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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그 많은 선정비는 무엇을 말하는가

대공황이 엄습한 1935년 1월, 뉴욕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를 헤맸고,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어느 추운 겨울밤, 누더기를 걸친 노파가 법정에 섰다.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죄였다. 노파는 울며 선처를 호소했다.

구글 선호출처 추가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대공황이 엄습한 1935년 1월, 뉴욕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를 헤맸고,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어느 추운 겨울밤, 누더기를 걸친 노파가 법정에 섰다.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죄였다. 노파는 울며 선처를 호소했다. 사위란 놈은 도망갔고, 딸은 아파 누워 있는데 손녀들이 굶주리고 있었다. 빵 가게 주인은 냉정했다. 고소 취하를 권하는 라과디아 판사의 청을 물리치고 "법대로 처리하라"고 소리쳤다. 법은 간단했다. 죄를 지었으면 벌받아야 했다. 라과디아는 노파에게 벌금 10달러 또는 열흘의 구금을 선고했다. 그리고 자기 주머니에서 10달러를 꺼내 벌금을 대신 냈다. 그리고 법정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50센트씩 벌금을 물렸다.

"여러분, 할머니는 벌금을 완납했습니다. 나는 오늘 굶주린 손녀들에게 빵 한 조각을 먹이기 위해 도둑질을 해야만 하는 이 비정한 도시에 살고 있는 죄를 물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뉴욕시장 라과디아의 인간적인 판결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사람들은 법정에서 단순히 죄의 유무만 따지는 판사보다, 왜 그 사람이 그 죄를 저질렀는가를 알아보는 사람을 더 기억했다. 흔히 말하는 공감, 연민이라는 sympathy이다.

울산 동헌과 내아 뒤편에는 역대 울산부사와 지방관의 선정비가 약 33기나 있다. 내용은 주민 복지와 민생 보호(愛民, 惠民, 恤民)를 비롯해 사익을 취하지 않는 공직자(淸廉, 淸德, 廉明), 세금 경감(減役, 恤民), 재난·빈곤층 구제(恤貧, 救荒), 지역경제·산업 진흥(勸農, 勸桑), 교육과 문화 발전(興學, 振文), 청탁 배제와 공정 행정(無私, 淸直), 공공시설 정비(修橋) 등이다.

이규목 군수는 "특별히 모세(耗稅)를 덜어주고 농상 권면을 했고, 문풍을 다시 떨쳐 깨끗한 달처럼 사사로움이 없었다. 청렴하고 정직하니 백성의 칭송이 빗돌이 되었다"고 칭송받았다. 조재선 부사는 자기 봉급을 가난한 백성을 위해 내놓았고 관용차(말)를 팔아 면민에게 나눠 줬으며 절이나·역·관청 노비들의 잡무를 줄였고 수천 냥을 들여 백성의 노역 부담을 보완했다. "울산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임 때 주민들이 경주·영천 경계까지 따라가 전별했다. 병영의 '병마절도사' 선정비 17기에는 군역 폐단을 줄였고, 군민을 지나치게 부리지 않았으며 군량과 군사 행정을 공정 처리하고 군사시설 정비, 청렴하고 공정한 병영 운영을 했다는 것이 주 내용으로 남아 있다.

울산시 울주군 언양향교 입구에 있는 공덕비와 선정비. 울주군 제공

언양향교에 있는 암행어사 박문수 영세불망비와 이도재(李道宰, 1848~1909)의 거사비도 눈에 띈다. 이도재 어사는 1899년 조선과 러시아가 장생포 포경기지 협약을 체결할 때 막후교섭을 중재했던 인물이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두호마을 남쪽의 매바위(일명 어사암)에도 그의 이름을 새긴 석각이 남아 있다. 언양현감과 울산부사의 폐정을 적발하고 1884년 울산 포구의 어민들이 비를 세웠는데 이유인즉슨 고기잡이세와 미역세를 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관리는 아니지만 일개 참봉으로 자선 활동을 하고 사재를 제공한 이만령도 기억해야 한다. 이만령(1708~1784)은 조선 후기 참봉(參奉)으로 1만 냥을 들여 태화나루 홍교(虹橋)를 건립해 유곡 태화 일대 주민들이 홍수에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왕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재 1,000냥을 출연, 이자를 만들어 군사 비용을 충당했고, 노비의 공납 부담도 대신했다. 울산 객사인 학성관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800냥을 출연, 재건을 도왔다. 태화루 방향 태화교 입구에 '參奉李萬齡永世不忘碑'가 있다. 1860년(철종 11년)에 처음 세웠다가 1866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선정비 주인공들은 권력을 행사하기보다 백성이 혜택받도록 노력했다. 그러니 선정비는 '좋은 관리란 누구인가'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표라 하겠다. "세금 덜 받고, 부역 덜 시키며 가난한 사람 돌보고, 민생을 살펴 경제를 살리고 교육과 문화 진흥에 힘쓰며,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 않는 청렴한 관리" 이것이 울산 사람들이 돌에 새겨 남긴 '좋은 행정'의 기준이었다.

울산에 남은 선정비 주인공들은 법 집행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정을 살피는 것을 우선했다. 좋은 지방자치단체장은 민원을 빨리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민원이 생긴 이유를 찾아내 한 사람의 사정도 경청하고 한 줄의 규정 뒤에 가려진 삶을 한 번 더 살펴 억울함을 없애는 사람이다. 이것이 어쩌면 옛사람들이 '선정'이라 새겨 전하려 한 정확한 뜻인지도 모른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김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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