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훌륭한 연구 역량을 갖춘 장애인들이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은 현실에서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현재 국내 국·공립 및 사립대학에는 장애인 교원 할당제(의무고용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이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대다수의 대학이 장애인 교원을 채용하는 대신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고용부담금(범칙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그 의무를 때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 플랫폼에서는 대학 전임교원 채용 시 장애인 의무고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법률 개정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장애인 교수 몇 명을 더 채용하자는 읍소가 아니다. 학문의 발전과 초고령사회의 문제 해결, 그리고 지역사회의 포용적 접근을 위해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과제다.
전임교원 채용 시 장애인 의무고용 실효성 높여야
대학의 본질적인 역할은 다양한 학문을 발전시키고 인재를 양성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지역사회와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대학 내부는 각 학문 간의 칸막이와 영역 다툼으로 인해 초고령사회 등 시대가 요구하는 다학제적 발전이 더뎌지고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융합적 학문 발전에 있어서 장애인 교원은 매우 중요한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장애인이나 노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의학 시술을 넘어 디지털헬스, 복지, 법률 및 제도 개선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이 필수적이다. 불편함을 직접 경험해 본 장애인 당사자 교원은 이러한 융합 연구의 구심점이 될 강력한 동기와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해외 선진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의 경우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진출자의 15~17%가 장애인이다. 이들은 초고령사회의 다양한 기능을 제안하고 노인과 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기술을 과학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또한 의사 직종의 10%가 장애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환자들의 깊은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의료인들을 길러내고 있다. 장애인들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며 이를 과학적·의학적으로 해결하는 탁월한 전문 인력으로 육성되는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역시 학문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인도 브라질 일본 등 다양한 국적의 인재를 전임교원으로 임용한다. 동양계 교수들이 백인 교수들보다 더 치열하게 연구하고 교육에 매진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특정 인종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이민자나 사회적 취약계층으로서 그 사회에서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들에 대해 더 깊은 절실함을 가지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성과 절실함이 더 많은 우수 학생들을 이끌고 대학의 학문적 진보를 견인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학문 분야 내 장애인 진출 통계는 물론 대학교원 임용 관련 통계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나 역시 장애인 당사자로서 그 절실함을 동력 삼아 연구해 왔다. 나는 의과대학에서 의학교육과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교수이자 중증의 시각장애인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 건강증진종합계획’을 제안했고 ‘장애인건강권법’의 초안을 만들고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보건의료 빅데이터와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장애인의 건강 문제를 파악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해 왔다. 장애인 교원과 과학자가 창출해 내는 이러한 사회적 가치는 대학과 병원이 납부하는 징벌적 벌금의 액수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자부한다.
장애인 교원, 장애학생들에게 롤모델 될 것
충북대 석좌교수인 김용기 교수의 사례 또한 이러한 장애인 교원의 역할과 헌신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아마비 지체장애인인 김 교수는 과거 약학대학 합격에도 불구하고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입학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천문학과를 선택하여 다양한 후학을 양성했으며 퇴직한 현재에도 프로메이커센터 보직을 맡아 창업 지원 및 시제품 제작 등을 도우며 충북대학교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김 교수는 독일 유학 시절 5층 건물을 올라가야 했을 때 한 할머니께서 “젊은이, 젊으니까 먼저 올라가게나”라고 말씀해 주신 일화를 통해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선진적인 장애 인식을 깊이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장애를 차별하는 잘못된 문화를 반드시 고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대학 강단에 장애가 있는 교수가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진다면 그 파급력은 교실 밖으로까지 이어진다. 장애가 있는 아동과 청소년에게는 “나도 원하는 분야에서 공부하고 저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구체적인 미래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롤모델이 될 것이다. 동시에 비장애 학생들에게는 장애를 낯설거나 특별한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살아있는 포용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애인 교원은 대학에서의 융복합 교육과 연구 발전을 주도하고, 다가오는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다양한 산업기술적 영역까지 보완할 수 있는 핵심 인재다. 고용부담금으로 면죄부를 사는 지금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대학교원의 장애인 할당 제도가 실질적으로 개선되어 우리 대학과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박종혁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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