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메모리칩이 컴퓨터 기판에 부착돼 있다. 사진=로이터·연합
글로벌 주식시장은 이달도 강세다. 그 예로 글로벌 증시를 주도하는 뉴욕 3대 주가지수를 보자. 지난 13일 종가 기준으로 각 주가지수는 전월보다 모두 올랐다. 나스닥 지수는 6.1%, S&P500 지수는 3.3%,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0.1% 상승했다. 업종을 세분화하면 상승장 분위기를 더욱 자세히 느낄 수 있다.
반도체 기업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14.4% 급등하며 시장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반도체 3강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55% 가량 급등했다. 다른 기업도 두 자릿수 이상 수익률을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반도체 산업 ‘슈퍼 사이클’(초호황기)에 올라탔다는 데 동의한다. 지금의 반도체 강세장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이유다. 다만 아무런 경계 없이 반도체에 모든 걸 베팅한 건 아니다. 돌발 악재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투자자들은 미국 물가 지표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현지 시간 12일과 13일에는 미국의 핵심 물가지표인 소비자물가(CPI)와 생산자물가(PPI)가 발표됐다. 이번에 발표된 물가 지표는 지난달 기준인데, 중동전쟁 충격이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예상하듯이 결과는 증시에 불리했다. 소비자물가는 전월 대비 0.4% 오르며 예상치 0.3%와 전월치 0.2%를 웃돌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수치도 예상치 3.7%와 전월치 3.3%보다 높은 3.8%로 나타나면서 물가 우려를 더했다.
바로 다음 발표된 생산자물가도 부정적인 수치를 낸 건 마찬가지였다. 전월 대비 물가상승률은 1.4%로 예상치 0.5%를 크게 상회했다. 전월치 0.7%도 당연히 넘겼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2022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6.0%를 기록했다. 미국 경제 전반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다시 노출되고 있다. 이럴 때 주식시장은 오르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 증시를 끌어올리는 동력 중 하나인 유동성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시장은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물가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을 중립적으로 유지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주식시장 열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중동전쟁을 고려하면 물가 상승세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명목금리에서 실질금리(물가연동채 금리)를 차감해 얻을 수 있는 기대 인플레이션은 상승 뒤 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향후 1년 기대 인플레이션 수치는 이달 13일 기준 3.20%로 지난달 7일 고점인 5.34%보다 낮다. 시장은 물가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향후 중동 종전 협상이 타결될 경우 물가가 다시 하락할 가능성도 함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시장 전체를 흔드는 변수가 잠잠해진다면 주식시장도 다시 오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중동 정세 불확실성이 날로 짙어지고 있지만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견고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반도체 지수 강세는 단순 기술적 반등이 아니라 전 세계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사이클 본격화를 시사한다. 앞으로도 실질 수요와 투자가 서로 영향을 미치며 AI 산업 전반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이크론, 인텔, AMD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률이 이를 증명한다. 마이크론과 같은 메모리반도체 기업의 강세는 AI 서버 확충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급증과 맥을 같이한다. 거시경제 불확실성이라는 악재 요인이 존재하지만, 정보기술(IT) 기업은 막대한 투자를 반도체로 쏟아붓고 있다. 그러므로 투자자들은 물가지표 소수점 한 단위 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AI 중심 전략을 유지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증시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12개월 선행 EPS(주당순이익) 이익조정비율을 보면 반도체와 하드웨어 업종이 압도적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4주 전 대비 차이를 보더라도 IT 업종은 실적 눈높이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AI 기술의 실제 가치나 수익보다 시장의 기대가 과도하게 부풀려지면서 투자와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급등하는 현상인 ‘AI 버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시장은 AI가 주도하는 기술, 한국에서는 반도체에 프리미엄을 주고 있다. 실체 없는 기대로만 시장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투자와 이익 추정치 상향이라는 견고한 기초 위에 반도체 랠리가 나타난 것이다.
핵심은 명확하다. 중동 불안에 따른 물가 상승이란 잔파동에 흔들릴 필요 없다. 시장 주도 업종인 AI 반도체를 놓치면 안 된다. 물론 지금까지 반도체 종목이 많이 오른 것도 사실이다. 버블 부담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적 전망이 꺾이거나 AI 산업에서 급격한 수요 둔화와 같은 명백한 매도 신호가 확인되기 전까지 포트폴리오에서 반도체 비중을 줄이거나 배제하는 전략은 피해야 한다.
시장은 걱정의 벽을 타고 오른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잠시 덮어두자. AI가 만들어갈 혁신과 이익에 집중할 때다. 한국이 주도할 수 있고, 성장 수혜가 기대되는 반도체를 외면하면 안 된다. 여러 업종 중 가장 강력한 상승세를 보였던 반도체는 올해 내내 관심 대상으로 넣어둬야 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weeklyh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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