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DRAM 석권과 CPU 독점 거친 반도체 제왕
공정 지연 딛고 AI 열풍 속 실적 반등 기틀 마련
머스크 테라팹 동맹과 파운드리 시장 재편 야심
미국 반도체 부활과 수율에 달린 글로벌 주도권
1980년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한 것은 일본 회사들이었다. NEC를 필두로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반도체 기업 여섯 곳이 글로벌 톱 10을 장악했다. 일본 기업의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었다. 특히 당시 반도체의 주력으로 떠오른 메모리 반도체(DRAM) 시장의 80% 가까이를 차지했다.
1980년대 전만 해도 반도체 산업의 개척자이자 명실상부한 리더는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Intel, INTC)이었다. 인텔은 1968년 “반도체 트랜지스터의 수는 약 2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주장한 엔지니어 출신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공동 창립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1980년대 전만 해도 반도체 산업의 개척자이자 명실상부한 리더는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Intel, INTC)이었다. 인텔은 1968년 “반도체 트랜지스터의 수는 약 2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주장한 엔지니어 출신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공동 창립했다.
무어의 법칙을 가이드라인으로 인텔은 매년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자해 1970년 세계 최초의 상용 DRAM을 출시했다. 인텔은 4비트, 8비트, 16비트 칩을 잇달아 내놓으며 IBM과 함께 PC 시대를 개척하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후 DRAM은 1980년까지 인텔 매출의 약 90%를 차지하며 독보적 수익원 역할을 담당했다. 매출 성장성도 눈부셨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들어 높은 수율을 앞세워 저가 공세에 나선 일본 기업들에 DRAM 시장을 서서히 내주어야 했다. 1980년대 초에는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기도 했다. 결국 1985년 COO(최고운영책임자)였던 앤디 그로브(Andy Grove)는 CEO 자리에서 물려줘야 할 상황에 놓인 무어에게 메모리 사업을 접자고 제안한다.
1987년 CEO에 취임한 그로브는 강력한 실행력을 선보이며 메모리 포기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그로브는 1980년대 PC 시대의 성장을 내다보고 인텔을 컴퓨터의 두뇌인 CPU(중앙처리장치) 전문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체계와 응용 프로그램이 인텔 CPU 칩에 맞춰 개발되면서 매출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1991년에는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로고와 차임벨 광고를 전 세계에 내놓으며 독보적 위치를 굳혔다. 일본과 한국 반도체 기업이 메모리에 집중할 때 인텔은 수익성 높은 CPU 시장에서 떼돈을 벌었고 이를 다시 차세대 공정에 쏟아부어 압도적 격차를 유지했다. 1992년 이후 인텔은 다시 명실상부한 반도체 시장 1위 업체로 거듭났다.
이후 인텔은 공정축소(Tic)와 새 아키텍처 개발(Toc)이라는 틱톡 모델을 바탕으로 C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인텔은 2014년 10 나노미터 공정에서 막혔다. 경쟁사 대비 독보적으로 높은 트랜지스터 밀도를 목표로 했지만 제조 난도가 급격히 상승해 수율이 급격히 낮아졌다. 인텔이 이보다 낮은 14 나노 공정에 7년 가까이 머물러야 했다.
인텔이 고전하는 사이 TSMC(대만반도체)와 삼성전자가 앞선 기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 리사 수(Li Su)가 CEO로 부임한 AMD가 저렴하고 성능도 괜찮은 라이젠(Ryzen)을 출시하면서 CPU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인텔의 독점체제였던 PC와 서버 시장의 점유율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재무전문가(MBA) 출신의 경영진이 전면에 나서 R&D와 미래 공정에 대한 투자보다는 영업이익률 제고와 자사주 매입 등 단기적 주가 부양에 집중하면서 인텔의 경쟁력은 눈에 띄게 저하했다. 재무적 숫자 놀음에 지친 능력 있는 엔지니어들이 대거 경쟁사인 AMD와 애플, 엔비디아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후에도 모바일 혁명과 AI 붐 등에 주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영원한 반도체 선두기업이라는 명성에 금이 갔다. 2017년에는 메모리 사이클을 덕을 본 DRAM 분야의 최강자 삼성전자가 인텔을 제치고 전 세계 반도체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9년 메모리 업황이 주춤하자 다시 인텔이 1위를 탈환했지만 인텔의 압도적 주도권은 사라진 상태였다.
최근에는 AI 인프라 투자 열풍을 탄 엔비디아(NVDA)가 인공지능 GPU칩을 바탕으로 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 1위로 떠올랐다. 2023년 6월 1조 달러를 돌파한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상승추세를 지속하며 현재 5조 2300억 달러에 이르렀다. 필자가 2년 전 칼럼에서 조심스럽게 예상했던 시총 6조 달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독보적 수율과 첨단 공정 관리로 파운드리 시장의 70%를 점유한 TSMC도 엔비디아보다 1년 늦은 2025년 6월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겼다. 애플, 엔비디아 등 핵심 기업과 장기계약을 바탕으로 탄탄한 실적을 보이며 현재 시총 2조 1350억 달러를 시현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인프라 투자 붐에 뒤늦게 탑승한 메모리 1위 삼성전자의 분전도 놀랍다. TSMC가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할 때 30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삼성전자는 최근 주가가 급등하며 기업가치가 전 세계 11위에 해당하는 1조 2050억 달러에 이르렀다.
AI HBM 시장에서 점유율 60%를 상회하며 1위 업체로 등극한 SK 하이닉스도 시가총액이 전 세계 16위에 해당하는 8172억 달러에 달했다. 삼성전자, SK 하이닉스와 경쟁 중인 미국의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U)의 시가총액도 8422억 달러를 보이고 있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장비 제조회사인 브로드컴(Boradcom)의 시총도 2조 달러를 넘었다.
반면 인텔의 시가총액은 6278억 달러로 시총 7422억 달러인 경쟁사 AMD 보다 낮은 19위에 머물고 있다. 과거 인텔칩이 비싸 AMD 칩을 탑재한 컴퓨터로 관심을 돌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하지만 인텔이 시총 20위권에 든 것도 매우 최근이다. 그것도 급격한 주가 급등을 통해서다.
최근 인텔 주가는 125달러로 1년 전 주당 22달러에 비하면 6배나 치솟았다. 금년 3월 말만 해도 인텔 주가는 40달러 언저리를 맴돌았다. 최근 한 달간 주가가 두 배나 올랐다. 인텔 주가 급등의 배경에는 과거 1등 업체로의 부활 가능성이 있다. 최근 발표된 1분기 실적은 이런 기대가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텔의 매출액은 전년도 대비 7% 늘어났다. 삼성이나 엔비디아와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낮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익성은 크게 개선되었다. 주당순이익(EPS)은 겨우 적자를 면하리라는 시장 기대를 크게 상회하는 주당 29센트를 보였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데이터센터 등 AI 부문 매출이 전년보다 22% 늘어났다. AI 관련 CPU 수요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AI 인프라 투자 붐이 일던 초기에는 엔비디아의 GPU와 데이터센터 서버에 집중되었던 매출 성장이 메모리 반도체와 CPU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마이크론테크와 인텔이 다소 늦게 그 수혜를 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매출 성장만으로 인텔 주가의 급등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미진한 감이 없지 않다. 금년 1월부터는 차세대 CPU인 팬서 레이크 칩을 1.8 나노미트급 차세대 공정인 18A를 통해 양산에 들어갔다. 금년 말부터는 1.4 나노미터급 14A 공정을 가동할 예정이다. 18A 공정의 수율도 상업적 수익성이 있는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월 약 7%씩 수율 향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TSMC에 비해 여전히 수율 문제가 있지만 미 반도체 회사라는 강점을 앞세워 MS, 에릭슨 등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더욱 주목받고 있는 점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스페이스X, xAI가 총 1190억 달러(약 160조 원) 공동 투자하는 반도체 프로젝트 테라펩(Terafab)의 주요 파트너가 인텔이라는 사실이다.
머스크는 향후 테슬라의 자율주행, 옵티모스 로봇, 스페이스X의 위성 통신, AI 연산에 소요될 어마어마한 규모의 반도체 칩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칩 설계에서 최종 제조까지 일관 생산 시스템을 갖춘 테라펩을 미 텍사스에 가동할 계획이다. /EPA=연합뉴스
머스크는 향후 테슬라의 자율주행, 옵티모스 로봇, 스페이스X의 위성 통신, AI 연산에 소요될 어마어마한 규모의 반도체 칩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칩 설계에서 최종 제조까지 일관 생산 시스템을 갖춘 테라펩을 미 텍사스에 가동할 계획이다. 테라펩은 우선 반도체 디자인에 집중하고 제조 공정은 인텔이 위탁 운영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인텔로서는 파운더리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테슬라, 스페이스X, xAI라는 막강한 고객을 입도 선매한 셈이다. 문제는 14A칩의 수율을 제대로 갖출 수 있는가이다. 만약 인텔이 수율 문제를 해결할 경우 테라팹의 파트너로 순조롭게 자리 잡을 뿐만 아니라 파운더리 분야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매출 성장과 순익 개선은 말할 것도 없다. 전기차를 넘어 AI와 로봇, 우주산업까지 패권을 노리는 일론 머스크의 야망에 기대어 과거 반도체 분야 부동의 1위 기업이었던 인텔이 제대로 부활해 왕좌로 귀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텔의 부활은 동시에 한국과 대만으로 양분된 반도체 산업의 경쟁구도에 미국이 본격 가세함을 뜻하기도 한다. 자본력을 앞세운 미국이 얼마나 기술력의 열세를 따라잡을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francis.kim@furman.edu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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