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휴전 기대·머니무브 삼각 엔진… 두 달 만에 19% 낙폭 딛고 전고점 재돌파
이란 전쟁으로 인해 페르시아만의 중요한 해상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어 파나마 운하로의 우회 통행량이 급증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감신문] 신선미 기자=유가증권시장이 마침내 전쟁 이전의 영토를 되찾았다. 4월 21일 코스피는 지난 2월 27일 장중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 6347.41을 다시 돌파하며 한국 자본시장 역사의 새 꼭짓점을 찍었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 충돌로 3월 한 달에만 19.08%가 증발했던 지수가, 불과 한 달 반 만에 '전쟁 이전'의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한 월별 하락률 기준 역대 4위에 올랐던 3월의 폭락 기억을 감안하면, 이번 재돌파는 단순한 가격 복원이 아니라 시장 체력의 재확인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직전 거래일 6219.09로 마감하며 7거래일 연속 상승 흐름을 이어갔던 지수는, 해외 투자은행들의 공격적인 목표가 상향과 반도체 실적 기대감을 동력으로 삼아 이날 사상 최고 고지를 밟았다. 이달 들어 코스피 상승률은 23%를 넘기며 미국 나스닥과 일본·대만 증시를 모두 앞질렀고, 주요국 증시 가운데 4월 수익률 1위를 차지했다.
반전의 출발점은 4월 8일 성사된 미국·이란의 2주간 휴전 합의였다. 이날 하루 코스피는 6.87% 급등하며 5800선을 단숨에 회복했고, 이후 중동 외교가 단계적 진전을 보이자 3월 내내 국내 증시를 짓눌렀던 위험 회피 심리가 빠른 속도로 풀렸다. 관세청과 KB증권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4월 10일까지 누적 수출액은 25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7% 급증했고,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은 152.5% 폭증하며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다. 이 구조적 실적 개선이 지정학 변수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지수의 하방을 떠받쳤다. 에프앤가이드 집계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 전망치는 540조 원으로 3개월 전 대비 42조 원 상향됐고, 내년 전망치는 672조 원으로 66조 원 높아졌다. 이익 추정치가 단기간에 이만큼 위로 움직인 전례는 드물다.
해외 투자은행의 눈높이도 공격적으로 재조정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8일 보고서에서 코스피의 12개월 목표치를 기존 7000에서 8000으로 상향했다. 상향 근거로 2026년 기업 이익 전망치의 대폭 개선,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과세로 대표되는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진전, 그리고 과거 대비 두드러지게 개선된 주주환원 정책이 제시됐다. 이는 국내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구조적 축소 국면에 본격 진입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국내 수급 환경도 달라졌다. 금융투자업계 집계에 따르면 4월 14일 기준 증시 주변 자금은 295조3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약 62조 원 증가했고, 신용융자잔고는 16일 기준 33조8000억 원대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예금·부동산·해외 주식에서 국내 증시로 자금이 이동하는 이른바 '한국형 머니무브'가 본격화되며 지난해 이후 개인 자금 약 140조 원이 국내 주식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변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재봉쇄 카드를 번갈아 꺼내면서 국제 유가는 주초부터 재차 출렁였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99달러 선으로 다시 뛰었다. 유가 반등은 원·달러 환율을 1480원대로 밀어 올리며 수입 물가 자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측에서는 케빈 워시 신임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매파적 발언이 나올 경우 글로벌 긴축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증권가 일부에서는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이 7.5배 수준으로 여전히 저평가 구간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지만, 동시에 단기 과열 구간에서는 대형주 중심의 쏠림이 중소형주 상대 낙폭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병행된다.
당장의 초점은 이번 주 후반 발표될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 사이클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으로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다. 여기에 미국 S&P500과 나스닥이 이란 전쟁 이후 처음으로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재경신하면서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 분위기도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한국 증시의 다음 목표는 명확하다. 시장은 이미 코스피 6500, 나아가 연내 7000선 진입 가능성까지 숫자를 올려잡기 시작했다. 전쟁이라는 외생 충격을 한 분기 만에 소화하고 원점 복귀에 성공한 2026년 봄의 국면은, 한국 자본시장이 과거 '박스피' 시절과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입증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전고점 재돌파의 의미는 가격 지표 그 자체가 아니라, 지정학 변수에 휘둘리던 시장이 반도체 실적과 정책 개혁이라는 '내재 동력'으로 중심축을 옮겨냈다는 데 있다.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랠리의 핵심은 전쟁 종식 기대가 아니라 기업 이익 전망의 구조적 상향이다"라며 "단기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코스피는 7000선을 향한 재평가 경로에 이미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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