환자와 그렇지 못한 환자, 공기청정기를 켤 수 있는 환자와 환기가 안 되는 공간에서 버텨야 하는 환자, 미세먼지 나쁨인 날에도 대중교통으로 병원을 가야 하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병명은 같아도 기후가 건네는 위협의 무게는 다르다. 이것이 내가 기후 위기를 불평등의 문제로 보게 된 이유다.
나는 매달 병원에 간다. 약 포장지에 적힌 글로벌 제약사의 이름을 본다. 그 회사가 없었다면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을 꺼내기가 더 어렵다. 그 회사들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 전 세계 헬스케어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석탄발전소 514개 분량과 맞먹는다. 국내 제약업계 온실가스 집약도는 현대자동차의 3배, LG전자의 4배다. 그러면서 ESG 공시율은 15개 업종 중 최하위다. 에너지 기업은 더 노골적이다. 단 32개 화석연료 기업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2024년에도 그 배출량은 오히려 늘었다. 기업은 성장하고, 배출은 늘어나고, 보고서에는 '지속가능'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나를 살리는 약을 만들기 위해 지구가 뜨거워지고, 그 열기가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온다. 당신들의 약이 나를 살리는 동안, 당신들의 공장이 다음 세대의 환자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서 위로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요구하러 왔다. 면역저하 환자와 만성질환자를 기후 취약계층으로 법적으로 인정하라. 우리는 기후에 가장 먼저 죽는 사람들인데, 기후 취약계층 명단에 없다. 고탄소 기업에 기후보건세를 부과하고 그 세수를 취약계층 의료비로 직접 환원하라. 오염시킨 자가 책임지는 것, 이 당연한 원칙이 이 나라 기후 정책에는 아직 없다.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그린워싱에 실질적 처벌을 부과하라. 자발적 고백은 책임이 아니다. 냉방과 공기청정기 같은 거주환경 지원을 의료비 범주에 포함하라. 에어컨 없는 방에서 항암제를 맞은 날 밤의 냉방비는 링거 주사만큼이나 치료비다. 그리고 기후와 건강 불평등의 연관성을 국가가 직접 수집하고 공개하라. 측정되지 않는 불평등은 해결될 수 없다.
암을 앓고 나서 알게 됐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감각이 날카로워진다는 것을. 우리 같은 환자는 광산의 카나리아다. 가장 먼저 쓰러지지만, 가장 먼저 위험을 아는 존재. 기후 위기 앞에서 건강한 몸은 유예된 것이지, 면제된 것이 아니다. 기후 불평등은 순서가 있을 뿐 결국 모두를 향한다. 기후 위기는 환경부의 이야기도, 기업 보고서 속 숫자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계절을 버티는 누군가의 몸 안에서 이미 시작된 이야기다. 나는 살기 위해 오늘도 병원에 간다. 그리고 살아있는 한 계속 이 이야기를 쓸 것이다. 생존은 나의 권리이고, 요구는 나의 의무다.
당신은 이 창밖을 얼마나 오래 외면할 수 있는가.
칼럼니스트 프로필
나동준 칼럼니스트는 디지털전환교육원 수석연구원·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 시민중심 ESG협회 수석교수이사로 활동하며 생성형 AI와 사회복지 디지털 전환의 접점을 개척하는 혁신가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KAC 공인코치, 경영지도사(인사조직관리), 구글공인교육전문가와 구글트레이너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인공지능AI 활용 전략부터 ESG 경영, 스마트워크, 조직 활성화, 감정경영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강의를 진행중이다. 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50플러스센터, 국내외 대학·복지기관, 각종 협회 및 기업 현장을 무대로, 맞춤형 솔루션과 실전형 워크숍으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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