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아비뇽에 간다고 하니 주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너무 좋겠다! 그런데 아비뇽이 어디야?” 호기심 어린 탄성과, “한여름의 아비뇽은 정말 뜨거우니 조심해” 걱정 섞인 염려. 물론 많은 이들이 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아비뇽 유수’를 먼저 떠올렸다. “카노사의 굴욕이 아비뇽에서 벌어진 일이던가?” 골몰하는 표정을 보며 나 역시 같은 표정을 짓곤 했다.
출국을 앞두고는 프랑스를 덮친 폭염이 연일 뉴스였다. 파리를 비롯한 남부 지방 기온이 40도를 치솟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아비뇽에 가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프랑스 남부의 오래된 성곽도시인 이곳에서 매년 여름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다.
14세기 로마 가톨릭의 본산이었던 교황청 궁전을 비롯해 도시 전체가 거대한 극장으로 변하는 이 축제는 올해 더욱 특별했다. 제80회를 맞은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한국어를 초청 언어로 선정한 데 이어, 연극·무용·판소리 등 한국 공연 9편이 축제의 공식 프로그램(IN)에 초청됐다. 한국 작품이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린 것은 1998년 이후 무려 28년 만이다. 세계 공연예술계 무대에서 한국의 공연예술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비행기로 12시간, 다시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아비뇽은 축제가 한창이었다. 중세 성벽에는 공연 포스터가 나부끼고 있었고, 분장을 한 배우들은 공연 전단을 나눠주며 관객을 불러모았다. 한낮의 열기가 식은 저녁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도시는 또 다른 옷을 갈아입었다. 골목마다 들뜬 표정으로 극장을 찾아 헤매는 이들을 마주쳤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카페와 광장에서 흥분된 목소리로 작품을 이야기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도시가 축제를 품은 것이 아니라, 축제가 도시의 일상이 된 듯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한국 공연에 대한 현지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공연 <새>가 축제의 메인 무대인 교황청 명예극장에서 초연됐고, 소리꾼 이자람의 창작판소리 <눈, 눈, 눈>,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 입센상을 수상한 구자하 작가의 <하리보 김치> 등 한국 공연들이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와 환호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 가운데는 공연으로 한국을 처음 접했다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K팝과 K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우리 순수 공연예술이 K컬처의 새로운 얼굴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감한 현장이었다.
동시에 이 순간을 다른 한국 관객들과 함께 나눴다면, 더 많은 언론이 한국 공연예술의 역사적인 장면을 기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밀려왔다.
짧지 않은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나라와 도시를 취재했지만 아비뇽은 쉽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괴로웠던 폭염, 그보다 더 강렬했던 것은 세계 무대에서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국 공연예술의 현재를 목격한 경험이었다. 타들어갈 듯한 태양 아래 까무잡잡해진 팔등과 샌들 구멍 모양 그대로 붉게 익은 발등이 따끔거린다.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노정연 문화부 차장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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