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질문은 이제 ‘파병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파병할 것인가’로 이동해야
병력규모가 아니라 전쟁과 얼마나 연결되는지를 판단하는 ‘전쟁연계도’
청해부대 독자 지휘권 유지 속 다국적 해양안보협력 연계 한국형 제한참여 기준점
한국 임무경계선은 상선호송·감시·기뢰제거·수색구조 등 항행안전에 국한돼야
독자 지휘권 유지하되 국제사회와 협력, 군사적 기여는 하되 대이란 공격작전 편입 안돼
국민과 국회의 동의 통해 가장 쉬운 절차가 아니라 가장 강한 민주적 정당성 선택해야
파병 핵심은 병력 규모가 아니라 ‘전쟁연계도’라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프롤로그. When(언제)에서 How(어떤방식)로, 이제는 파병의 방식을 결정할 시간
호르무즈 파병을 둘러싼 한국의 고민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논쟁의 중심이 파병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있었다면 이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군사적 기여 요구와 이란의 공개적인 경고가 동시에 커지면서 한국의 선택공간도 좁아지고 있다.
어제 칼럼에서 필자는 한국이 파병 카드를 가장 유리하게 활용할 협상의 골든타임을 놓쳤을 가능성이 크지만 결정의 주도권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선택해야 할 파병의 방식은 무엇인가.
파병과 불참 사이에는 여러 선택지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몇 명을 보내고 어떤 전력을 보내느냐만이 아니라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그 임무가 미·이란 전쟁과 얼마나 연결되며, 어디에서 그 연결을 차단할 것인가이다.
한국은 참전을 피한다는 이유로 우리 선박과 국민, 해상교통로(SLOC)와 항행의 자유를 보호할 책임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동맹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대이란 전쟁에 편입돼서도 안 된다. 이제 질문은 왠(When)에서 하우(How)로 이동해야 한다. 어떻게 참여하고 어디까지 참여하며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를 대한민국이 먼저 결정해야 한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대 명예교수. 김태준 소장 제공
I. 파병의 핵심은 병력의 규모가 아니라 ‘전쟁연계도’다
국내의 호르무즈 파병 논쟁은 쉽게 파병 찬성과 반대라는 양자택일로 나뉜다. 그러나 실제 국가의 선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군대를 해외에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참전이 되는 것도 아니며, 병력을 직접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전쟁과 완전히 분리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군사력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임무를 수행하며 진행 중인 전쟁과 얼마나 연결되는가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연계도(War-Linkage)’라는 기준이 필요하다. 전쟁연계도란 한국의 군사적 활동이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이란 전쟁, 특히 대이란 공격작전과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여기에 두 가지 기준을 더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어느 정도의 군사적 역량을 투입하는가를 나타내는 ‘참여강도(Participation Intensity)’이고, 다른 하나는 임무와 지휘체계, 교전규칙과 철수조건을 대한민국이 얼마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결정주도권(Sovereign Control)’이다.
이 세 가지 기준으로 보면 파병의 성격은 병력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P-8 해상초계기나 폭발물처리반(EOD) 전력을 투입하더라도 한국 선박 보호와 해상감시, 기뢰·폭발물 제거 등 항행안전 임무에 한정하고 한국이 이를 통제한다면 참여강도는 높아져도 전쟁연계도는 낮게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소수의 연락장교나 정보요원만 파견하더라도 이들이 미군의 대이란 표적정보와 공격작전에 직접 연결된다면 병력 규모는 작아도 전쟁연계도는 높아질 수 있다.
이미 중동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해부대도 이러한 차이를 보여준다. 청해부대가 파견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특정 국가와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 파견부대라고 해서 어떤 임무를 수행해도 전쟁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상선호송과 수색구조, 해상감시를 수행하는 것과 미군의 대이란 공격을 위한 표적정보를 제공하거나 공격작전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한국이 검토해야 할 선택은 파병과 불참이라는 두 지점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선 위에 존재한다. 외교·지원형에서 청해부대 보호형, 다국적 항행안전형, 연합작전 지원형을 거쳐 대이란 참전 연계형으로 이동할수록 전쟁연계도는 높아진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어디까지 참여하고 어디에서 선을 그을 것인가이다.
한국의 목표는 참여강도를 무조건 낮추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한국 선박과 국민, SLOC와 항행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실질적인 군사적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신 그 군사적 기여가 미국의 대이란 공격작전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전쟁연계도를 통제해야 한다.
결국 파병의 핵심은 몇 명을 보내느냐가 아니다. 어떤 임무까지 수행하고 어디서 전쟁과의 연결을 끊으며 그 경계를 누가 결정하느냐이다. 한국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은 군사력을 보내는 순간이 아니라 항행안전을 위한 군사적 기여가 대이란 공격작전을 지원하는 임무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청해부대는 한국형 제한참여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 청해부대는 왜 한국형 파병의 기준점이 될 수 있는가
한국이 호르무즈 파병 방식을 설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다. 이미 중동 해역에는 청해부대가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은 2020년 호르무즈 위기 당시 이 전력을 활용해 미국과의 협력, 대이란 관계, 우리 국민과 선박 보호라는 서로 다른 요구를 조정한 경험이 있다.
당시 한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정식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아덴만에서 오만만과 페르시아만 일대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하고 IMSC에는 연락장교를 파견했다. 미국과 정보·협력 채널을 유지하면서도 청해부대의 지휘권과 임무는 한국이 통제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 경험은 2026년에도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청해부대는 이미 파견돼 있는 전력으로 우리 선박과 국민 보호라는 기존 임무와 연결할 수 있고, 새로운 대규모 전력을 처음부터 구성하는 것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이 독자적인 지휘권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분야에서 다국적 해양안보협력과 연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2020년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할 수는 없다. 당시와 달리 지금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 실제 무력충돌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란도 한국을 포함한 제3국의 군사적 참여에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같은 청해부대라도 어느 해역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어떤 정보를 누구와 공유하느냐에 따라 전쟁연계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청해부대를 활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한 선택이라고 볼 수 없으며, 반대로 작전구역을 확대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대이란 참전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판단의 기준은 부대의 명칭이나 기존 파병 여부가 아니라 새롭게 부여되는 임무의 목적과 성격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청해부대는 여러 파병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라기보다 한국형 제한참여를 설계하는 기준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기존 전력을 활용해 우리 선박과 국민 보호, 항행안전과 수색구조를 수행하고 필요하다면 해상감시와 위협경보, 기뢰·폭발물 대응까지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임무가 미군의 대이란 공격작전이나 공격용 표적정보 제공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분명한 제한선을 설정해야 한다.
국회 동의 문제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기존 청해부대 파견동의안이 허용하는 목적과 임무의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면 별도의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이 진행되는 해역으로 활동범위를 확대하거나 새로운 군사적 임무를 부여한다면 기존 파견의 연장인지 임무의 실질적 변경인지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청해부대를 국회 동의를 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설령 기존 동의의 범위 안에서 제한적인 임무수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지금은 2020년보다 전쟁연계 위험이 훨씬 크다. 정부는 국민과 국회에 임무의 목적과 위험, 금지선을 충분히 설명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청해부대의 전략적 가치는 새로운 파병을 우회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축적된 해양안보 경험과 전력을 활용하면서도 대한민국이 임무와 지휘권을 통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2020년의 청해부대가 한국의 선택지를 넓혀준 전례였다면 2026년의 청해부대는 참여와 참전 사이의 경계를 대한민국이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임무경계선’은 항행안전과 대이란 공격작전 지원 사이에 그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I. 한국의 ‘임무경계선’은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
청해부대를 활용하든 P-8 해상초계기나 EOD 전력을 추가로 보내든 중요한 것은 어떤 전력을 보내느냐보다 어떤 임무를 부여하느냐이다. 같은 군함과 항공기라도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운용될 수도 있고 대이란 공격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운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은 파병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참여할 임무와 참여하지 않을 임무 사이에 명확한 ‘임무경계선(Mission Boundary)’을 설정해야 한다.
경계선의 한쪽에는 대한민국의 직접적인 국가이익과 연결되는 방어적 임무가 있다. 한국 선박의 보호와 호송, 해상감시와 위협경보, 기뢰·폭발물의 탐색·제거, 수색구조와 조난 선박 지원, 우리 국민 보호가 여기에 해당한다. P-8 해상초계기를 활용한 해상상황 감시도 수집된 정보가 항행안전과 상선보호에 한정된다면 같은 범주에서 검토할 수 있다.
이러한 임무의 목적은 미국의 대이란 전쟁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SLOC와 국제법상 항행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있다. 군사전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참여강도는 높아질 수 있지만 대이란 공격작전과 분리된 상태를 유지한다면 전쟁연계도는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임무경계선을 넘어가면 성격이 달라진다. 이란 군사시설 공격을 위한 표적정보 제공, 미군 공격작전을 위한 정보·감시·정찰(ISR) 지원, 공격작전을 직접 뒷받침하는 군수지원, 이란 영토나 군사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은 항행안전과 상선보호의 범위를 벗어난다. 한국군이 직접 무기를 발사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군사활동이 미군의 대이란 공격작전에 직접 결합된다면 전쟁연계도는 급격히 높아진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넘어서는 안 될 임무경계선은 다국적 항행안전 활동과 대이란 공격작전 지원 사이에 그어져야 한다. 다국적 협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목적으로 협력하느냐가 중요하다. 영국·프랑스 등과 상선호송, 기뢰제거, 해상감시와 수색구조를 수행하는 것과 미국의 대이란 공격작전 지휘체계에 편입되는 것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이를 기준으로 한국의 선택은 외교·지원형, 청해부대 보호형, 다국적 항행안전형, 연합작전 지원형, 대이란 참전 연계형이라는 연속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앞의 세 단계는 임무와 교전규칙을 엄격히 통제한다는 조건 아래 한국의 국가이익과 항행안전이라는 목적에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연합작전 지원형부터는 미국의 군사작전과 직접적인 연결이 시작되며, 대이란 참전 연계형에서는 전쟁연계도가 가장 높아진다.
특히 정보공유에는 더욱 명확한 경계가 필요하다. 현대전에서는 무기를 직접 사용하는 것 못지않게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제공했는지가 군사작전의 성격을 결정할 수 있다. 한국의 P-8이나 함정이 획득한 정보를 상선의 안전항로 설정과 위협경보에 사용하는 것과 이란의 발사대나 군사시설을 공격하기 위한 표적정보로 제공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정보공유 역시 항행안전이라는 목적을 벗어나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형 제한참여의 핵심은 참여강도를 무조건 최소화하는 데 있지 않다. 필요한 군사적 기여는 하되 전쟁연계도가 임무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허용임무와 금지임무, 교전규칙과 정보공유의 범위, 지휘관의 권한, 임무확대 절차와 철수조건을 파병 결정 단계부터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결국 한국이 정해야 할 것은 단순한 파병 규모가 아니라 전쟁과의 거리다. 참전을 피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답이 아니며, 동맹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임무의 경계를 열어두는 것도 위험하다.
한국군이 어디에 있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만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미리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 선이 대한민국이 스스로 설정해야 할 임무경계선이다.
한국의 독자 지휘권은 유지하되 다국적 해양안보협력과 선택적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V. 독자 지휘와 다국적 협력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임무경계선을 설정했다면 다음 문제는 누구와 함께 작전하고 누가 한국군의 임무를 결정할 것인가이다. 호르무즈처럼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이 진행되는 해역에서는 어떤 임무를 수행하느냐 못지않게 어떤 지휘체계에 들어가느냐가 전쟁연계도를 결정한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크게 독자작전, 미국 주도 연합작전, 그리고 독자 지휘권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분야에서 다국적 협력을 하는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국가이익과 전쟁연계도를 함께 고려한다면 세 번째 방식인 ‘독자 지휘하의 다국적 제한참여’가 가장 현실적이다.
한국군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 지휘체계에 직접 편입될 경우 정보공유와 군수지원, 작전계획이 미국의 공격작전과 연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군이 직접 이란을 공격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군사활동이 대이란 공격작전을 실질적으로 지원한다면 임무경계선을 넘을 수 있다. 동맹에 기여한다는 것이 미국이 수행하는 모든 군사작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한국이 호르무즈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최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고위험 해역에서는 위협정보와 항행정보, 기뢰정보, 공중·해상상황을 여러 국가가 공유해야 하고 상선호송과 수색구조에도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이 단독으로 활동할 경우 이란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대응하기 쉬운 동맹국을 선별해 압박하거나 공격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군의 임무와 교전규칙, 작전범위와 철수 여부는 대한민국이 결정하되 항행안전과 상선보호에 필요한 분야에서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프랑스 등 국제사회의 해양안보 활동과 선택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자 지휘권은 유지하되 혼자 행동하지 않는 방식이다.
청해부대의 경험은 이러한 모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020년 한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에 정식 참여하지 않으면서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확대하고 연락장교를 파견했다. 당시 방식을 현재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독자적인 작전지휘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정보와 협력체계를 연결했다는 원칙은 참고할 가치가 있다.
다만 지금은 실제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더 엄격한 임무제한이 필요하다. 상선호송과 해상감시, 위협경보, EOD와 기뢰제거, 수색구조에는 협력하되 대이란 공격작전을 위한 표적정보 제공과 공격지원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국적 협력의 범위도 어느 국가와 협력하는가보다 어떤 임무를 공동으로 수행하는가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한국의 선택모델을 전쟁연계도와 결정주도권을 중심으로 구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전력의 종류가 아니라 각 전력이 수행하는 임무의 전쟁연계도와 대한민국이 유지할 수 있는 결정주도권이다.
같은 P-8 해상초계기라도 상선의 안전항로와 해상위협을 감시하면 다국적 항행안전형이 될 수 있지만, 이란 군사시설을 추적해 공격용 표적정보를 제공한다면 연합작전 지원형이나 대이란 참전 연계형으로 이동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임무경계선은 다국적 항행안전형과 연합작전 지원형 사이에 설정돼야 한다.
한국은 상황에 따라 청해부대 보호형에서 다국적 항행안전형까지 참여강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연합작전 지원형부터는 전쟁연계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만큼 명확한 금지선을 설정해야 한다.
결국 한국에 필요한 것은 미국과 함께하느냐 함께하지 않느냐의 선택이 아니다. 동맹국으로서 필요한 책임을 분담하면서도 대이란 전쟁에 편입되지 않는 지휘와 임무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독자 지휘권은 갖되 혼자 행동하지 않고, 국제사회와 협력하되 공격작전에는 편입되지 않는 것, 이것이 한국형 제한참여의 핵심이어야 한다.
법적 최소조건을 넘어 국민과 국회의 동의가 파병의 민주적 정당성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V. 법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왜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가
파병 방식과 임무경계선을 정했다면 마지막으로 확보해야 할 것은 국민적 정당성이다. 청해부대라는 기존 파견전력을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부대를 처음부터 파견하는 것과 법적·절차적 성격이 다를 수 있다. 기존 파견동의안의 목적과 임무범위 안에서 우리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는 활동이라면 별도의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지만, 임무의 목적이나 성격이 실질적으로 변경된다면 새로운 국회 동의가 필요한지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국회 동의를 피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법적으로 별도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도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정부가 국회와 국민의 폭넓은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0년과 2026년의 가장 큰 차이는 실제 전쟁의 존재다. 지금은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란도 한국을 포함한 제3국의 군사적 참여에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해부대의 활동범위를 호르무즈로 확대하거나 새로운 전력을 투입한다면 군사적 위험뿐 아니라 외교적·경제적 위험까지 국민이 함께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기존 파견동의안의 문구를 근거로 별도의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법률적 해석만을 앞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국회 동의를 피하기 위한 ‘꼼수 파병’이라는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고, 절차의 신속성을 얻는 대신 파병의 국민적 정당성과 지속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법적 최소조건과 민주적 정당성은 구분해야 한다. 법률이 요구하는 절차를 충족하는 것은 군사적 활동의 법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지만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얻는 것은 그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전쟁연계 위험이 높을수록 두 번째 기반은 더욱 중요하다.
국회의 논의와 동의는 오히려 한국군의 임무경계선을 명확히 하는 정치적 안전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 파견 목적을 한국 선박과 국민, SLOC와 항행의 자유 보호로 한정하고 허용임무를 호송·감시·위협경보·EOD·기뢰제거·수색구조 등으로 명시할 수 있다. 동시에 대이란 공격작전, 공격용 표적정보 제공, 공격작전을 직접 지원하는 군수활동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금지임무도 분명히 할 수 있다.
파견기간과 종료조건도 함께 설정해야 한다. 임무를 무기한 열어두기보다 일정 기간마다 필요성과 위험도를 재평가하고, 호르무즈의 정상적 통항이 회복되거나 전쟁상황이 변화할 경우 임무를 축소하거나 종료할 수 있어야 한다. 현지 지휘관에게 필요한 자위권은 보장하되 임무확대는 정부와 국회의 정치적 통제 아래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은 대외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미국에는 한국의 참여가 일시적인 압박에 따른 결정이 아니라 동맹과 국제항행질서에 대한 대한민국의 책임 있는 선택이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 동시에 이란에는 한국군의 목적이 대이란 공격이 아니라 우리 선박과 국민, 국제항행의 안전을 보호하는 제한된 임무라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물론 국회의 동의를 받는다고 이란의 위협이 사라지거나 전쟁연계도가 자동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실제 임무와 지휘체계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기관이 파견 목적과 임무경계선을 확인한다면 정부가 임의로 임무를 확대하거나 외부의 요구에 따라 작전범위를 변경하는 것을 통제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청해부대를 활용하는 이유가 국회 동의를 피하기 위해서여서는 안 된다. 청해부대의 가장 큰 장점은 축적된 해양안보 경험과 전력을 활용하면서 대한민국의 지휘권과 결정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법적으로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존재하더라도 전쟁과 평화,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대외관계가 걸린 결정에서는 가장 쉬운 절차보다 가장 강한 정당성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국회의 동의를 받고 국민에게 파병의 목적과 위험, 그리고 넘지 않을 임무경계선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참전을 피하기 위해 임무는 제한하되 민주적 통제를 피하기 위해 절차까지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한국형 제한참여가 갖춰야 할 또 하나의 조건이다.
에필로그. 참여하되 전쟁에 편입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선택이다
호르무즈 파병을 둘러싼 한국의 선택은 이제 찬성과 반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어제의 질문이 언제 결정할 것인가였다면 오늘의 질문은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이다. 파병의 골든타임을 놓쳤을 수 있지만 남아 있는 선택의 방식과 조건까지 다른 국가가 결정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한국이 판단해야 할 기준은 병력의 숫자나 전력의 종류가 아니다.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그 임무가 미·이란 전쟁과 얼마나 연결되는지, 어디에서 그 연결을 차단하며 그 경계를 누가 결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필요한 군사적 기여는 하되 전쟁연계도를 통제하고 결정주도권은 대한민국이 가져야 한다.
따라서 한국의 선택은 불참도 무제한적 참여도 아니다. 우리 선박과 국민, SLOC와 항행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책임은 부담하되 대이란 공격작전에는 편입되지 않는 제한적 참여여야 한다. 독자 지휘권은 유지하되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동맹에는 기여하되 대한민국이 설정한 임무경계선은 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의 요구 때문에 전쟁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이란의 위협 때문에 우리의 국가이익을 지킬 책임까지 포기해서도 안 된다. 늦은 결정일수록 더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결국 파병의 핵심은 보내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어디까지 참여하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를 대한민국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참여하되 전쟁에 편입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이 선택해야 할 호르무즈 파병의 원칙이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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