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제작한 이미지.
최근 벤처투자 업계의 화두는 단연 국민성장펀드다. 특히 국민성장펀드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기업공개(IPO)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두고 정책자금의 유입이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인지, 아니면 상장 문턱을 낮추는 후광으로 작용하는 것인지 시장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국민성장펀드 투자 유치는 분명 기업에 강한 신뢰를 안긴다. 정책금융이 미래 산업의 후보로 점찍었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IPO를 준비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서사가 많지 않다. 일종의 '보증수표'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신뢰가 곧 상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성장펀드의 간판을 달았다고 해서 상장심사 문턱이 낮아지거나, 기관투자자가 공모가를 무조건 받쳐주는 것은 아니다. 시장은 결국 기업이 벌어들일 돈과 버틸 시간, 그리고 이를 실적으로 전환할 능력을 본다.
문제는 '정책금융'이라는 후광이 때로는 냉정한 가치 검증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찍은 기업',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 플레이어', '장기 인내자본이 선택한 회사'라는 문구는 투자 설명서 속 숫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호가호위’를 경계해야 한다. 국민성장펀드의 권위를 빌려 아직 증명되지 않은 실적과 미래 매출까지 앞당겨 평가받으려는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 정책금융 투자 유치는 단지 미래 가능성의 참고자료일 뿐이다. 단순히 투자를 받은 것만으로는 매출이 늘지도, 고객사의 구매 결정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기술 상용화 시간을 단축하는 데도 영향을 주지 못 한다.
특히 기술기업일수록 이 같은 현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여야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바이오처럼 국가 전략산업으로 묶이는 영역은 성장 서사가 뚜렷하다. 반대로 실적 검증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간극을 메우는 재료로 국민성장펀드가 활용되면, 기업은 높은 밸류에이션을 시장에 설명하기 쉬워진다.
리벨리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리벨리온은 국민성장펀드의 첫 직접투자 기업으로 이름을 올리며 6400억원 규모 프리IPO 자금을 확보했고, 기업가치는 3조4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이번 프리IPO 라운드에는 국민성장펀드 2500억원, 산업은행 500억원 등 정책자금 3000억원이 투입됐다.
리벨리온이 국내 AI 반도체 생태계를 대표하는 상징성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상징성이 곧 공모가의 정당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앞으로 시장이 봐야 할 것은 국민성장펀드가 얼마를 투자했느냐가 아니라, 투자 후 기업이 고객사와 매출, 양산 경쟁력을 얼마나 입증했는지가 돼야 한다.
정책금융은 '도장'이 아니라 '돋보기'로 작용해야 한다. 좋은 기업이라는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책자금이 투입된 만큼 기업을 더 엄격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가 돼야 한다.
국민성장펀드가 벤처기업에 부여하는 가장 큰 가치는 상장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다. 오랜 개발 기간을 견딜 시간과 비용을 벌어주는 데 있다. 이 과정을 생략한 채 정책금융 투자라는 간판만 믿고 공모시장에 나선다면, 그 후폭풍은 시장과 개인투자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국민성장펀드 투자 기업이라는 이름값은 IPO 보증수표가 아니라 더 냉정한 검증을 견뎌내는 힘으로 쓰여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