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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연재의 유러피언 코드] 100년 음악 축제의 경제학

요즘 퇴근길이 부쩍 어두워졌다. 유럽의 긴 여름이 저물고 있다. 휴가철과 함께 시작된 수많은 클래식 음악 축제도 하나둘 막을 내린다.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의 정규 시즌이 쉬는 여름, 음악가들은 오히려 더 바빠진다.

요즘 퇴근길이 부쩍 어두워졌다. 유럽의 긴 여름이 저물고 있다. 휴가철과 함께 시작된 수많은 클래식 음악 축제도 하나둘 막을 내린다.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의 정규 시즌이 쉬는 여름, 음악가들은 오히려 더 바빠진다. 도시를 옮겨 다니며 평소 만나기 힘든 연주자들과 새로운 조합을 만들고, 관객도 이들을 따라 움직이며 휴가를 보낸다. 그렇게 열린 또 하나의 음악시장이 다음 해를 기약한다.

저마다 음악史 갖춘 名페스티벌

그 정점에 잘츠부르크가 있다. 모차르트 페스티벌로 자주 오인되는 ‘잘츠부르크 음악 축제’의 출발은 달랐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오스트리아의 유대계 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동료 예술인들은 알프스의 작은 도시에서 음악·오페라·연극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제를 구상했다. 1920년 시작된 축제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불러 모았고, 특히 잘츠부르크 출신 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이끌던 1960~1980년대의 황금기를 거치며 명성을 굳혔다. 모차르트의 출생지라는 유산에 전쟁의 상흔이라는 시대적 배경,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공연이 한 세기 동안 더해지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 브랜드가 됐다.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내부. /김연재 본부장 제공

독일의 바이로이트는 더욱 독특하다. 1876년 바그너는 자신의 음악극을 구현하기 위한 숙원사업인 전용 극장을 완공했다. 개관 이후 15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여름 바이로이트에서는 오직 그의 작품만 무대에 오른다. 바그너의 열성팬을 일컫는 ‘바그너리안’에게 이곳을 찾는 것은 일종의 성지순례다. 동료 음악가이자 후원자였던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의 러브스토리, 나치 시대와 얽힌 어두운 역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손자 빌란트 바그너가 파격적인 현대 연출을 도입하며 ‘뉴 바이로이트’ 시대를 연 이야기까지, 150년의 희로애락이 축제에 켜켜이 쌓여 있다.

런던의 BBC 프롬스는 1895년 ‘좋은 음악을 값싸게,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자’는 취지로 시작된 다른 모델이다. 클래식이 상류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시대에 저렴한 입석표로 격식 없이 음악을 즐기게 한 파격적인 시도였다. 경영난을 겪던 프롬스를 1927년 BBC가 맡으며 공연장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확대됐다. 현재는 여름 두 달 동안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연주자가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 모이고, 공연은 BBC의 라디오·TV·온라인을 통해 세계의 청중과 만난다. 공영방송이 기획자이자 미디어 플랫폼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잘츠부르크가 종합예술, 바이로이트가 성지순례라면 프롬스는 클래식을 대중 속으로 끌어낸 도시형 음악축제다.

축적된 서사, 도시의 경쟁력 되다

세 축제의 방식은 달라도 강력한 자산은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쌓인 시간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팬덤을 만든다. 한 세기가 넘은 명연과 실패, 스타의 탄생과 스캔들, 전쟁과 망명에 얽힌 사연은 축제를 단순한 공연 이상의 경험으로 이끈다. 특히 클래식은 아는 만큼 더 들리고 더 재미있는 장르다. 열성팬에게는 음악뿐 아니라 연주된 장소와 그곳에 얽힌 이야기까지 즐길 거리가 된다.

축제의 경제학이 달라지는 지점도 여기다. 공연장은 새로 지을 수 있고 유명 연주자도 돈을 주고 초청할 수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와 카라얀의 잘츠부르크, 바그너와 코지마의 바이로이트, BBC 프롬스의 런던에 쌓인 백 년의 이야기는 자본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 이야기는 공연을 넘어 숙박과 요식업, 방송·영상, 후원, 공연기획, 교육과 관광으로 뻗어나간다. 오랜 서사가 하나의 문화 지식재산(IP)이 돼 도시의 프리미엄을 더한다. 오래된 축제가 지역에 남기는 가장 값진 자산은 한철의 관광 수입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시 ‘가야 할 이유’를 만들고, 그 이유가 쌓여 한 도시의 경쟁력이 된다.

김연재 KOTRA 유럽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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