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나는 청년입니다] 현실 직시 공고 진학, 10년 뒤 도시철 안전 책임지다

◇경북공업고등학교에서 3호선까지 이어진 10년의 시간 인공지능이 일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정답을 빠르게 찾고 정보를 정리하는 일이 기술의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이미 닦인 길을 잘 따라가는 힘보다 길의 방향을 읽고...

[나는 청년입니다] 현실 직시 공고 진학, 10년 뒤 도시철 안전 책임지다

신영수 대구교통공사 대리

어릴 때부터 조모 손에 커

‘기술로 삶 다지겠다’ 다짐

경북공고 기능반 활동 집중

대구 기능경기대회 ‘금메달’

“이론을 실제로 적용한 것과

프로젝트 완수 경험 힘 체감”

쌓아온 시간 믿고 도시철 입사

고교서 배운 전공 역량 큰 도움

스승·선배에 삶의 태도 배우고

특전사서 중심 지키는 힘 익혀

무거운 삶 속에서도 이어간 선택

전진한 만큼 빛나는 현재 보여줘

신영수 씨가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스크린도어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경북공업고등학교에서 3호선까지 이어진 10년의 시간

인공지능이 일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정답을 빠르게 찾고 정보를 정리하는 일이 기술의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이미 닦인 길을 잘 따라가는 힘보다 길의 방향을 읽고 스스로 선택하는 힘이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 이 변화는 지역 청년들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시간과 비용, 생활의 조건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진로는 단순한 진학이나 취업을 넘어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대구교통공사 대리로 일하는 신영수 씨(31)의 이야기도 여기서 시작된다. 지금은 대구 도시철도 3호선 현장에서 안전과 시스템을 책임지는 실무자지만, 처음부터 목표가 또렷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며 기초생활수급을 받던 환경은 그에게 일찍 삶의 무게를 가르쳐줬다. 학원 한 번 다니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는 막연한 환상 대신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인문계 진학 이후의 시간과 비용, 생활고를 현실적으로 떠올리게 됐고, 그 질문 끝에서 경북공업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기술로 삶의 기반을 만들고 지역 안에서 자리를 잡겠다는 방향이 담긴 선택이었다.

경북공고에 들어간 이후 그의 삶은 빠르게 달라졌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찾은 뒤 성적이 꾸준히 올랐고, 교과 성적과 전공 공부, 취업 준비를 함께 끌고 가며 학교생활의 밀도를 높여 갔다. 교과우수상을 독차지할 만큼 상위권을 유지한 시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정하고 끝까지 이어 가는 힘이 만든 결과였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이후 10년을 지탱하는 기반이 됐다. 스스로 길을 정하고 기술을 익히며 끝까지 밀고 가는 태도는 인공지능 시대가 점점 더 요구하는 인재상과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청년 선생님 X 방향 없이 달리던 소년, 젊음의 열정으로 시작된 콜라보

경북공고에서의 시간은 교과 성적과 취업 준비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신영수 씨는 기술을 머리로 아는 수준이 아니라 손으로 구현해 내는 단계까지 가보고 싶었고,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기능반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가 집중한 분야는 네트워크였다. 당시 네트워크 분야는 참고할 자료가 넉넉하지 않았다. 선배들이 남긴 흔적과 실습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씩 감각을 익혀 가야 하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더 직접 부딪쳐야 했고, 더 오래 붙들어야 했다. 주말, 공휴일도 가리지 않고 매일 학교에 나가 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기능경기대회는 그런 공부의 깊이를 시험하는 자리였다. 정해진 시간 안에 과제를 읽고 설계하고 구현해 내야 하는 만큼, 단순한 암기나 이해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었다. 신영수 씨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기능반에 들어가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세계가 있었습니다. 네트워크를 공부한다는 게 이론을 아는 수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구성하고 연결하고 문제를 풀어내는 경험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때 처음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해 본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술은 결국 끝까지 만들어 본 사람의 손에 남는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몸으로 배운 셈이다.

그 시간은 또래 청소년 다수가 쉽게 만나기 어려운 세계이기도 했다. 스스로 막히는 지점을 붙잡고 씨름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구조를 하나씩 이해해 가는 과정이 이어졌다. 수상은 그 결과로 따라왔다. 신영수 씨는 대구 기능경기대회 금메달에 이어 전국대회 우수상까지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그에게 더 크게 남은 것은 상의 무게보다 기술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본 경험이었다. “상을 받은 것도 기뻤지만 저한테 더 크게 남은 건 그 과정을 통과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공부하던 시간과는 다른 세계였고, 기술 하나를 끝까지 파고들어 본 경험 자체가 정말 컸습니다”라는 말에는 그 시절의 밀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간을 곁에서 붙잡아 준 사람이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이상도 선생님이었다. 젊은 교사였던 그는 학생들과 같은 속도로 뛰며 기능반의 시간을 함께 견뎠다. 자료가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늘 가까이에서 기준을 잡아 주고 학생들의 열정을 지켜 주었다. 신영수 씨는 “선생님도 그때 정말 젊으셨고 열정이 많으셨습니다. 제가 매일 버스 막차까지 남아 있으면 선생님도 같이 계셨고, 방향을 같이 고민해 주셨습니다. 기술보다 더 크게 남은 건 선생님께 배운 태도였습니다.”라고 회상했다.

◇3호선 위에서 배워가는 기술과 책임

경북공고에서 깊이 있게 파고든 네트워크 공부는 졸업과 함께 지역의 일터로 이어졌다. 신영수 씨는 학교에서 수업과 실습, 기능반 활동, 취업 준비를 성실하게 따라오며 자연스럽게 대구교통공사 공채를 준비했고, 그 시간은 지역의 공기업 입사로 연결됐다. 대구를 벗어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점도 컸지만 학교에서 익힌 전공을 실제 현장에 바로 연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제가 준비해 온 것들이 여기에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기와 면접을 보고 나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쌓아 왔는지는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입사 이후 그가 맡은 3호선 현장은 학교 시절의 배움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3호선은 다른 노선보다 네트워크 기반 시스템의 비중이 높고, 신호 분야 역시 작은 문제도 놓치지 않는 기술적 이해를 요구한다. 경북공고에서 네트워크를 깊이 공부하고 기능경기대회에서 직접 구현해 본 경험은 현장에서 빠르게 감각을 익히는 데 큰 힘이 됐다. 신영수 씨는 “학교에서 배운 네트워크 공부가 회사에 와서 정말 많이 이어졌습니다. 3호선은 네트워크를 이해하고 있으면 훨씬 잘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학생 때 깊이 공부해 둔 게 현장에서 큰 자산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3호선의 하루는 보이지 않는 기술 위에서 움직인다. 승객들은 열차가 정시에 들어오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장면을 일상처럼 마주하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신호와 시스템, 점검과 판단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작은 이상 하나를 놓치지 않는 기술력이 시민의 안전과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기술은 곧 책임이 된다. “학교에서는 내가 만든 결과를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면 회사에서는 그 결과가 시민 안전과 연결된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보고 더 신중하게 판단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감각은 선배들의 태도와 판단을 곁에서 지켜보는 시간 속에서 더욱 깊어졌다. 그 과정에서 신영수 씨에게 큰 배움이 된 사람이 조정환 팀장님이었다. 신영수 씨는 “팀장님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인상적이지만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후배들을 챙기시는 모습이 크게 남습니다.”라고 말했다. 학교 시절 이상도 선생님에게서 열정의 힘을 배웠다면 현장에서는 조정환 팀장님을 통해 책임의 무게와 기준의 중요성을 배워 가고 있는 셈이다.

◇삶의 무게 앞에서 더 단단해진 청년의 기백

신영수 씨의 시간을 기술과 취업의 이야기로만 읽기에는 놓치기 아까운 결이 하나 더 있다. 누구에게나 삶의 무게는 있다. 신체적 조건이든, 환경의 어려움이든, 오래 마음에 남는 책임이든, 사람마다 짊어지는 몫은 조금씩 다르다. 중요한 것은 그 무게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가에 있다. 신영수 씨의 시간이 깊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이 붙들 수 있는 길을 찾았고, 한 번 선택한 방향은 끝까지 이어 갔다.

홀로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의 헌신은 그에게 세상을 버텨낼 가장 튼튼한 뿌리이자 삶의 기준이 되었다. 누군가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보낸 시간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삶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남았다. 더 빨리 자리 잡고 싶었던 마음, 더 성실하게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려 했던 태도, 자신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다짐에는 늘 그 마음이 함께 있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선택과 방향에는 소중한 사람을 향한 애정과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그 태도는 군 생활의 선택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지금보다 훨씬 왜소한 체격이던 시절, 주변에서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특전사라는 길을 그는 스스로 선택했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보다 더 강한 마음이 먼저 움직였던 셈이다. 신영수 씨는 “그때는 체구도 작고 몸도 약한 편이었지만 한 번은 더 강한 곳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부딪쳐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라고 말했다. 특전사에서 정보통신 분야를 맡아 훈련과 임무를 수행한 시간은 몸과 마음을 함께 단련하는 계기가 됐다. 기능경기대회가 끝까지 완수하는 법을 익힌 시간 위에 군 생활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힘을 더해 주었다.

그래서 신영수 씨의 10년은 특별한 지름길로 설명되지 않는다. 경북공고에서 공부의 이유를 다시 붙잡았고, 기능반에서 네트워크를 깊이 파고들며 끝까지 완수하는 힘을 키웠고, 대구교통공사 현장에서는 기술을 책임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그 시간마다 곁에는 스승과 선배, 동료가 있었고, 그 관계 속에서 배운 감각이 현장에서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모든 시간의 기저에는 자신을 길러 준 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 마음을 삶으로 이어 가려는 다짐이 함께 놓여 있다. 이쯤에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돌아온다. 삶의 무게 앞에서 멈춰 설 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것인가. 인공지능이 정답을 더 빠르게 찾아내는 시대일수록 사람을 끝까지 남게 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길을 끝까지 밀어 본 경험과 다시 일어서는 힘일지도 모른다. 신영수 씨의 이야기는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전해주고 있다.

글=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교육학박사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