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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메모]‘외세 단절’ 자존심…골든타임 놓친 네팔

지난 8월26일 네팔을 덮친 대홍수로 네팔인 외에도 한국·중국·인도 등 30여개국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각국 정부가 자국민 수색과 구호를 위해 전문 구조대를 파견하겠다고 나섰지만, 네팔 정부는 거부했다.

[기자메모]‘외세 단절’ 자존심…골든타임 놓친 네팔

지난 8월26일 네팔을 덮친 대홍수로 네팔인 외에도 한국·중국·인도 등 30여개국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각국 정부가 자국민 수색과 구호를 위해 전문 구조대를 파견하겠다고 나섰지만, 네팔 정부는 거부했다.

국가 비상사태에도 외국의 손길을 거부한 배경엔 2015년 네팔 대지진의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 30여개국 구호대가 몰리며 행정 마비, 수색 현장 혼선이 심했다. 혼란을 틈타 어린이 인신매매까지 발생했다. 현지 교민과 네팔인들은 당시 네팔 사회가 겪은 상처가 깊었다고 말한다. 파르만 파델(50)은 “외국 구조대는 문제만 일으킨다”며 네팔 당국의 외국 구조대 불허 방침을 지지했다.

네팔의 정치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지난해 네팔 젠지(Gen-Z) 시위를 거쳐, 지난 3월 발렌드라 샤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와 지지자들은 “옛 정부가 과도하게 외세에 의존했다”며 악습으로 규정했다. 라즈 파리야(27)는 “젊은 네팔이 주도적으로 수색과 구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만난 네팔인들은 “정부가 대홍수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네팔인들은 스스로 재난을 수습할 수 있다며 주권국가로서의 자부심을 보였다.

직접 경험한 현장의 여건은 이런 네팔인들의 의지를 받쳐주지 못했다. 토사를 걷어낼 중장비와 구호품, 수색 전문 인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시신을 보관할 장소도,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기술력도 부족했다. 누군지 모르는 시신들이 학교 운동장에 며칠 동안이나 방치됐다. 네팔 정부의 헬기 수급을 지원한 네팔인 관계자에 따르면 네팔에서 수색에 투입할 수 있는 헬기는 20대가량이며, 그마저도 4인승 소형 관광용이 대다수다.

해외 구조대 거부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안팎에서 쏟아지자 네팔 당국은 뒤늦게 방침을 바꿨다. 지난 1일 한국 긴급구호대(KDRT) 합류를 허용하고 중국·인도·호주 등 일부 국가에 한해 터널 수색, 유전자 분석 등 기술적 지원을 수용했다. 그러나 골든타임이 지난 뒤였다.

외세 의존의 굴레를 끊고 주권국가로서 자립하겠다는 ‘젊은 네팔’의 열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재난 현장에서 국가가 가장 우선해야 할 책무는 정권의 자존심이나 외교적 체면이 아니다. 흙더미에 묻힌 생명을 1초라도 더 빨리 구해내는 일이다.

대홍수로 쏟아진 토사가 굳어가고 있다. 단단하게 굳은 흙더미 아래에, 젊은 네팔이 지켰어야 할 생명이 묻혀 있다.

사회부 |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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