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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나무야 너도 견디는구나

둥글게 몸통을 만 바짝 마른 지렁이를 밟을까 자주 발걸음을 살핀다. 땅속에 물이 들어차면 숨쉬기 어려워서 또 땅이 건조하면 물을 찾아서 외출을 감행한 지렁이가 미처 퇴로를 찾지 못한 것이다. 지난주 서울과 경기 지방의 온도가 40도를 넘었다.

둥글게 몸통을 만 바짝 마른 지렁이를 밟을까 자주 발걸음을 살핀다. 땅속에 물이 들어차면 숨쉬기 어려워서 또 땅이 건조하면 물을 찾아서 외출을 감행한 지렁이가 미처 퇴로를 찾지 못한 것이다. 지난주 서울과 경기 지방의 온도가 40도를 넘었다. 앞자리 숫자가 주는 압박감 때문에 호들갑스럽게 받아들이는 감이 들지만 사실 볕을 가리고 바람 잘 통하는 1.5m 높이의 장소에서 잰 온도가 체온을 넘어선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게다가 밭고랑에서 빨간 고추를 따는 농부가 숨쉬는 공기는 예보한 온도보다 훨씬 높다.

인간의 체온은 왜 36.5도 근처로 설정되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그 답을 모른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 몸은 체온보다 높은 외부의 열기를 처리할 생리학적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추우면 근육을 떨거나 갈색지방을 태워 열을 내고 좀 더우면 피부 혈관을 최대한 열어 땀을 내고 물을 수증기로 날리며 체온을 내린다. 그러나 그런 방책도 습도가 높거나 외부 온도가 체온을 넘어설 정도가 되면 점차 효과가 사라진다.

과학자들은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지만, 영장류 조상의 체온이 설정되었을 즈음의 외부 온도보다 약간 높은 체온값이 책정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설정값이 너무 높으면 그 온도를 유지하고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을 것이고 너무 낮으면 땀내고 헐떡이느라 도무지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뭐라든 덥다. 광복절이 지나면 바닷물 온도가 내려가고 물것이 생겨 해수욕장을 폐장한다던 삼촌의 말이 떠오른다. 이제 그런 세상은 없다. 등목 서너 번에 수박 두어 통으로 여름을 났던 그런 시절은 돌아올 낌새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날이 너무 더우니 개미도 마른 지렁이 먹잇감을 외면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지구생명체가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는 좀체 헤아리지 않는다. 탄소 무게로 따져 지구 행성 생물량의 80%를 차지하는 식물이 그들이다. 태양 볕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으려 자꾸 대기 중으로 몸집을 키웠던 우람한 플라타너스도 바짝 말라 탄 갈색 잎을 떨군다. 물을 잃지 않으려 잎 뒷면의 기공을 닫아버리면 나무 내부의 온도가 하염없이 올라간다. 식물이 어떻게 온도를 감지하는지는 모르지만 식물학자들은 애기장대라는 배추과 식물을 써서 식물이 온도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연구했다. 2017년 미시간대학교 연구진은 단기간 고온에 노출된 애기장대에서 살리실산의 양이 현저히 줄고 병원균의 침입에 취약해졌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살리실산의 구조를 약간 바꾼 게 아스피린이다. 해열제인 아스피린이 인체 면역계를 조율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식물에서 살리실산이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식물의 면역계를 조절한다고 해서 고개를 갸웃할 일은 아니다. 애기장대는 저온이나 상온(섭씨 23도)에서 살리실산을 합성하고 면역계를 정비하지만 28도 이상에서는 그 양이 줄고 면역기능도 떨어진다. 그렇기에 고온에서는 살리실산을 투여해 식물의 면역계를 도와주자는 얘기도 나온다. 꽤나 그럴싸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에도 한도가 있다. 요즘 뉴스에선 나무에 매달린 채 다갈색 반점을 지닌 사과를 볼 수 있다. 햇볕에 덴 일소(sunburn) 현상 탓이다. 열매가 터지기도 한다. 동물의 세포가 그러하듯 식물세포도 상황이 좋지 않으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열 충격을 받으면 식물세포 안의 항산화 물질이 점차 사라진다. 스트레스가 활성산소의 탈을 쓰고 준동했다는 뜻이다. 비타민이나 글루타티온을 만들어 활성산소를 힘껏 막아내 보지만, 잎 한편에서 기공을 막은 채 아예 광합성 공장을 닫아버리면 방어물질을 만들 재료가 줄기 시작한다. 그러면 식물세포도 기꺼이 죽는다.

2017년 아르헨티나 연구진은 식물세포의 죽음에 페롭토시스(ferroptosis)라는 이름을 붙였다. 철(ferro) 의존적 죽음(ptosis)이라는 뜻이다. 동물의 암세포에서 처음 발견된 이 현상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우선 항산화제가 고갈된다. 그런 후 세포막, 특히 엽록체막에 풍부한 지질 성분이 먼저 산화된다. 이런 과정에 철이 꼭 필요한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세포 안에서 철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으면 식물의 죽음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밖에서 지용성 비타민A나 E 같은 항산화제를 넣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직도 더위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지표면에 도달하는 볕을 줄이고 생명을 살릴 궁리를 하며 하루하루 견뎌야 한다. 입추가 지났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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