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와 그 일환인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소식을 접하면서, 지방선거 직전 뜨거웠던 행정통합 논쟁을 다시 떠올렸다. 정부는 이 통합을 국정과제 10번 ‘자치분권 기반의 국가균형성장’의 실천방안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통령도 지방시대위원회 보고회에서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강화를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 못 박았다. 지역소멸을 막자는 취지, 그리고 이를 자치분권의 언어로 설명하려는 태도 자체를 반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정작 법안을 열어보면 자치분권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 이양된 권한의 성격이 무엇이었는지에 의문이 남았다.
전남광주 특별법안을 펼쳐 보면 답은 비교적 분명하다. 건축·개발행위·환경영향평가 등 여러 심의를 하나의 ‘통합심의’로 묶고(제97조), 개발사업 승인 하나로 여러 법령상 인허가가 자동 처리되며(제157조),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장으로 넘어갔다(제172·173조). 경실련이 국회에 발의된 전남광주, 대전충남, 대구경북 등 3개 특별법안 1035개 조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선심성 개발·재정 특혜·권한 이양에 해당하는 조항의 비중이 세 지역 모두 80% 안팎이었다.
전남광주만 주민투표 없이 시도의회 동의만으로 7월1일 출범했다. 통합 이후 통합특별시의회가 첫 안건으로 처리한 것은 ‘반도체 전략투자 지원 조례’였다. 대통령은 청와대 점검회의에서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같은 지역인데 굳이 또다시 할 필요가 있느냐”며 절차 단축을 주문했고, “인허가 상당 부분을 지방정부가 맡는 만큼 지방정부의 의지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에는 이미 이 발언이 실현될 통로-국가산업단지 지정 요청권(제192조), 규제 샌드박스 권한의 지자체 위임(제197조), 반도체특화단지 우선지정(제250조)이 마련돼 있었다. 통합 이후 첫 입법이 대기업 반도체 지원체계였다는 사실은, 이 통합이 애초에 무엇을 위해 설계됐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인허가 절차의 간소화. 35년 전 제주개발특별법 시안에 담겼다가 도민들의 반대운동을 불렀던 바로 그 독소 조항이다. 물어야 할 것은 ‘분권’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온 권한의 성격이다. 재정권과 자치입법권, 주민참여 제도가 주민에게 넘어가 권력이 아래로 내려간 것인가. 아니면 개발사업의 인허가권과 규제특례권이 지자체장 개인에게 집중돼, 권력이 자본 쪽으로 열리는 통로가 된 것인가.
제주의 20년이 그 답이다. 제주특별법 제1조도 규제완화와 자치권 보장이라는 두 목적을 나란히 뒀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이뤄진 것은 규제완화뿐이었다. 기초자치단체가 폐지되며 자치권은 오히려 축소됐다. 전남광주는 기초자치단체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제주보다 낫지만, 규제완화가 자치입법권보다 먼저 움직였다는 점에서는 제주와 다르지 않다.
균형발전과 수도권 일극 극복은 절실히 필요한 일이고, 호남에 대규모 투자가 오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지방분권이라는 명분이 규제완화라는 다른 목적을 위한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통합이나 특별자치 논의가 나온다면, 주민투표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규제특례 역시 지방분권과 분리해 별도로 심사해야 한다. 규제완화를 지방분권으로 참칭하지 마라. 재정을 주고, 자치입법권을 주고, 주민에게 결정권을 달라. 그것이 진짜 지방분권이다.
서휘원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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