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울산에 기차가 등장하고, 자동차가 달리며, 마침내 사람이 하늘로 나는 일. 근대가 가져온 눈부신 풍경이었다. 태화강에 다리가 놓이고 철교가 생기더니 기차가 남북으로 강을 가로지르며 기적 소리를 울리고, 삼산에 비행기가 날개를 펼쳤다. 상전벽해, 천지개벽.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다. 압권은 비행기였다.
1929년 11월 13일, 『동아일보』는 특이한 사건 하나를 전했다. 경주 천북면(덕산리)의 최 모가 뇌물죄로 보석 중 자취를 감추더니 울산비행장에서 도쿄행 표를 끊고 막 이륙하려다 체포되었다. 신문은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비행기를 이용해 도망할 계획을 한 범인은 조선에서 처음이라더라"
2년 뒤, 대전 축자루(築紫樓) 창녀 眞蝸藤子(22세)가 애인인 경마 선수와 옥천에서 기차를 타고 울산에 와 일본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규슈 다치아라이(太刀洗). 당국은 "비행기를 타고 도피하는 경우는 일본에서조차 없던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뇌물범과 기생. 아무 관련 없는 두 사건은 1920~30년대의 울산은 더 이상 변방의 작은 고을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가장 앞선 교통망을 갖춘 근대 도시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1928년 12월 2일, 삼산에 한반도 최초의 국제선 비행장이 개장했다. 1929년 여의도 비행장보다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비행장이었다. 당시 비행기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근대가 선물한 꿈이었다. 정기편이 출발하기 전, 울산 상공을 한 바퀴 도는 '관광 비행'은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요금은 5원. 성인 노동자의 닷새 품삯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그럼에도 언양과 울산읍의 신문사 지국들이 앞다퉈 '비행 유람단'을 모집했다. 근대를 한 번쯤 몸으로 느껴 보고 싶었던 사람들로 연일 매진이었다. 비행기는 "긔차보다도 배보다 더 빠를뿐더러 새 모양으로 하늘 공중을 훨훨 나라서 가고십흔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잇게 된"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늘을 나는 것은 전설과 신화 속 이야기였는데, 현실이 되었다.
1937년 9월에 준공돼 2005년에 폐업한 울산극장. 김잠출 제공
근대화의 실질적 동력은 철도였다. 울산은 경남에서 가장 먼저 철도가 부설된 곳으로 1921년 10월 25일, 조선중앙철도가 '울산-불국사' 간 노선을 개통했다. 이 노선은 노폭이 좁은 협궤로 운영되어 일명 '애기차'라 불렸다. 1935년 12월 부산-울산을 연결하는 동해남부선이 개통되면서 성남동에 있던 울산역을 학성동으로 옮겼다. 철길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동시에 도시의 중심마저 바꿔 놓았다. 자동차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1918년 7월 울산자동차부가 8인승 승합자동차(1대)를 운행했다. 장생포-울산-물금을 매일 1회 왕복하며 경부선 열차와 연결되도록 했다. 부자들은 '대절' 자동차를 이동 수단으로 활용했다.
도시의 밤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늦은 밤까지 모여 웃고 떠들었다. 밤은 더 이상 잠만 자는 시간이 아니었다. 전기는 시간을 연장했고, 도시의 하루를 새롭게 바꾸었다. 전기가 들어오니 극장이 따라와 새 시대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1910년대 방어진에 울산 최초의 극장 다이쇼칸(大正館)이 들어섰고, 뒤이어 상설극장 도키와칸(常盤館)이 문을 열었다. 1937년 성남동 구 울산역 자리에 울산극장이 들어섰다. 대도시 극장에 뒤지지 않는 시설과 세련된 외관을 갖춘 '명랑한 모던 건물'이었다. 영화 상영과 악극 공연이 잇따르고, 사람들은 스크린 속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 표를 샀다. 울산극장은 시대의 흥망을 함께하며 2005년까지 시민들 기억 속에 남았다.
유행가는 또 다른 근대의 소리였다. 사람들은 '뽕짝' '도로또' '유행가'라 불렀다. 고복수는 전국 오디션을 통해 데뷔해 단번에 국민가수가 되었다. 그의 노래는 식민지 사람들의 애환을 위로했고 시대의 아픔을 견디게 했다. 근대 울산의 풍경은 전기와 철도, 자동차와 비행기, 영화와 유행가, 신문이 어우러진 거대한 변화의 무대였다. 빛과 그림자와 함께. 비행기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비행장은 침략의 전진기지였고, 철도는 문명을 실어 나르는 동시에 식민지의 쌀과 자원을 수탈하는 통로가 되었다. 전깃불 아래 웃고 울던 극장에서는 황국신민화를 선전하는 영화도 상영되었다. 문명은 눈부셨지만 시대는 어두웠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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