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됐다. 총성과 미사일이 오가는 물리적 전장이 아니다. 이미지와 영상, 그리고 알고리즘이 움직이는 '정보의 전장'이다. 이곳에서는 사실보다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가 더 큰 힘을 가진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의 실체를 둘러싼 또 다른 싸움이 소셜미디어에서 이어지고 있다. 언론 보도에서도 확인되듯 AI로 제작된 전쟁 이미지와 영상은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 촬영인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장면인지 쉽게 가려내기 어려운 영상들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런 콘텐츠는 오락을 넘어 여론을 흔들고 감정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텔아비브에 대규모 폭격이 가해지는 장면을 담았다는 영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져 많은 사람을 속였다. 미군 오폭으로 어린 학생들이 희생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콘텐츠의 특징은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전쟁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은 대개 멀리서 찍힌 흐릿한 화면이다. 반면 AI 영상은 폭발이 더 크고 선명하며, 장면은 훨씬 극적으로 구성된다. 감정 역시 과장된다. 이러한 가짜 전쟁 콘텐츠가 가져오는 영향은 가볍지 않다. 사람들은 점점 실제 전쟁이 아니라 과장된 이미지로 전쟁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전쟁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키고, 특정 국가나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다. 감정이 앞서기 시작하면 사실은 뒤로 밀려난다. 가짜와 진짜가 뒤섞이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쉽게 판단하지 못한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정확한 보도조차 의심받기 마련이다. 정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은 소셜미디어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자극적인 콘텐츠일수록 더 많은 클릭과 조회수를 얻고, 이는 곧 수익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AI로 생성된 콘텐츠에는 명확한 표시가 필요하고, 허위정보의 확산을 줄일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알고리즘이 어떤 기준으로 콘텐츠를 확산시키는지 역시 보다 투명하게 드러날 필요가 있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실을 확인하고 걸러내는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다. 정보를 소비하는 개인의 판단력이 마지막 방어선이다. 이런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기술적 장치도 충분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 청소년들에게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이해시키는 교육 역시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시청자미디어재단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디어 교육을 넘어, AI 시대에 요구되는 정보 판별 능력을 시민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빠르게 진화하는 가짜영상과 허위정보 환경 속에서, 시민들이 이를 식별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인 교육과 프로그램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민 역시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강한 감정을 유도하는 콘텐츠를 접했을 때 한 번 더 의심하고, 출처를 확인하며, 다른 매체와 교차 검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사이버 공간의 전쟁은 총과 미사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지와 영상, 그리고 알고리즘이 현실을 흔드는 시대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이유다. 결국 이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판단력이다. 사이버 공간의 진실을 지키는 힘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
/김시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