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의 힘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며 적지 않은 성과를 만들지만, 정작 그 노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른 채 흘러갈 때가 많다.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고 없음은 우리 삶에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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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질문,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학창 시절, 우리를 가장 설레게 하면서도 때로는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질문은 단연 “너는 꿈이 뭐니?”라는 물음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꿈을 만들어내거나 위인전을 뒤적였다. 때로는 대통령, 때로는 수학자, 때로는 화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래라는 도화지에 형형색색의 그림을 그렸다. 비록 막연했을지언정,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 자체로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행복한 상상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 주변을 한 번 돌아보자.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우리에게 꿈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사회는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몇 평 아파트에 사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질문의 본질이 ‘존재(Being)’에서 ‘소유(Having)’로 옮겨간 것이다. 우리 자신조차 하루하루 쏟아지는 업무와 당면한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내가 본래 어떤 꿈을 품었던 사람인지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거울 속 나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 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르는 ‘방향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새해가 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처럼, 결심이 며칠 못 가 흐지부지되곤 한다. 중요한 것은 결과의 완성이 아니라 ‘소망을 품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자신이 세운 계획이 시간의 파도에 밀려 금방 사라질지라도, 가슴속에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심리학자 C.R. 스나이더는 희망을 가진 사람의 사고방식에는 두 가지 특별함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할 수 있다.’는 내적 동기이며, 둘째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대안적 경로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뇌과학적으로도 소망을 품은 뇌는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시련 앞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편도체의 과잉 반응을 억제한다. 결국 소망은 우리에게 ‘회복 탄력성’을 선물한다. 시련이 닥쳐도 돌아갈 곳, 곧 비전이 있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그러나 비전이 없는 사람은 시련을 종착역으로 받아들인다. 삶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지능이나 환경의 차이 때문만이 아닌, 오늘을 견뎌야 할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와 관련하여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진행한 장기 추적 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팀은 졸업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꿈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결과는 세 집단으로 나뉘었다.
첫째,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문서로 기록해 둔 집단은 단 3%에 불과했다.
둘째, 비전과 목표는 머릿속에 있지만 따로 기록하지는 않은 집단이 13%였다.
셋째, 별다른 비전이나 구체적인 목표 없이 현실에 순응하며 살겠다는 집단이 84%였다.
10년 뒤, 연구팀이 이들의 삶을 다시 추적했을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목표는 있었으나 기록하지 않았던 13%는 목표가 없던 84%보다 평균 소득이 2배 높았다. 압권은 ‘기록한 집단’ 3%였다. 그들의 성과는 목표가 없던 84% 집단보다 10배나 높았고, 나머지 97%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사회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단순히 종이에 적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기록하는 행위는 무의식에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이다. 명확한 목표를 기록한 사람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의 비전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 미세한 선택의 차이가 10년의 시간 동안 복리로 쌓여 거대한 격차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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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벽과 꿈의 크기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꿈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한다. 어린 시절의 원대한 포부와는 달리, 현실의 벽에 부딪혀 한참 모자란 곳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깊은 실망감과 자괴감이 찾아온다.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전략은 ‘꿈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기대치를 낮춰 실망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다. “현실이나 잘 살자.”라며 비전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현실은 우리가 꾼 꿈의 ‘일부’를 성취하게 만든다. 만약 100이라는 꿈을 꾸면 현실에서는 50이라도 이룰 수 있지만, 꿈을 10으로 줄이면 5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꿈이 없다면 우리가 마주할 현실은 그저 우연에 맡겨진 파편들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는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큰 꿈은 구체적인 전략을 짜게 하고 더 넓게 세상을 보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갭(gap)’에 대한 태도다. 꿈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실망감을 이겨내는 힘을 키워야 하겠다.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고민하고, 배우는 모든 과정이 곧 당신의 능력이 될 수 있다. 결핍은 성장의 가장 강력한 재료이다.
비전의 힘은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비전이 없는 회사는 미래가 없으며 비전만 있고 구체적인 실행 목표가 없는 회사는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다. 최근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기업 ‘엔비디아(NVIDIA)’을 살펴보자. 그들은 단순히 ‘성능 좋은 그래픽 카드를 만드는 회사’에 머물지 않았다. 초기부터 “세상을 계산하는 방식을 바꾸겠다.”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당시 시장은 그들을 게임용 부품 제조사로만 치부했지만, 엔비디아는 그 인식을 거부하고 AI 시대가 올 것을 예견하며 비전을 구체화했다.
수십 년간 한 길을 걸으며 도전하고 연구한 끝에,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를 지배하는 심장이 되었다. 반면, 1990년대 그래픽 카드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3dfx(부두시리즈)’는 어떠했는가? 당장의 기술적 우위에 안주하며 폐쇄적인 생태계를 고집했다. 미래를 관통하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단기 수익에 급급했던 그들은 결국 2000년대에 들어서며 경영 악화로 엔비디아에 인수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비전의 유무가 기업의 생사와 영욕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가늠자가 되었다.
필자는 몇 해 전, 최고의 자산관리사(PB)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을 때 일상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다. 비전은 마치 길을 잃었을 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북극성과 같았다. 최근에는 안락한 삶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다. 새로운 배움의 여정은 고되고 힘들 수 있지만, 현재의 내 모습이 과거의 내가 품었던 비전의 결과물임을 알기에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한 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비전은 목표가 아니라 ‘태도’다
인생을 살면서 비전이 없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나거나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남들처럼 편안하게 살면 안 되나? 왜 힘들게 목표를 세워야 하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전이 없는 삶은 ‘방향 없는 성실함’에 빠지기 쉽다. 그저 남들이 가는 길, 손해 보지 않는 길, 당장 덜 힘든 길만을 택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디에 있는지 회의감이 찾아온다.
인생의 거친 풍랑이 불어닥칠 때, 비전이라는 닻이 없는 배는 쉽게 전복된다. 또한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평가나 외부의 기준에서 찾게 되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결국 비전은 도달해야 할 지점(목표)이라기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태도)에 가깝다.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펜을 들어보자.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세상에 남기고 싶은 흔적, 되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기록해 보길 바란다. 그 기록된 비전이 삶이라는 엔진에 새로운 연료를 공급해 줄 것이다. 미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품은 비전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글쓴이 안주이
26년간 은행원으로 근무하며 WM(Wealth Management) 분야에서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재무 관리와 투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2024년부터는 마케팅 코치로 활동하며, 대외적인 금융 교육과 직원 대상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KAC 한국코치협회 인증 코치로 전문 코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학생, 공무원, 기업인 대상의 마인드 강연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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