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르, 시인 랭보가 머문 도시
야생의 향을 품은 커피
하라르의 두 얼굴, 롱 베리와 숏 베리
▲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 영화 포스터 재구성 [AI 생성 이미지]
지난 칼럼에서 다룬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는 꽃 향, 시다마 커피는 밸런스, 구지 커피는 화려함으로 표현되었다. 오늘은 지난 칼럼 하라르(Harar) 랭보(Rimbaud)의 삶에 이어서 에티오피아 커피 여섯 번째, 하라르 이야기다.
하라르 커피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커피만이 아니라 한 방랑 시인의 기묘한 인생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라르는 랭보에겐 새로운 삶의 무대였고, 커피 애호가에겐 또 다른 향의 세계이다.
당시 랭보가 살았던 곳은 현재 관광지가 되어 있고, 랭보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랭보와 베를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가 영화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Agnieszka Holland)에 의해 1995년에 영화로 탄생한 것이다.
주인공 랭보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맡았고, 베를렌역은 데이비드 듈리스(David Thewlis)가 맡았다. 랭보가 베를렌에게 보낸 주옥같은 시로 시작된 두 천재 시인의 열정적이고 파괴적인 삶이 펼쳐진다.
이제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에티오피아 동부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하라르(Harar)를 만나보자. 하라르 커피의 세계는 블루베리와 와인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향미를 품고 있다.
하라르의 매력은 오랜 역사와 문화다. 200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라르 구시가지는 수백 년 동안 동아프리카와 중동을 연결하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커피뿐 아니라 향신료와 직물, 다양한 물품이 이곳을 통해 오가며 독특한 커피 문화를 꽃피웠다.
▲ 하라르 커피시장 [AI 생성 이미지]
하라르는 에티오피아 동부 고원지대에 위치한 대표적인 커피 산지다. 해발 2000미터 내외의 높고 비교적 건조한 기후에서 재배된다. 하라르 커피는 홍해와 아라비아반도를 잇는 교역로를 통해 세계로 전해졌고, 이슬람 문화권으로 향하는 커피의 주요 관문이었다.
하라르 커피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독특한 향이다. 잔을 가까이하면 진한 과일 향이 퍼지고, 이어 다크초콜릿의 깊은 향이 더해진다. 여기에 은은한 향신료와 와인을 떠올리게 하는 복합적인 풍미가 어우러진다.
이처럼 하라르 커피가 독특한 향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전통적인 내추럴(Natural) 가공 방식이다. 잘 익은 커피 체리를 햇볕에 천천히 건조하면서 과육의 당분과 향이 생두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과일 향과 달콤한 풍미가 풍부하게 형성된 것이다.
맛 또한 하라르만의 특징이 뚜렷하다. 과일을 연상시키는 산미와 묵직한 바디, 초콜릿과 견과류를 닮은 고소함이 오래 남는다. 블루베리나 레드와인을 연상시키는 달콤함이 커피의 깊이를 선사한다.
커피를 그림에 비유하여 예가체프가 섬세한 수채화에 비유된다면, 하라르는 강렬한 유화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깊이와 무게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개성이 뚜렷한 커피다.
하라르 커피에는 전통적으로 생두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롱 베리(Long berry)와 숏 베리(Short berry)라는 독특한 구분이 있다. 롱 베리는 이름처럼 생두가 크고 길쭉하고, 숏 베리는 상대적으로 작고 둥근 형태를 보인다. 두 종류 다 하라르 특유의 복합적인 향미와 개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블루베리 향과 와인을 닮은 풍미를 가진 하라르 커피 한잔 하실까요!
▲ 김명섭 문학박사, 한림성심대학교 바리스타제과제빵과 명예교수 [Hallym Coffee&Co. 대표 / Hallym Coffee&I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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