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교수의 경향신문 2026년 7월8일자 칼럼 “선택적 모병제, 왜 정의의 문제인가”는 병역 논의를 한 단계 깊게 만든다. 병역은 단순한 국방 행정이나 병력 수급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누가 시간과 신체, 경우에 따라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할 것인가를 묻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병역은 곧 정의의 문제라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모병제 전환은 더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물어야 할 것은 모병제가 불평등을 낳을 가능성이 있는가만이 아니다. 현행 징병제는 과연 공정한가. 이 질문을 비켜간 채 모병제를 ‘가난한 청년의 군대’로 단정하면, 지금 존재하는 불공정은 그대로 두고 앞으로 생길지 모를 불공정만 걱정하는 셈이 된다.
한국의 징병제는 형식상 보편적 의무라고 말하지만, 실제 부담은 청년 남성에게 집중되어왔다. 이들은 학업과 취업의 중요한 시기에 1년6개월 안팎의 시간을 국가에 내놓는다. 그 시간은 충분히 보상되지 않는다. 취업은 늦어지고 경력은 끊기며 사회 진입의 출발선은 뒤로 밀린다.
이 지점에서 모병제는 남성 청년만을 위한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군 복무를 남성에게 부과된 의무가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똑같이 열려 있는 공적 직업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현대 군은 전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정보, 사이버, 드론, 군수, 의료, 재난 대응까지 국방의 영역은 넓어졌다. 성별이 아니라 자격과 능력, 훈련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발하고 대우해야 한다.
이 교수는 선택적 모병제가 경제적 형편에 따른 강요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청해야 할 지적이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가 개입되었다고 어떤 선택을 곧바로 강요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청년이 공무원, 경찰관, 소방관, 위험한 산업현장의 노동자가 되는 선택도 경제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그 책임과 위험에 합당한 대우를 제공하는가이다.
군 복무도 이 기준에서 보아야 한다. 병사에게 연봉 4000만~5000만원 수준의 보수를 보장하고, 주거·의료·자녀교육·전역 후 직업훈련과 학위·자격 연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일정 기간 복무한 장병이 원한다면 부사관, 장교, 군무원, 국방기술 분야로 이어지는 장기복무의 길도 열어야 한다. 그래야 군은 임시 일자리가 아니라 전문성을 쌓고 가족을 부양하며 평생직장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공적 직업이 된다. 이 길은 여성 청년에게도 같은 보상과 승진 경로로 열려야 한다.
과거의 대리복무나 병역 면제금과 오늘의 모병제는 다르다. 부자가 돈을 내고 병역을 피하는 제도는 의무의 매매다. 그러나 국가가 위험한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노동의 인정이다.
재원 문제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모병제는 현재 병력 규모를 그대로 둔 채 보수만 올리자는 주장이 아니다. 병력 규모를 줄이고 비전투·행정·지원 업무는 민간화하거나 기술로 대체하며, 전투와 지휘, 첨단기술 분야는 전문 직업군인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절감되는 병력 운영 비용을 장병 처우와 군의 과학화에 재투자한다면 재원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저출생 시대에 청년 남성의 숫자에 기대는 징병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안보가 중요하다면 더 넓은 인재풀 속에서 전문성과 지속성을 갖춘 군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시민의 책임을 직업군인에게만 떠넘겨서도 안 된다. 전투는 전문화하되, 시민안보교육과 재난 대응, 실질적 민방위와 공공복무를 통해 공동체를 지키는 책임은 시민 전체가 나누어야 한다.
모병제는 공동체 의무의 해체가 아니다. 청년의 시간과 노동, 위험을 정당하게 대우하고 국방을 남녀 모두에게 열린 지속 가능한 전문 직업의 영역으로 재구성하려는 병역제도의 갱신이다.
김갑년 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전 고려대 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