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왼쪽)과 아내이자 프로듀서 엠마 토마스가 지난달 4일 영화 '오디세이'로 처음 내한해 관객과 만남을 가졌다. AP=연합
천만 돌파를 앞둔 영화 ‘오디세이’(8월 5일 개봉)의 숨은 공신으론 제작자 엠마 토마스(54)가 꼽힌다. 크리스토퍼 놀런(56) 감독과 2001년 제작사 ‘싱코피(Syncopy)’를 설립해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다크 나이트’ 3부작 등 놀런의 모든 영화를 제작했다. 그는 또 놀런과 올해 결혼 30년 차를 맞는 아내이자 4남매의 엄마이기도 하다.
1989년 대학(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기숙사 입주 첫날 만나 연인이 된 두 사람은 함께 영화 동아리를 운영하며 영화의 꿈을 키워나갔다. 1998년 단돈 6000달러짜리 독립 영화 ‘미행’으로 감독, 프로듀서로 데뷔했고, 28년이 흐른 지금 무려 2억5000만 달러가 투입된 고대 대서사 블록버스터(오디세이)로 전 세계 15억 달러(약 2조원) 이상 극장 매출을 올리는 할리우드 거물로 거듭났다.
천만 돌파 임박 '오디세이' #블록버스터 제왕 놀런의 #'킹메이커' 프로듀서 아내 #"놀런 아이디어 실현하는 해결사"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어 이번 영화를 함께한 주연 배우 앤 해서웨이는 "엠마는 멋진 친구이자, 헌신적인 엄마"라면서 "무엇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모든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놀런이 블록버스터의 제왕이라면, 토마스는 ‘킹메이커’로 통한다. 놀런 사단 배우들은 그를 “크리스(놀런)의 모든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라 부른다. 3000년 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를 고대인의 눈에 비친 당대의 현실처럼 담겠다는 놀런의 대담한 도전을 위해 천문학적 제작비(약 2억5000만 달러)를 실현시킨 든든한 ‘백’이란 의미다. 3 대륙 6개국에 걸친 로케이션 촬영, 실물 크기의 트로이 목마, 외눈박이 거인 모형 제작이 실제로 이뤄지게 만든 일을 포함해서다. 놀런 자신도 아내를 시나리오 작가인 동생 조너선과 함께 가장 의지하는 영화적 파트너라 수차례 밝혀왔다.
또 프리 비주얼(사전 시각화) 작업보단 촬영장에서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연기하게 하길 선호하는 놀런을 위해 토마스는 일종의 ‘믿음의 벨트’를 구축해왔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미리 그리는 대신, 총괄 프로듀서가 전작부터 손발을 맞춰온 각 부문 스태프들과 제작 프레임워크(큰 틀과 흐름을 사전 계획하는 것)를 짜고, 이를 토대로 배우들이 현장에서 장면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인셉션’ 당시 미국 매체 콜라이더와 인터뷰에서 놀런은 아내가 해온 이 방식이 매우 효율적이라고 신뢰를 표했다. “그런 경험 덕분에 ‘배트맨 비긴즈’로 처음 대작을 하면서도 소규모 영화를 할 때처럼 스태프,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촬영을 해나갈 수 있었다”면서다.
영화 '오디세이' 촬영 현장에서 크리스토퍼 놀런(카메라 왼쪽) 감독의 모습이다. 엠마 토마스는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 전체를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한 놀런 감독이 처음 아이맥스에 대해 언급한 순간을 1997년 신혼여행 때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토마스는 또 놀런 영화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도 자처한다. 다음은 배우 톰 홀랜드가 미국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와 인터뷰에서 밝힌 일화다. 놀런은 실감나는 영상을 위해 배우, 스태프를 고생시키기로 유명한데,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오디세이’를 촬영할 때 배우들은 매일같이 호스로 물을 뿜어대는 1000피트(약 300미터) 높이 언덕 위의 산타 카테리아 성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홀랜드는 놀런 감독이 자신은 헬기를 탈 수도 있었지만, 타지 않았다고 미담으로 회상했다. 이에 놀런이 반전 비화를 고백했다. “내심 헬기를 타볼까 했더니 아내가 반대했다. ‘남들한테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가라고 할 거면 너도 걸어 올라가야지’라더라”면서다.
‘인터스텔라’ ‘오펜하이머’(2023) ‘오디세이’까지 3편을 함께한 맷 데이먼이 “육체적으로 불편한 순간을 찍을 때 뒤를 돌아보면 감독님이 불과 1.5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아무 불평 없이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존경과 신뢰를 표한 놀런 감독의 솔선수범 뒤엔 이런 아내의 내조도 한몫했던 것이다.
2024년 3월 10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오펜하이머'로 작품상을 거머쥔 엠마 토마스(가운데) 프로듀서가 무대에 함께 오른 남편 크리스토퍼 놀런(왼쪽) 감독에게 수상을 자축하는 입맞춤을 받고 있다. EPA=연합
토마스는 전세계 10억 달러 수익을 올리며 ‘오디세이’를 가능케 한 전작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무대에서 “이런 결과물은 오직 크리스토퍼 놀런 덕분이다. 그가 독보적이고 뛰어난 사람인 것에 감사한다”고 공을 돌렸다. 그러나 업계의 평가는 이랬다. 엠마 토마스 없이는 지금의 크리스토퍼 놀런은 없다고 말이다. ‘오펜하이머’는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음악상, 편집상, 촬영상까지 7관왕에 올랐다.
당시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와 인터뷰에서 토마스는 놀런과 영화를 만들어가는 삶에 대해 이런 소감도 밝혔다. “놀런은 작업 중인 프로젝트와 아이디어, 사소한 것들을 계속 알려주지만, 나는 대체로 대본이 완성된 후에 읽는 편이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우리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이게 앞으로 2년 동안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말이다.”
지난달 3일 '오디세이' 내한 행사에서 왼쪽부터 배우 샤를리즈 테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엠마 토마스 프로듀서, 맷 데이먼이 한국식 하트 손모양 포즈를 취했다. AP=연합뉴스
토마스는 DC 유니버스의 몇 안 되는 성공작에 꼽히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2013)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등의 총괄 프로듀서에도 이름을 올렸다. 2024년 그는 대영제국 최고 등급 훈장인 영국 여공작 작위를, 놀런은 기사 작위를 나란히 받기도 했다.
아직 ‘오디세이’ 이후 놀런의 차기작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달 처음 내한한 자리에서 토마스는 이런 힌트를 던졌다. “크리스(놀런)는 매번 새로운 걸 하려고 하고, 배운 것은 기회를 잘 활용해서 꼭 다음 작품에 녹여낸다.”
4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집계된 전날까지 ‘오디세이’ 관객수는 932만명, 전세계 흥행 매출은 15억5929만 달러에 이른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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